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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순국(殉國)29

[순국] 담살이 의병장 안규홍, 서른한 살에 지다 의병장 안규홍, 대구감옥에서 순국1910년 6월 22일, ‘담살이(머슴, 머슴살이)’ 의병장으로 불리는 안규홍(安圭洪, 1879~1910) 선생이 대구감옥에서 교수형으로 순국하였다. 그는 1907년 한국군이 강제 해산되자 머슴살이 동지들을 규합하여 창의(倡義)한 이래, 파청(巴靑)·진산(眞山)·원봉(圓峰) 대첩 등 의병 사상 기념비적 승리를 구가했던 보성 의진(義陣)을 이끈 의병장이었다. 향년 31세. 안규홍은 호좌(湖左) 의진의 선봉장 김백선(1849~1896), 영덕의 신돌석(1878~1908)과 함께 평민 의병장이었다. 너무 가난하여 머슴살이(담살이)로 홀어머니를 봉양하였던 그는 ‘안 담살이’, ‘안 진사’ 등의 별명으로 불리었다.  안규홍은 전남 보성 출신이다. 본관은 죽산, 자는 제원(濟元), .. 2024. 6. 22.
[순국]‘훈춘 호랑이’ 황병길, 서른다섯에 지다 1920년 6월 1일, 훈춘의 3·1운동 지도자 황병길 순국1920년 6월 1일, 독립투쟁으로 인한 과로로 쓰러진, 중국 훈춘(琿春) 지역의 3·1운동 지도자 황병길(黃炳吉, 1885~1920) 선생이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났다. 향년 35세. 그는 일찍이 안중근과 단지동맹(斷指同盟)을 맺고 의병투쟁을 벌였고, 두만강 너머 일본군 수비대를 습격, 큰 전과를 거두어 ‘훈춘 호랑이’로 불리었던 만주지역 항일 무장투쟁의 지도자였다.  함경북도 경원에서 소작인의 아들로 태어난 황병길은 가난하여 서당에 다니지 못했으나 독학으로 글을 깨쳤다. 1905년 을사늑약 이후 만주로 이주하여 1908년, 러일전쟁 전의 우리나라 간도 관리사였던 이범윤(1865~1940)이 조직한 사포대(射砲隊)에 가입하여 안중근, 최재형, .. 2024. 6. 1.
[순국] 곡기 끊어 순국한 독립운동가와 ‘민족가수’ 백년설 순국 111주기 자하 장기석(1860~1911) 선생을 기리며 1월 5일은 자하(紫下) 장기석(張基奭, 1860~1911) 선생의 순국 111주기였다. 1세기하고도 10년이 더 지났으니 역사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멀어졌던가. 나는 자료를 뒤져 그의 삶을 돌이켜보다가 그 주말에 성주 벽진의 집실 마을을 다녀왔다. 감옥에서 27일간 곡기 끊어 순국 선생을 알게 된 것은 2년 전, 순국 102주기를 맞은 칠곡의 독립운동가 만송 유병헌(1842~1918) 선생을 기리는 기사를 쓸 무렵이다(관련 기사 : “일왕 머리를 베었어야” 법정서 일갈한 선비의 사연). 경술국치 이후에 자정(自靖) 순국한 분 가운데서 이웃 고을 성주 출신인 선생의 함자를 발견하면서였다. 자하 장기석은 국권을 잃은 이듬해인 1911년 1월 5일.. 2022. 1. 23.
[순국] 선비는 ‘일왕의 두개골로 술잔을 만들지 못함을 한’했다 순국 102주기, 만송 유병헌(劉秉憲, 1842~1918)을 기리며8월 26일은 경북 칠곡의 선비 유병헌(劉秉憲, 1842~1918)의 순국 102주기다. 1918년 이날, 그는 보안법과 주세령 위반으로 복역하던 대구 감옥에서 8일간의 단식 끝에 자신의 목숨을 거두었다. 향년 77세. 을사늑약이 체결되었을 때 오적(五賊)을 성토하면서 시작된 그의 항일 투쟁은 일제 치하의 납세뿐 아니라, 토지조사 사업까지 거부하기에 이르렀고 세 차례의 투옥 끝에 마침내 옥중 순국한 것이다.  유병헌은 1842년 경상도 인동도호부(현 경상북도 칠곡군 북삼읍 숭오리 강진마을)에서 유익원의 맏이로 태어났다. 본관은 강릉, 호는 만송(晩松). 그는 진주 민란(1862)과 제너럴셔먼호 사건·신미양요(1871), 운요호사건(1875.. 2020. 8. 24.
[순국] 대한광복회 총사령 박상진, 대구형무소에서 순국 1921년 8월 11일, 고헌 박상진, 대구형무소에서 처형되어 순국1921년 8월 11일, 대구형무소에서는 대한광복회 총사령 박상진(朴尙鎭, 1884~1921)이 교수형으로 순국했다. 일찍이 경성감옥에서 순국한 왕산 허위(1855~1908, 1962 대한민국장)의 시신을 수습하여 금오산 아래에 모시고 1년의 시묘(侍墓)로 스승을 배웅한 제자, 반민족적 친일부호들을 처단하는 의열투쟁을 전개한 청년 독립운동가는 서른일곱에 뜨겁던 삶을 마감했다. 박상진은 울산 출신이다. 호는 고헌(固軒). 고향에서 한학을 공부하다가 열아홉 살(1902) 때 의병장 출신으로 서울 평리원 판사로 있던 왕산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904년 양정의숙 전문부에서 법률과 경제학을 공부하고 1910년 판사시험에 합격하여 평양법원에 발령.. 2019. 8.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