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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길 위에서

“이 죽음은 나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

by 낮달2018 2020. 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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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반도체 노동자의 백혈병 희생에 부쳐

▲ 그 죽음에 대한 사회의 관심은 영정을 담으려는 카메라에도 못 미쳤다. ⓒ이미지 프레시안(이상엽)

스물세 살의 여성 노동자가 죽었다.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린 박지연 씨다. 그이는 2004년 고등학교 3학년 때 삼성반도체 온양공장에 입사해 품질 검사 그룹 검사과 1라인에서 일했다. 엑스선 기계를 이용한 특성검사와 화학약품을 이용한 실험검사가 그이가 맡은 업무였다. 그이는 지난 3월의 마지막 날 오전 10시 55분에 숨졌다. 그의 죽음은 나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

 

스물셋 여성 노동자 박지연 씨

 

박지연 씨가 죽었다. 입사한 지 32개월째인 2007년 8월, 그이는 호흡곤란, 어지럼증, 구토, 하혈 등이 나타나 병원을 찾은 결과 급성 골수성 백혈병 판정을 받았다. 그녀는 4회에 걸친 항암치료에다 골수이식 수술을 받았지만 2009년 9월, 백혈병 재발로 두 차례에 걸친 항암치료를 받아야 했다.

 

삼성반도체 공장의 노동자 박지연 씨가 죽었다. 그이는 올 3월 20일 잠시 요양하러 고향인 충남 강경에 내려갔다가 일주일만인 3월 26일 다시 응급실로 실려 왔다. 그리고 닷새 뒤인 3월 31일 오전 10시 55분에 그이는 숨을 거두었다. 향년 23세. 그의 죽음은 우리와 어떤 관계도 없다.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 가운데 박지연 씨와 마찬가지로 백혈병에 걸린 이들은 적어도 22명에 이르고 이 가운데 아홉 명이 백혈병, 림프종 등 조혈계 암으로 사망했다. 박 씨의 죽음이 알려지고 난 뒤에 또 한 명의 여성 노동자가 세상을 떠난 사실이 확인되었다. 1999년 기흥공장에 입사해 2008년 4월 급성 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은 김경미 씨가 그이다. 김경미 씨는 지난해 11월 세상을 떠났다.

▲ 삼성반도체 여성 노동자 고 박지연(1987~2010) 씨. <미디어 충청> 사진

자사 공장에서 일어난 피해와 희생에 대해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할 삼성반도체는 적극적 보상과 추가 피해자 발생을 막기 위한 노력은커녕 외면과 무대응으로 일관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박지연 씨의 발병 원인은 아직도 ‘개인 질병’으로 되어 있다. 물론, 그의 죽음은 우리와 무관한 것이다…….

 

삼성은 박 씨의 투병 생활부터 장례에 이르기까지 산재 인정 활동을 집요하게 막았다. 박 씨는 삼성반도체에서 일할 때, 작업 속도 때문에 전원을 끄지 않고 덮개를 연 탓에 백혈병에 걸렸다. 그러나 삼성반도체 공장의 역학조사를 한 관계자들은 ‘그 기계는 그렇게 작동하지 않는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문상 온 삼성의 여성 노동자들은 ‘요즘은 회사에서 그 장비를 다룰 때 꼭 전원을 끄고 덮개를 열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전한다.

 

삼성반도체 노동자 박지연 씨가 죽었다. 그의 죽음으로 문제가 되자, 박 씨가 백혈병에 걸린 다음에도 같은 방법으로 작업해 왔던 삼성반도체는 이제야 ‘작업 수칙을 강요’하고 있다고 한다. 기업을 하다 보면 그런 부득이한 일이 있을 수도 있지만, 삼성은 나쁜 회사다. 그러나 삼성이 져야 할 책임과 나는 무관하다.

 

삼성은 박 씨가 처음 투병을 시작할 땐 관심도 주지 않더니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그제야 찾아와 산재 신청을 포기하면 치료비를 대주고 살고 있는 집도 고쳐주겠다며 박 씨 어머니를 회유해왔다고 한다. 박 씨의 임종이 가까워지자 삼성 측 관리자 2명이 또다시 어머니를 따라 다니며 병원비를 담보로 회유에 들어갔고 3~4명의 삼성 직원들이 병실 근처에서 만화책을 보면서 지키고 있었다고 한다.

 

삼성은 대단한 회사다. 삼성은 이 나라 경제의 상당 부분을 책임지고 있는 대표적 기업이다. 삼성은 해마다 대학 졸업자들이 최고의 직장으로 여기는 기업을 거느리고 있고, 기업 경영과 상속 과정에서 법을 어긴 오너는 그래도 불구하고 ‘존경받는 CEO로 꼽히곤 한다. 삼성은 역시 대단한 회사다. 집집이 삼성이 만든 상품이 하나씩은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삼성은 나쁜 재벌이다. 그이의 죽음은 삼성의 책임일 뿐 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스물세 살의 여성 노동자 박지연 씨가 죽었다. 그녀의 죽음은 삼성 앞에서도 막혔다. 성남 화장터에서 박 씨는 한 줌의 재가 되었고 그의 영정을 들고 삼성 본관까지 이동하려던 장의 행렬은 경찰에 가로막히기도 했다. 법을 숭상하는 정부, 이명박 정부의 경찰은 막는 데는 이력이 났다. 그녀의 마지막은 가슴 아프다. 그러나 이 죽음은 나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

▲ 그이의 장의행렬은 경찰에 막혀 삼성 본관에 이르지 못했다. ⓒ 이미지 프레시안(이상엽)

작가 황석영은 그의 소설(아우를 위하여)에서 ‘걸인 한 사람이 이 겨울에 얼어 죽어도 그것은 우리의 탓이어야 한다.’라고 했다. 신영복 선생은 ‘겨울밤 단 한 명의 거지가 떨고 있다고 할지라도 우리에겐 행복한 밤잠의 권리는 없다’라고 썼다. 모두 맞는 말이다. 그러나 박지연 씨의 가슴 아픈 죽음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스물세 살, 내 아이들보다 어린 나이의 이 여성 노동자의 죽음 앞에서 나는 눈물을 흘렸다. 그이가 항암치료를 거치며 견뎌야 했던 고통과 흘려야 했던 눈물 앞에 나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 나는 빌라도처럼 ‘손을 씻을’ 이유도 없다. 나는 그이와 같이 ‘힘없는 사람’일 뿐이다. 그이의 죽음은 나와 무관하다. 그 아픈 죽음 앞에 나는 우리의 무력을 한탄할 뿐,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아무것도…….

▲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던 4월에 박지연은 짧은 생애를 마쳤다. 그래서 꽃은 더 슬퍼 보이는 것일까.

그러나, 그러나 말이다. 우리는 정말 스물셋, 빛나는 젊음을 마감하고 떠난 이 여성 노동자의 죽음 앞에 우리에게 아무 책임이 없다고 말하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는가. 정말 그것뿐인가, 그것뿐인가…….

 

 

2010. 4. 7. 낮달

 


▲ 2018년 3월, 고 황유미 씨와 삼성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 행진이 삼성전자 앞 반올림 농성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겨레 사진

삼성전자 반도체와 엘시디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과 암 등 난치 질병에 걸린 노동자 모두가 보상을 받게 되었다. 박지연 씨가 세상을 떠난 뒤 8년 뒤인 2018년 11월, ‘삼성전자 반도체 등 사업장에서의 백혈병 등 질환 발병과 관련한 문제 해결을 위한 조정위원회’(위원장 김지형 전 대법관)에서 제시한 중재안을 양 당사자인 삼성전자와 ‘반도체 노동자의 인권과 건강 지킴이’(반올림)가 수용하게 되면서다. [관련 기사 : ‘삼성 백혈병’ 보상 11년 만에 마침표…피해자 전원 보상]

 

중재위의 중재에 따라 삼성전자가 반올림 피해자와 가족을 초청해 기자회견을 하면서 공개적으로 사과문을 낭독하고 재발 방지 대책도 세웠다. 2007년 여성 노동자 황유미 씨가 급성 백혈병으로 사망하면서부터 시작된 삼성전자 반도체 갈등은 황 씨가 세상을 떠난 지 11년, 중재가 시작된 지 4년 만에 겨우 타협점을 찾은 것이다.

 

이 길고 지루한 갈등은 유족과 함께 끈질기게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싸워 온 반올림의 투쟁으로 마침내 일단락을 지었다. 그러나 이 싸움의 당사자들인 유족들과 지금도 시간을 다투며 투병하고 있는 사람들은 물론, 이를 관심 있게 지켜본 이들에게도 불만족스럽다. 삼성은 결국 무책임한 살인 자본이라는 여론에 쫓겨서 마침내 양보안을 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 나라에서뿐 아니라 세계적인 기업으로서 명성을 떨치지만, 숱한 위법과 비리를 저지르면서 자본의 증식에만 몰두해 온 이 재벌 기업을 바라보는 세계의 시선도 그리 곱지 않다. 삼성은 이제 제삼세계 국가에 세운 공장에 그간의 반노동자적 경영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할 수밖에 없다는 무력감 가운데서 내가 실행한 것은 ‘삼성 물건 안 쓰고 살기’에 그쳤다. 그러나 내 개인적 삼성 불매가 삼성의 털끝 하나인들 건드릴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내가 그것을 지키며 사는 것은 비록 나만의 윤리적 소비에 그칠 뿐이지만, 그것이 내가 인간으로서 실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관련 글 : 삼성 물건 안 쓰고 살기]

 

2020. 4. 4.

 

 

‘삼성’ 물건 안 쓰고 살기

‘윤리적 소비’를 다룬 기사 “착한 커피, 혹은 더바디샵”을 쓴 것은 2007년 1월이다. 나는 거기서 ‘영악한 소비자’ 대신 ‘재화의 가치를 거기 투여된 노동으로 환산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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