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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김일성4

[오늘] 북한, 남한 이어 단독 정권 수립 [역사 공부 ‘오늘’] 1948년 9월 9일 – 북한, 사회주의 정권 수립 남한 정부 수립 25일 만에 북한도 정권 수립 1948년 9월 9일, 북위 38도선 이북의 한반도 반쪽, 평양에서 김일성을 수반으로 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인공)이 수립되었다. 38도선 이남의 남쪽 절반, 서울에서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하는 단독정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8.15.)된 지 25일 만이었다. 같은 해 4월, 남한만의 단독 총선거를 반대하고 김규식·조소앙 등과 함께 남북협상을 통해 민족자결주의 원칙에 입각한 통일을 모색하고자 한 김구의 평양행은 실패로 돌아갔다. 김구를 비롯한 남한 대표들이 평양에 도착하기 전에 이미 북한의 공산주의자들은 전 조선 정당 사회단체 대표자 연석회의를 소집하여 28명의 주석단을 선출해 놓고.. 2023. 9. 9.
[오늘] 70년 전 우리가 치른 전쟁이 가르쳐 준 것들 [역사 공부 ‘오늘’] 1950년 6월 25일, 북한군 남침으로 6.25전쟁 발발 1950년 6월 25일 오전 4시, 북한의 조선인민군이 소련에서 지원한 최신형 전차 T-34/85를 앞세우고 북위 38도선 전역에 걸쳐 기습 남침함으로써 ‘6.25전쟁’이 시작됐다. 그것은 일제의 식민지배에서 해방돼 맞닥뜨린 혼란의 해방공간을 일거에 무력화하면서 한반도가 이전에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이데올로기 대립’의 현장이 되리라는 끔찍한 예고였다. 갑작스럽게 맞닥뜨린 전쟁 앞에 허둥대기는 정부도 국민과 다르지 않았다. 개전 사흘 만에 대통령과 정부 수뇌부는 시민들에게 서울 사수를 공언해 놓고도 한강 다리를 끊고 남몰래 피난길에 올랐고 140만 명의 서울 시민은 ‘인공 치하’의 수도에 남겨졌다. 해방과 함께 온 ‘분단.. 2023. 6. 25.
[오늘] 김일성과 조선인민혁명군, 함남 갑산 보천보(普天堡) 습격 [역사 공부 ‘오늘’] 1937년 6월 5일, 김일성 함남 갑산 보천보를 습격하다 1937년 6월 4일 밤 10시, 김일성(金日成, 1912~1994)이 지휘하는 동북항일연군(東北抗日連軍) 2군 6사 소속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 150명은 함경남도 갑산군 보천면 보천보(현재 북한의 행정구역상 양강도 보천군 보천읍)를 습격했다. 김일성 부대는 2개 습격조와 2개 차단조, 1개 정치공작조로 나누어 제1습격조는 일제 경찰관 주재소·면사무소·소방서를 공격하고, 제2습격조는 우편국·농사시험장·산림보호구를 습격하여 기관 건물들을 전소시키고 격문을 살포하였다. 이 전투는 1937년 3월 조선인민혁명군(동북항일연군)이 국내 진공 작전을 펴기로 함에 따라 수행되었다. 작전은 최현(1907~1982, 해방 후 북한 부총리.. 2023. 6. 3.
허형식과 박정희, 극단으로 갈린 둘의 선택 [서평] 박도 실록 소설 ‘경상북도 구미’하면 ‘박정희(1917~1979)’를 떠올리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긴 하다. 시내 상모동에서 태어나서 만주군 장교를 거쳐 해방 뒤 쿠데타로 집권한 그 덕분에 오늘의 구미가 만들어진 건 부정할 수 없으니 말이다. ‘선산군 구미면’은 그가 이 고을에 공업단지를 유치하면서 ‘선산읍’을 거느린 인구 40만이 넘는 ‘구미시’가 되었다. 그는 개발독재를 통하여 근대화를 추진했고, 유례없는 고도성장을 구가함으로써 구국의 지도자로 기려진다. 18년 독재 끝에 비명에 갔지만 그는 지역에서 가히 ‘반신반인’으로까지 숭앙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는 지금 경상북도 기념물 제86호로 지정되어 성역화된 상모동 생가 부근에 세운 5m 크기의 청동상으로 살아 있다. 박정희의 상모동, 혹은 왕산.. 2019. 5.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