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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여행, 그 떠남과 이름의 기록

겨울 여행, ‘눈꽃 전차’를 만나다

by 낮달2018 2019. 1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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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함께한 겨울 여행

▲ 철 이르게 찾아온 목련꽃의 행렬이 '목련 전차'라면 이 가로수의 행렬은 '눈꽃 전차'라고 할 수도 있으리라 .

겨울 여행에서 눈을 만나는 것은 예사롭지 않은 행운이긴 하다. 그러나 자칫 그것은 여행자의 발길을 묶어 예기치 않은 여정의 걸림돌이 될 수도 있으므로 에누리 없이 행운이라고는 못한다. 하여, 눈은 풍성하게 내리되 길이 막히지 않고 눈부신 설경을 펼쳐 줄 수 있다면 그것은 가히 ‘서설(瑞雪)’이 될 수 있으리라.

 

그러나 성년의 어떤 시기부턴 ‘눈’은 그리 생광스러운 배경이 아니다. 푸짐하게 내릴 때 주는 기쁨과 감동은 ‘잠깐’이지만 쌓인 눈이 얼고 다시 녹는 과정에서 겪어야 하는 ‘불편’과 ‘지저분함’은 ‘오래’이기 때문이다. 큰 눈 온 다음 날 발자국 하나 없는 하얀 설원을 바라보며 지른 탄성은 이내 이런저런 불편 때문에 내는 짜증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관련 글 : , ‘설렘과 축복에서 불편 불결]

 

눈 내린 뒤의 풍경은 어디 없이 그렇고 그렇다는 생각은 바로 이런 불유쾌한 경험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때로 눈은 지상에 마치 환상 같은 풍경을 연출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별 기대없이 떠난 겨울여행에서 그런 풍경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예사롭지 않은 ‘행운’이었다는 얘기다.

 

이번 겨울은 유난히 눈이 잦았다. 그것도 ‘폭설’이라 해도 좋을 만큼 푸짐하게 내린 날이 이어졌다. 그리고 쨍쨍한 영하의 날씨가 이어지면서 그늘마다 얼어붙은 눈이 흉하게 남아 있다. 다행히 도로의 눈은 거의 다 녹은 듯 보였다. 지난 월요일 오후에 우리 내외가 망설임 없이 길을 떠난 것은 그래서였다.

 

수안보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숙소의 온천탕은 오래되었지만 깨끗했고 무엇보다도 뜨거웠다. 더도 말고 한 며칠쯤 거기 묵으며 온몸을 지지고 싶을 만큼. 이튿날 아침 충주를 향하면서 우리는 고개를 갸웃했다. 길 주변 산등성이에 쌓인 눈이 ‘잔설’로 보기엔 아주 새뜻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여긴 최근에도 눈이 좀 왔나 보네.”
“그러게요. 그래도 길이 괜찮아서 다행이야.”

 

남한강을 건너 하얗게 눈을 뒤집어쓴 가로수의 행렬을 만났을 때, 아내는 탄성을 질렀다. 그런데 길가에 차를 대고 연신 사진기의 셔터를 눌러대면서도 나는 좀 얼떨떨하기만 했다. 그것은 난생처음 보는 풍경이어서일까, 그 풍경의 의미가 잘 헤아려지지 않았다.

 

은빛 ‘눈꽃 전차’를 만나다

 

눈이 내리고 적어도 이틀은 좋이 지났으리라. 나뭇가지에 얹힌 눈은 바람에 떨어지고, 영하의 날씨는 눈을 코팅한 것처럼 나뭇가지에 얇은 막을 씌웠다. 그리고 영하의 바람과 햇살을 받으며 나뭇가지들은 시방 은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것은 남도의 어느 국도에서 만날 법한 봄의 벚꽃 행렬 같기도 했다.

 

“저걸 뭐라고 해요?”
“글쎄, ‘눈꽃’이라고 하기도 그렇고, ‘상고대’라 하기도 그렇네…….”

 

‘눈꽃’은 ‘나뭇가지 따위에 꽃이 핀 것처럼 얹힌 눈’(표준국어대사전)이고 ‘상고대’는 ‘나무나 풀에 내려 눈처럼 된서리’다. 눈이 내린 뒤의 풍경이므로 당연히 ‘상고대’는 아니다. 그런데도 ‘눈꽃’이라고 이름 붙이기가 망설여진 것은 눈의 양감이 부족했다.

 

하얗게 은빛으로 빛나는 눈꽃 가로수의 행렬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철 이르게 찾아온 목련꽃의 행렬’을 ‘목련 전차’라 노래했던 손택수 시인을 따라 ‘눈꽃 전차’라고 이름 붙일 수 있을까. 그 눈꽃 전차는 남한강 물길을 따라 이어지는 국도변을 흘러가고 있었다.

▲ 탄금대의 설경. 눈꽃을 인 소나무는 장엄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
▲ 소나무의 잎에 내려 얼어붙은 눈꽃은 마치 흑인 여성들의 별난 조발처럼 보였다 .

눈이 ‘좀’ 온 정도가 아니라는 걸 안 것은 탄금대 공원에 들러서였다. 오전 열 시, 녹지 않고 얼어붙은 눈이 두툼하게 깔린 탄금대 공원은 적막했다. 한겨울의 눈 쌓인 공원에는 솔숲이 아름다웠다. 소나무의 서슬 푸른 침엽에도 눈은 어김없이 ‘코팅’되어 있었다. 하얗게 눈이 도포된 솔잎은 마치 흑인 여성들의 유별난 조발(調髮)처럼 보였다.

 

사위를 뒤덮은 눈과 적막, 눈꽃을 뒤집어쓴 나무와 숲의 풍경이 악성 우륵이 뜯던 가야금의 선율도, 신립 장군의 죽음으로 얼룩진 탄금대의 슬픈 역사도 간단히 재워 버린다. 눈길을 조심조심 걸어 탄금대 뒤편 남한강의 기암절벽, 열두대를 거쳐 탄금정에 오른다.

 

자욱한 안개 너머로 흐르는 남한강 저편이 아련했다. 신립 장군이 열두 번의 싸움 끝에 승산이 없자 여기서 투신 자결했다고 해서 열두대라 했다던가. 활의 열기를 식히고자 열두 번이나 오르내린 암벽이라고 해서 열두대라던가.

▲ 중앙탑 주변의 소나무의 잎에 내려 얼어붙은 눈꽃은 독특한 아름다움으로 다가왔다.
▲ 중원 탑평리 칠층석탑(국보 제6호)

 

다시 길을 달려 충주시 가금면의 국보 제6호 ‘중원 탑평리 칠층석탑’에 이른다. 여전히 연변에는 눈꽃 전차가 끊어질 듯 이어지고 있었다. 중원문화의 중심지인 충주의 상징이라는 이 탑은 현재 남아 있는 신라의 석탑 가운데 가장 높은 탑이다(14.5m). 신라 원성왕 때 국토 중앙에 조성되었다고 하여 ‘중앙탑’이라 불린다.

 

높다란 언덕 위에 우뚝 선 중앙탑 주변에도 눈부신 은빛 눈꽃이 어지러웠다. 우거진 솔숲에 축복처럼 하얗게 내린 눈꽃, 그 은빛은 푸른 솔잎과 어우러져 장엄하게 빛났다. 늘어진 버드나무 가지에 내린 눈꽃도 자못 신비로웠다.

 

언제까지라도 거기 머물고 싶게 하는 풍경이란 흔하지 않다. 남한강 조정지댐으로 만들어진 탄금호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나뭇가지들이 이고 있던 눈꽃들이 난분분 눈처럼 쏟아져 내리곤 했다. 아내는 연신 탄성을 지르며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었고 그것을 지인들에게 보내느라 바빴다.

 

애당초 탑을 보러 온 것이지만 나는 굳이 탑을 둘러보지 않았다. 멀리서 가까이서, 설원 중앙에 우뚝 서 사방을 굽어보고 있는 탑의 모습을 여러 장 필름에 담았을 뿐이다. 탑은 기회가 있으면 얼마든지 다시 만날 수 있을 터. 그러나 눈꽃이 연출해 주는 이 은빛의 축제는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인가.

 

이번 겨울 여행에서 우연히 만난 환상적 풍경을 우리는 쉬 잊지 못할 것이다. 이 경이의 감동은 얼마나 오래갈까. 이제 본격적인 겨울, 봄은 아직 멀다. 남은 시간 동안 눈은 얼마만큼 다시 찾아올까. 아쉬움 속에 우리는 다시 은빛 눈꽃 전차를 뚫고 귀로에 올랐다.

 

 

2013. 1. 9.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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