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국(殉國)] 유관순 열사, 열여덟에 지다
1920년 9월 28일, 유관순 열사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 1920년 9월 28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 1920년 9월 28일 오전 8시 20분, 3·1운동 당시 만세시위를 벌여 ‘소요· 보안법 위반’으로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하던 유관순(柳寬順, 1902~1920)이 오랫동안 계속된 고문의 후유증과 영양실조로 숨을 거두었다. 향년 18세. 1919년 4월 1일, 고향인 천안 아우내 장터에서 체포된 지 546일 만이었다. 1919년 5월 9일, 유관순은 1심인 공주지방법원에서 5년 형을, 6월 30일 경성복심법원에서는 3년 형을 선고받았다. 함께 재판받은 사람들은 모두 고등법원에 상고하였으나, 유관순은 일제의 재판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상고하지 않았다. 복심법원서 징역 3년 선고, 상고하지 않다 ..
2023. 9. 28.
[순국] 담살이 의병장 안규홍, 서른한 살에 지다
의병장 안규홍, 대구감옥에서 순국 1910년 6월 22일, ‘담살이(머슴, 머슴살이)’ 의병장으로 불리는 안규홍(安圭洪, 1879~1910) 선생이 대구감옥에서 교수형으로 순국하였다. 그는 1907년 한국군이 강제 해산되자 머슴살이 동지들을 규합하여 창의(倡義)한 이래, 파청(巴靑)·진산(眞山)·원봉(圓峰) 대첩 등 의병 사상 기념비적 승리를 구가했던 보성 의진(義陣)을 이끈 의병장이었다. 향년 31세. 안규홍은 호좌(湖左) 의진의 선봉장 김백선(1849~1896), 영덕의 신돌석(1878~1908)과 함께 평민 의병장이었다. 너무 가난하여 머슴살이(담살이)로 홀어머니를 봉양하였던 그는 ‘안 담살이’, ‘안 진사’ 등의 별명으로 불리었다. 안규홍은 전남 보성 출신이다. 본관은 죽산, 자는 제원(濟元), ..
2023. 6. 22.
[순국]‘훈춘 호랑이’ 황병길, 서른다섯에 지다
1920년 6월 1일, 훈춘의 3·1운동 지도자 황병길 순국 1920년 6월 1일, 독립투쟁으로 인한 과로로 쓰러진, 중국 훈춘(琿春) 지역의 3·1운동 지도자 황병길(黃炳吉, 1885~1920) 선생이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났다. 향년 35세. 그는 일찍이 안중근과 단지동맹(斷指同盟)을 맺고 의병투쟁을 벌였고, 두만강 너머 일본군 수비대를 습격, 큰 전과를 거두어 ‘훈춘 호랑이’로 불리었던 만주지역 항일 무장투쟁의 지도자였다. 함경북도 경원에서 소작인의 아들로 태어난 황병길은 가난하여 서당에 다니지 못했으나 독학으로 글을 깨쳤다. 1905년 을사늑약 이후 만주로 이주하여 1908년, 러일전쟁 전의 우리나라 간도 관리사였던 이범윤(1865~1940)이 조직한 사포대(射砲隊)에 가입하여 안중근, 최재형, ..
2023. 5.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