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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한국광복군3

[오늘] 충칭에서 임시정부, 한국광복군을 창설하다 [역사 공부 ‘오늘’] 1940년 9월 17일, 충칭(重慶)서 광복군 총사령부 성립전례 1940년 9월 17일, 중국의 임시 수도 충칭(重慶)의 가릉빈관(嘉陵賓館)에서 광복군 총사령부의 성립 전례(典禮)가 거행되었다. 그로써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수립한 지 21년 만에 임정은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군대를 보유하게 되었다. 임시정부 주석 김구는 「광복군 선언문」을 통하여 광복군 창설의 취지를 “한·중 두 나라의 독립을 회복하고자 공동의 적인 일본 제국주의를 타도하며 연합군의 일원으로 항전할 것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천명하였다. 비록 타국에서 세운 임시정부였지만, 임정은 1919년 「대한민국육군임시군제(軍制)」를 제정하여, 군대를 창설한다는 원칙에 따라 군대의 편제와 조직에 관한 법규를 마련한 바 있었.. 2023. 9. 17.
[임정답사]‘홀로서기’ 끝 광복군, 일본의 항복으로 길을 잃다 [임시정부 노정을 따라 ⑫] 충칭(重慶)② 한국광복군의 창설과 일본의 패망, 그리고… 답사의 마지막 날은 충칭의 롄화츠(연화지 蓮花池) 청사와 복원된 광복군 총사령부 건물을 찾는 일정이었다. 롄화츠 청사와 한국광복군 총사령부는 1919년 임정을 수립한 뒤 20년 넘게 이어온 항일 투쟁을 수렴하면서 광복을 맞을 때까지 가장 활발한 독립운동을 전개해 나간 행정과 군사의 사령탑이었다. ‘민족 대표와 독립운동 중심기구’로서의 위상 회복한 충칭 임정 상하이를 떠난 이래 8년여 동안 항저우, 전장, 창사, 광저우와 류저우, 치장을 거쳐온 임정은 전쟁으로부터 비교적 안정된 지역인 충칭에 정착하면서 조직과 체제를 정비하기 시작하였다. 임정은 충칭에 오기 전인 1940년 5월 민족주의 세력을 통합하여 한국독립당을 창당함.. 2021. 3. 6.
4시간 만에 일본군 궤멸시킨, 일본육사 출신 독립군 대장 [대한민국 임시정부 노정을 따라 ④] 항저우, 전장 시기의 임정 답사 둘째 날, 자싱(嘉興)과 하이옌(海鹽)을 거쳐 우리는 어둠 살이 내리고 있는 항저우(杭州)에 닿았다. 하나둘 불을 켜고 있는 도시로 들어가면서 나는 상하이를 떠나 이 낯선 도시로 스며들어야 했던 1932년의 임시정부(아래 임정)와 백범을 비롯한 요인들을 생각했다. 항저우는 장강(長江) 델타 지역에 자리 잡은 저장성(浙江省)의 성도(省都)다. 중국의 7개 고도(古都)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는 이 도시는 수나라 때 건설된 대운하의 남쪽에 자리 잡고 있어 일찍부터 운하를 이용한 상업이 발달했다. 10세기에 항저우는 난징(南京)과 청두(成都)와 함께 남송(南宋) 문화의 중심지였다. 12세기 초부터 1276년 몽골이 침입하기까지는 남송의 수도였고.. 2019. 3.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