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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안동 이야기66

“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렸더니” [안동 시가 기행 ④]역동 우탁의 ‘탄로가(嘆老歌)’ 시조는 고려 말기와 조선 초기에 걸쳐 형성, 정제된 것으로 추정되는 우리 문학 중 유일무이한 정형시다. 시조는 국문학사에 명멸해 간 여러 시가 형식 중 가장 생명력이 긴 갈래로 지금도 즐겨 불리고 있다. 현대인의 정서를 담는 데는 힘이 달릴 것 같은 이 오래된 시가 양식이 이날까지 장수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시조의 형성은 고려 말에 유입되어 조선 왕조의 지도이념으로 각광 받게 된 주자학(성리학)과 긴밀한 연관을 갖는다. 시조는 고려의 타락 부패한 불교를 극복하고 여말 이래, 새로운 지도이념으로 떠오른 성리학을 신봉하는 유학자들, 이른바 신흥사대부에 의하여 성립된 새로운 시형이었다. 여말 시조작가 우탁, 성리학을 정립한 신흥사대부 이들 신흥사대부는 원래.. 2019. 5. 28.
‘저 아름다운 한 사람’을 더욱 잊지 못하네 [안동 시가 기행 ③] 퇴계 이황과 퇴계의 그늘은 넓고도 크다 안동은 퇴계의 고장이다. 이 16세기의 대 성리학자는 무려 4세기가 지났어도 여전히 안동에 살아 숨 쉬는 인물이다. 퇴계를 떠나 안동의 유림과 학문, 전통과 역사를 말할 수 없다. 내로라하는 안동의 명문거족들이 모두 퇴계의 문하로 또는 영남학파로 이어지고 있는 까닭이다. 서애 류성룡(풍천 류씨)을 비롯 학봉 김성일(의성 김씨), 송암 권호문(안동 권씨)이 퇴계의 문하였고, 퇴계의 학맥은 장흥효(안동 장씨), 이휘일(재령 이씨), 이상정(한산 이씨) 등으로 이어졌으니 이들은 모두 안동과 인근 고을의 명문가들인 것이다. 십수 년 전에 안동 인근에 살게 되면서 나는 왜 안동이 이육사 시인을 기리지 않는가를 의아해했다. 안동사람을 만날 때마다 그 까.. 2019. 5. 27.
속세를 끊은 마을, 떠나기가 싫었네 [안동 시가 기행 ②] 농암 이현보의 , 댐이 건설되면 숱한 마을과 논밭이 물 아래에 잠긴다. 당연히 거기 살던 사람들은 물에 잠길 고향을 떠나 더 높은 뭍으로 떠난다. 정든 집과 마당, 유년의 추억이 깃든 개울이나 언덕 따위와도 꼼짝없이 헤어져야 한다. 그나마 수몰을 면하는 집이 있다. 주로 보존 가치가 있는 옛집들이다. 이들 고가는 짓는 것보다 훨씬 더 비용이 드는 해체·복원 과정을 거치며 살아남는다. 그게 수백 년 동안 고택이 먹은 나이에 대한 지금 세상의 배려고 대우다. 안동댐 건설에서 살아남은 농암 이현보 유적 분강촌 경북 안동시 도산면 분천리 일대에 있던 농암(聾巖) 이현보(李賢輔, 1467~1555) 선생의 유적도 안동댐 건설에서 그렇게 살아남았다. 얼마 전에는 흩어져 있던 긍구당과 사당, .. 2019. 5. 26.
"가는 것이 저와 같으니 백 년인들 길겠느냐" [안동 시가 기행 ①] 송암(松巖) 권호문(權好文, 1532~1587)의 아이들에게 문학을 가르치면서 교과서에 등장하는 지은이들의 자취를 이웃에서 심심찮게 만나는 경우가 많다. 볼 것 없이 이 땅 곳곳이 선비들의 고장이었던 덕분이다. 당연히 그건 내가 사는 지역만의 상황은 아니다. 그만그만한 땅과 마을마다 고전문학 주인공들의 자취가 남아 있는 것이다. 안동은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라는 구호로 그 전통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내는 고장이다. 당연히 발길에 차이는 게 고택과 정자요, 거기 머문 시인묵객의 자취도 화려하다. 의 퇴계를 비롯, 경기체가 과 을 지은 근재 안축, 의 농암 이현보 등이 이 고을과 인근에서 삶과 자연을 노래했다. 퇴계와 농암의 자취는 인근 도산면에서, 근재의 흔적은 영주 순흥의 죽.. 2019. 5. 25.
저 혼자 서 있는 탑들 [안동의 탑 이야기①] 그 천년의 침묵과 서원(誓願) [안동의 탑 이야기 ②]소멸의 시간을 건넌 돌탑들 [안동의 탑 이야기 ③]‘국보 맞아?’ 잊히고 있는 우리 돌탑들 [안동의 탑 이야기 ④]천년 고탑(古塔)에 서린 세월과 역사를 되짚다 이 땅엔 탑이 참 많다. 온 나라 골짜기마다 들어앉은 절집뿐 아니라, 적지 않은 폐사 터에도 으레 한두 기의 탑이 서 있기 마련이다. 탑은 어쩌면 ‘부처님의 나라’를 꿈꾸었던 신라 시대 이래 이 땅의 겨레들이 부처님께 의탁한, 소망과 비원(悲願)의 결정체인지도 모른다. 낮은 산 좁은 골짜기 들머리에, 더러는 곡식이 익어가는 논밭 가운데에 우두커니 선 탑이 안고 있는 천년의 침묵은 바로 이 땅의 겨레가 겪어온 즈믄해의 역사라 해도 무방하겠다. 절집에서 탑은 원래 부처의 사.. 2019. 4. 19.
줄다리기, 남녀의 성적 결합이 풍작을 낳는다 영주 ‘순흥 초군청(樵軍廳) 놀이’를 다녀와서 지난 정월 대보름에 ‘순흥 초군청(樵軍廳) 놀이’를 다녀왔다. 지방자치 시대의 민속 행사는 지역마다 다투어 벌어지긴 하지만 그 내용이야 거기가 거긴 경우가 많다. 내가 사는 안동에도 보름날 밤에 달집태우기 등의 행사가 다채롭게 베풀어진다. 그런데도 굳이 아침 일찍 버스와 택시를 갈아타고 순흥에 이른 것은 ‘초군청’이라는 이름이 은근히 풍기는 흥미 때문이었다. 순흥 초군청은 개화기 때 농민들이 자신의 권익 보호와 향중(鄕中) 사회의 질서회복을 위해 결성한 전국 유일의 순수 농민 자치기구다. ‘초군청’의 ‘초군’은 말 그대로 ‘나무꾼’이다. 그것은 ‘관군’이나 ‘양반’과 맞서는 ‘민간’과 ‘서민’이라는 개념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유일의 농민자치 기구 ‘순.. 2019. 2.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