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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신동엽3

[오늘] 시인 신동엽, 통일 열망 품은 채 서른아홉에 지다 1969년 4월 7일, 신동엽 시인 간암으로 영면 1969년 4월 7일은 김수영과 함께 1960년대를 가장 뜨겁게 살았던 시인 신동엽(申東曄, 1930~1969)이 간암으로 서울 동선동 자택에서 서른아홉의 삶을 마감한 날이다. “‘1950년대 모더니즘’을 거치지 않고, 토착 정서에 역사의식을 담은 민족적 리얼리즘을 추구”했고 동학농민전쟁을 소재로 한 과 같은 ‘이야기 시’로 독특한 시세계를 전개해 온 시인은 40년을 채 살지 못하고 서둘러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일까, 유명한 시 ‘껍데기는 가라’가 고교 교과서에도 실렸지만, 그는 여전히 아이들에게 동명의 코미디언으로 자주 오인된다. 하긴 시가 읽히는 대신 텔레비전이 소비되는 시대, 살아 있는 코미디언을 두고 거의 반세기 전에 떠난 시인을 세상이 어찌 기억.. 2024. 4. 6.
성내운의 목소리로 듣는 신동엽 시인의 ‘진달래 산천’ 고 성내운 교수의 을 들으며 성내운 교수의 시 낭송은 여느 사람의 것과는 다르다. 그의 목소리는 옷깃을 여미게 하는 비장감으로 다가오는가 하면,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격동하는 감정의 분출을 뜨겁게 느끼게 하기도 한다. 그는 김구와 장준하와 문익환의 사자후를 대신 토하기도 하고 신동엽과 고은, 조태일과 김지하의 시를 읊조리며 우리를 당대의 가장 뜨거운 현장으로 이끌기도 한다. 나는 저서를 통해 그를 알았지만, 그가 뜨거운 낭송의 주인공이었다는 것은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야 알았다. 어떤 경로였는지, 그의 시 낭송 1집 테이프가 내 손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는 1989년 12월에 세상을 떠났다. 89년이라면, 민족·민주·인간화 교육을 내걸고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출범한 해다. 교육지표 사건이 아니더라도 전교.. 2020. 3. 12.
새해 아침, ‘신동엽’을 다시 읽으며 신동엽 시선집 창작과비평사에서 펴낸 을 산 게 1989년께였다. 같은 출판사에서 낸 그의 시집 를 산 것도 그 어름이었을 게다. 지금 생각해도 참 바빴던 때였다. 날마다 회의였고, 늘 새벽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때였다. 에둘러 왔는데, 그의 시를 제대로 읽을 시간이 없었다는 얘기다. 89년에 학교를 떠났다가 94년에 경북 북부의 궁벽한 시골 중학교로 복직해 3학년 아이들에게 국어를 가르치다가 신동엽을 다시 만났다. 교과서에 그의 아름다운 시 ‘산에 언덕에’가 실려 있었다. 대학에서 공부할 때, 전공 서적에서 북으로 간 문인들의 이름을 “박○원(박태원), 임○(임화), 정○용(정지용)” 등과 같은 복자(伏字)로 배웠던 터여서 교과서에 박힌 그의 이름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묘한 감동이 일었던 .. 2020. 2.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