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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부음, 궂긴 소식들

[근조] 고문 없는 세상에서 편히 쉬시라

by 낮달2018 2019. 12.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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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태 전 의원, 2011년 12월 30일

▲  손문상의 그림세상 (< 프레시안 > 2011. 12. 30)

김근태 전 의원이 세상을 떠났다. 어제저녁 YTN에서 오보가 떴을 때 아내와 아이들이 숙연히 애도하는 걸 보면서 그가 남긴 자취가 적지 않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 그렇다. 그는 풍운아였음에도 시대가 품어주지 못한 이다.

 

나는 그를 개인적으로 전혀 알지 못한다. 내가 아는 것은 매체를 통해 알려진 그의 이미지에 그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의 모습에서 인간적 겸손과 진정성을 느끼곤 했다.

 

나는 그가 고통스럽게 지나온 7, 80년대의 민주화 투쟁과 무관하지만, 80년대의 끄트머리에서 교육 민주화 운동의 말석에 참여한 것을 통해 그에게 동지적 연대를 강하게 의식하고 있었다.

 

지난 총선에서 그가 도봉구에서 낙선했을 때, 나는 내가 모욕받은 듯한 치욕을 느꼈다. 도봉구민들은 뉴타운의 신기루에 눈이 멀어 경박한 뉴라이트 신지호를 선택했다. 나는 야당의 참패 가운데서 유독 그의 낙선이 마음 아팠다. 그것은 마치 그가 꿰뚫고 온 7, 80년대의 역사와 진보에 대한 유권자들의 폄훼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 <한겨레>의 ‘오늘의 트위터’에는 “괜찮은 정치인들이 관심과 힘을 필요로 할 때는 아무것도 않고 있다가 그들이 벼랑 끝에 서고 나서야 발 구르는 것에 죄책감을 느낀다. 노 대통령을 그렇게 보냈는데 김근태 고문이 위독하다는 소식에 다시 참담해진다. 매번 너무 늦다.”는 멘션이 실렸다.

▲ 김근태 영정 사진.  ⓒ 김근태 재단

그는 결국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64년, 짧은 향년을 마쳤다. ‘매번 너무 늦다’는 남은 자들의 자각은 끝없이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그가 믿었던 진보의 역사는 느리지만 앞을 향해 나아가고 있음은 분명하다. 고 김근태 선생의 명복을 빈다. 그가 가는 곳, 고문 없는 세상에서 편히 쉬시라.

 

 

2011. 12.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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