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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고정희3

고정희, 우리 모두에게 이미 ‘여백’이 된 고정희 유고시집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 좋은 시인이나 작가를 제때 알아보지 못했을 때 느끼는 부채감은 꽤 무겁다. 그것은 성실한 독자의 의무를 회피해 버린 듯한 열패감을 환기해 주는 까닭이다. 제때 읽지 못했던 시인 작가로 떠오르는 이는 고정희 시인과 작가 공선옥이다. (오해 없기 바란다. 물론 내가 알지 못하는 훌륭한 시인·작가는 수없이 많을 터이다. 요컨대 내가 말하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일 뿐이다.) 공선옥은 내게 그를 너무 늦게 읽은 걸 뉘우치게 한 작가다. 2003년에 그의 소설집 『멋진 한세상』을 읽고 나서 나는 책 속표지에다 그렇게 썼다. 너무 늦었다……. 나는 삶을 바라보는 공선옥의 눈길과 태도에 전율했다. 나는 그이의 삶과 그가 그리는 삶이 어떤 모순도 없이 겹.. 2020. 6. 1.
삼식(三食)이의 ‘가사노동’ 연금생활자의 일상 퇴임한 지 얼추 1년 반이 지나며 연금생활자로의 일상은 얼마간 길이 났다. 퇴임 직후에만 해도 이런저런 생활의 변화를 몸과 마음이 제대로 따라가지 못한 부조화가 꽤 있었다. 그러나 이런 때에 제 몫을 하는 게 인간의 적응 능력인 것이다. 퇴직자 가운데서는 직장사회와 동료들과 교류가 끊어지면서 상실감 때문에 힘들어하는 이들이 많다고 하는데 실제로 나는 그게 괴롭지는 않다. 마지막 학교에서 근무하던 네 해 가까이 나는 스스로 고립을 마다하지 않으면서 떠나는 연습을 거듭했었기 때문이다. 괴로웠다고 하기보다는 곤혹스러웠다는 게 적절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하루 24시간 가운데 10여 시간을 보냈던 학교를 떠나면서 이전에는 사적으로 쓰기 쉽지 않았던 낮이 고스란히 내 것이 되었다. 그런데 더는 .. 2019. 9. 25.
가사노동, ‘여자가 받쳐 든 한 식구의 안식’ 이 땅의 숱한 ‘구자명 씨’를 위하여 어버이 모두 돌아가시고 10년째 다시 설날을 맞는다. 부모님이 계시지 않는 명절은, 또 부모님을 뵈러 큰집으로 떠날 일이 없는 설날은 여느 날과 그리 다르지 않다. 객지에 나가 있던 아이가 돌아오는 거로 새삼 명절이란 걸 확인하긴 하지만 쓸쓸하기야 마찬가지인 까닭이다. 딸애를 데리고 아내가 장모님을 뵈러 떠난 빈집에 아들 녀석과 둘이 우두커니 앉아 텔레비전 채널만 이리저리 돌리면서 섣달 그믐날, ‘작은 설’의 반나절을 보냈다. 처가에 가 장모님 음식 장만하는 걸 돕다가 오후에야 돌아온 아내는 이내 자리를 깔고 누워버렸다. 아침부터 감기 기운이 느껴진다더니 제대로 감기가 온 모양이었다. 영화 구경을 하자던 아이들의 청도 한사코 마다한 아내를 남겨두고 우리는 시내에 나갔.. 2019. 2.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