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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풍진 세상에 /행복한 책 읽기

에베레스트- ‘등반의 상업화’가 부른 ‘탐욕과 협잡’

by 낮달2018 2020. 3. 14.

[서평] 마이클 코더스의 <에베레스트의 진실>

 

▲ 에베레스트는 돈을 벌게 해 주는 거대한 시스템이 되어가고 있다고 지은이는 생각한다.

누구나 산에 오른다. 레저조차 마치 전쟁 치르듯 즐기는 성미 급한 한국인들치고 맞춤한 등산복이나 등산화 등의 장비를 갖추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다. 주말마다 유명 산은 물론이거니와 지방의 거의 알려지지 않은 산에도 원색의 등산복으로 무장하고 전국에서 몰려든 ‘산악회원’들로 차고 넘친다.

 

편한 등산복 바지는 사람들의 일상복이 된 듯하고 산 아닌 관광지마다 등산복과 등산화를 갖추어 입은 사람들로 붐빈다. 레저(등산)의 일반화·보편화라고 할 만한 이런 현상에서는 마치 그런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면 ‘신중산층’에서 낙오할지 모른다는 조바심마저 읽힌다.

 

다시 떠오른 오은선의 칸첸중가 등정 의혹

 

지리산이나 설악산 같은 높은 산도 곧잘 타는 ‘세미-프로’(?)들이라도 본격 ‘등반’과는 거리가 멀다. 요즘은 ‘티베트 트레킹’ 같은 형식으로 해외에도 진출하는 모양이지만 ‘히말라야’라면 감히 쳐다볼 엄두를 내지 못하는 다른 세계의 일이다. 감히 넘볼 수 없는 까마득한 세계의 소식은 가끔 국내에서도 ‘14좌 완등’ 같은 뉴스를 통해 알려진다.

 

여성으로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히말라야 고봉 14좌를 완등한 산악인 오은선에 대해서 알게 되는 것도 그런 뉴스를 통해서다. 산악인 오은선은 최근 다시 뉴스의 중심인물로 떠올랐다. 지난 일요일 <서울방송(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정상의 증거는 신(神)만이 아는가- 오은선 칸첸중가 등정의 진실’ 편을 방송한 것이다.

 

▲ 안나푸르나에 오르고 있는 오은선 대장.  ⓒ SBS
▲ 오은선의 칸첸중가 등정은 등정을 도운 한 셰르파에 의해 부정되고 있다. ⓒ SBS

이 프로그램은 지금까지 14좌를 완등한 것으로 알려진 오은선의 칸첸중가(해발 8,586m) 등정에 대한 의문을 다시 제기했다. 방송은 여러 가지 의혹을 제기하면서 그이의 칸첸중가 등정의 증거가 매우 부실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등정의 증거는 오은선이 제시한 2장의 사진과 함께 등정했던 셰르파의 증언이다.

 

그러나 등정의 증거로 제시된 사진에 대해 히말라야 등정 기록 권위자인 엘리자베스 홀리 여사는 ‘어디에서나 찍은 사진’일 수 있다며 그 증거능력을 부인하고 있다. 또 셰르파의 증언은 함께 등정했던 3명 가운데 두 사람의 동의를 받지 못하고 있다. 한 명은 침묵하고 있고 나머지 한 명은 ‘정상 등정은 거짓말’이라고 증언한 것이다.

 

진실은 ‘신과 산’만이 알고 있나

 

▲ 오은선 대장. ⓒ SBS

이 의혹 드라마의 핵심은 요샛말로 하면 ‘인증샷’의 부실, 그리고 등정을 같이한 셰르파의 엇갈린 증언이다. 그리고 이런 문제를 낳은 것은 등정의 현장이 인간의 발길을 좀체 허용하지 않는 지구상 세 번째로 높은 칸첸중가봉이라는 것이다.

 

거기 오른 인간의 자취를 기억해 줄 수 있는 것은 오직 말없는 산과 동행한 셰르파밖에 없다. 그것은 바꾸어 말하면 진실의 열쇠는 인간이 쥐고 있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기도 하다.

 

극한의 기후와 높이로 인간의 한계를 역설적으로 증명하고 있는 이들 산에 대한 인간 도전의 역사는 꽤 뿌리 깊다. 1953년 에드먼드 힐러리가 처음으로 에베레스트산에 등정한 이래, 히말라야의 산봉우리들은 그 극한에 도전하는 인간의 도전 앞에 쉽게 그 속살을 내어주지 않았다.

 

그러나 힐러리의 에베레스트 등정 50주년을 맞은 2003년 시즌 동안 총 264명이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르는 신기록이 수립됐다. 이듬해에는 330명이, 2006년에는 460명이, 2007년에는 근 600명이 넘는 사람이 산의 정상을 밟았다. 더는 에베레스트는 인간의 발길을 허용하지 않는 금단의 땅이 아닌 것이다.

 

산에 사람이 꾀기 시작하면서 에베레스트는 변질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변질한 것은 에베레스트가 아니라 거기 모이는 사람들이다. 특히 상업등반대는 등반을 일종의 상행위로 타락시키며 에베레스트를 가장 높은 ‘인간성의 무덤’으로 만들고 있다고 미국 언론인 마이클 코더스는 증언한다. 자신의 에베레스트 등반 경험을 곁들인 그의 저작 <에베레스트의 진실(원제 High Crimes)>(김훈 옮김, 민음인 펴냄)을 통해서다.

 

‘탐욕과 협잡의 공간’으로 바뀐 에베레스트

 

이 책은 에베레스트 등반 후 하산길에서 지쳐 쓰러지지만, 가이드와 셰르파에게 버림받고 실종된 한 볼리비아 출신 미국 의사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아버지의 실종 사건을 파고든 딸의 작업에 동참한 저자는 ‘탐욕과 협잡의 공간’으로 변질한 에베레스트를 충격적으로 전하고 있다.

 

‘충격적’이라는 것은 기껏해야 주말에 등산을 즐기는 우리 시대의 보통 사람들의 상상을 뛰어넘는 일들이 세계의 지붕이라는 히말라야 일원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거기에는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동료를 살린 고귀한 우정도, 자연이 깨우치는 겸허와 달관의 철학 등, 등반의 순수성은 사라지고 있다. ‘산이 있어 오른다’는 고전적 금언이 무색할 지경이다.

 

▲  에베레스트의 진실 ( 민음인 , 2008)

정상에 오를 수만 있다면 뭐든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이 히말라야에 모인다. 베이스캠프 주변에서는 필수적 등산 장비 절도와 마약 밀수가 공공연하게 저질러지고 일부 산악인들은 해발 6천m가 넘는 곳에서 매일 대마초와 맥주, 위스키에 몽롱하게 취해서 지내기도 하고, 창녀들과 뚜쟁이들이 횡행하기도 한다. 이 모든 타락상의 배경은 ‘돈과 체력’만 있으면 에베레스트를 정복할 수 있는 현실이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변화 앞에서 원로 산악인 에드먼드 힐러리경은 다음과 같이 탄식한다.

 

“제게는 에베레스트의 미래가 밝아 보이질 않습니다. 베이스캠프에는 천 명의 사람이 북적대고 오백 조의 텐트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음식 파는 곳, 술 마시는 곳, 요즘 시대의 젊은이들이 즐길 만한 그 밖의 여흥거리를 제공하는 곳도 있고요…… 저는 베이스캠프나 그 근방에 주저앉아 캔맥주나 들이키는 일 따위를 등산으로 여기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 타락상에 비길 수 없는 더 끔찍한 일은 거기에 동료애와 희생정신, 협동과 배려 같은 덕목이 사라져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2006년 5월, 에베레스트를 단독 등반 중이던 데이비드 샤프가 죽었다. 그의 죽음은 ‘밑바닥까지 추락한 에베레스트 등반이라는 스포츠의 최후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그가 구조를 기다리며 죽어가던 며칠 동안 불과 손닿을 거리를 ‘사십여 켤레의 등산화가 두 번씩이나 그에게서 멀어져 갔’다. 힐러리와 스페인 저명 산악인 후아니토 오이아르사발은 말한다.

 

“사람의 목숨은 산 정상에 오르는 일보다 훨씬 더 소중합니다. 헌데 그간 사람이 죽어가는 걸 보고도 그냥 지나치는 일이 너무 자주 일어났습니다.

저는 에베레스트 등반을 대하는 모든 사람의 태도가 끔찍한 형태로 변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그저 그 꼭대기에 오르고 싶어 하기만 합니다. 사람들은 곤경에 빠진 사람을 봐도 아는 체를 하지 않습니다.”
   -  에드먼드 힐러리

 

“그 산은 여러 해 전에 이미 서커스장이 되었다. 그리고 상황은 더 악화하고 있다.”
   - 후아니토 오이아르사발

 

2004년에 가이드 한 명과 두 명의 셰르파를 고용해 에베레스트를 오르다 실종된 닥터 닐스 안테사나의 경우도 비슷했다. 이 책은 안테사나의 딸 파비올라와 함께 저자가 파헤친 닥터 안테사나의 실종 사건 전말기라 할 수 있다.

 

닥터 안테사나는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뒤 하산하다가 가이드인 구스타보 리시와 두 셰르파에게 버림받은 뒤 실종됐다. 하산은 등정 못지않게 위험한 일이라는 걸 닐스는 미처 몰랐다. 이를 충고하지 않은 가이드 구스타보는 ‘상업 등반’의 과실을 챙기는 데 혈안이 된 숱한 사이비 가이드의 한 사람이었다.

 

등반의 ‘상업화’가 초래한 사고

 

그의 고객은 탈진과 환각에 빠졌지만, 가이드는 비디오 촬영에 골몰하며 40여 분을 소모했다. 그에게는 정상 등정을 자신의 경력에 넣고 그것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것에 마음을 뺏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의 고객은 쓰러진다.

 

두 셰르파가 밧줄로 닐스를 묶어 절벽 아래로 내리는 등 악전고투했지만 진전은 없었다. 심해지는 강풍과 바닥난 산소통을 두고 구스타보는 혼자 하산했고 두 셰르파 역시 닐스에게 겉옷을 벗어준 뒤 하산해 버렸다. 그리고 예순아홉 살의 닐스는 천천히 죽음을 맞는다.

 

지은이는 닐스의 실종을 추적하다가 구스타보에게 고객이 그렇게 위급한 지경인데 왜 그렇게 정상에서 오랜 시간을 허비하였느냐고 묻자 구스타보는 이렇게 대답한다.

 

“정상 풍경이 너무 아름다웠기 때문이죠. 정말 근사했어요. 판타스티코(fantastico)!”

 

두 셰르파 역시 다르지 않았다. 눈 벽에 앉혀놓고 내려올 때까지 닐스는 살아 있었지만 한 셰르파는 다른 셰르파를 불러 입단속을 했다.

 

“저 사람들한테 우리가 그 사람 곁을 떠날 때 그 사람이 아직 살아 있었다는 말 같은 건 하지 말아요.”

 

하산 뒤 구스타보는 자신의 고객이 산에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고 자신의 웹사이트에는 스페인어로 ‘정상! 구스타보 리시가 에베레스트를 정복했습니다’라고 자랑했다. 하지만 자신이 고객을 구하려는 노력을 하지도, 자신이 그 산에 한 사람을 버리고 내려왔다는 사실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에베레스트 정상을 밟은 덕에 가장 유명한 등산 가이드가 되었던 로브 홀은 1996년, 죽어가는 고객을 뒤에 남겨놓기를 거부했기에 거기서 최후를 맞았다. 그리고 8년 후 닐스는 그 산에서 자신의 가이드에게 버림받고 죽었다. 닐스는 단지 형편없는 가이드를 선택했던 불운한 사람이었던 것일까.

 

▲ 2004년 5월 16일 이른 아침에 에베레스트를 오르는 닐스.

에베레스트산에서 일하는 가이드들에게는 어떠한 자격 조건도 요구되지 않는다. 등반 훈련, 경험, 범죄기록이야 어떠하든, 유일한 자격 조건이라고는 가이드로 일하기 위해 자기네 정부에 돈을 낼 의향이 있느냐 하는 것뿐이다.

 

에베레스트산이 지상에서 훈련을 가장 잘 받고 가장 경험이 풍부한 가이드들을 끌어들이고 있는 건 명백한 사실이다. 그러나 일부 가이드들은 ‘크레바스 구조법도 모르고, 눈사태에서 안전을 확보할 만한 자격도 갖추고 있지 못하고, 기본적인 응급처치 훈련도 받지 못했’던 것이다. 이러한 엉터리 가이드를 거를 수 없을 만큼 이미 히말라야 등반은 타락하고 있다.

 

에베레스트도 치부를 위한 시스템?

 

에베레스트는 현존하는 가장 높은 봉우리긴 하지만 그것이 가장 오르기 어려운 산이라는 뜻은 아니다. 베테랑 산악인들은 오늘날 에베레스트는 8천 미터 급 고봉들 가운데서 ‘사실상 가장 오르기 쉬운 산’이라고 말한다. 여러 기술적 어려움을 극복하게 해 주는 사다리나 고정 로프 덕에 매듭짓는 법도 잘 모르는 초심자들도 높은 곳에서 견딜 수 있는 유전적 자질과 체력을 가지고 있으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 산 외에 오른 산이 몇 군데 되지 않는 이도 에베레스트를 오르고 나면 하나같이 ‘세계적인 산악인’이라는 칭호를 얻는 상황에서 에베레스트는 돈을 벌게 해 주는 거대한 시스템이 되어 가고 있다고 지은이는 지적한다. 산악인뿐 아니라 에베레스트 강의, 슬라이드 쇼, 다큐멘터리, 리얼리티 텔레비전 등으로 에베레스트는 마치 일상생활의 한 부분으로 편입하고 있다.

 

책은 저자의 경험(통신원 자격으로 산 정상에 오르는 과정을 보도하기 위해 ‘코네티컷’ 에베레스트 등반대에 참여)과 닐스 안테사나의 실종 사건을 추적하는 두 이야기를 긴박감 있게 들려주며, ‘에베레스트의 변질’을 구체적으로 드러내 준다.

 

한때는 숱한 산악인들의 꿈이요, 정복의 대상이었던 에베레스트는 돈 많은 일반인을 위한 최고급 레저의 대상으로 변모해 가고 있다. 또 에베레스트 정복은 유명세를 탈 기회로 이용되고 있는 등 등반의 순수성은 상업주의로 오염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상업주의의 맥락은 적어도 한국 땅에서 경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세계 최초’, ‘여성 최초’라는 타이틀에 대한 집착과 잇닿는 것처럼 보인다. 오은선의 ‘칸첸중가 의혹’은 히말라야 등정조차도 경쟁적으로 이루어지고 과정이 아니라 성과만을 중시하는 우리의 사회의 문제로 환원될 수 있다.

 

고산 등반은 이미 자본을 절대 필요로 한다. 한 달에 2억 원 정도의 비용이 든다는 8천m급 등반에 자본은 이미 그 처음과 끝을 좌우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순수한 알피니즘 정신’을 요구하는 것은 지나친 결벽주의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칸첸중가 의혹’이 결국은 그런 경쟁주의의 필연적 결과라는 점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

 

히말라야의 고봉을 오르는 고산 등반은 혹독한 주변 환경과 인간 한계에 대한 도전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다. 따라서 지금 추구되어야 할 것은 경쟁과 성과가 아니라 그런 기본을 확인하는 ‘등반의 순수성’이다.

 

결국, 이 책에서 저자는 등반의 상업화가 초래한 한 아마추어 등반가의 죽음을 통해 지상에서는 사소한 범죄에 불과한 일이라도 높은 산에서는 인명을 앗아 가는 ‘치명적인 범죄(High Crimes)’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하고 있다.

 

2010. 8. 27. 낮달

 

 

 

에베레스트 등반? 2억만 내면 됩니다

[서평] 마이클 코더스의 <에베레스트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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