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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부음, 궂긴 소식들

어떤 부음(訃音), 한 세대의 순환

by 낮달2018 2019. 1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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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테 콜비츠, 어머니와 아이

지난 토요일 오후에 시방도 고향을 지키고 있는 이웃 형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내 선친과 지기였던 그의 부친이 별세했다는 기별이었다. 의례적인 위로의 말을 건네고 전화를 끊으면서, 그제야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지 벌써 20년이 지났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고 나서 비로소 이제 세상에 아버지 세대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3년 전, 어머니를 여의면서, 이제 아버지, 어머니의 동기간(同氣間)은 아무도 남지 않았다는 깨우침에 가슴이 아려왔던 기억을 희미하게 떠올렸다.

 

아버지는 2대 독자셨고, 누이가 두 분 계셨다. 따라서 아버지 동기간은 모두 여섯 분인 셈인데, 당신의 막내 누이, 그러니까 내 작은고모는 아들 하나만 남기고 일찍(내가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 세상을 뜨셨다. 고모는 그때 30대 중반쯤이었던 듯한데, 유방 절제 수술까지 받았지만, 목숨을 잇지는 못했다. 아주 유순한 성격이었고, 올케가 되는 어머니와도 사이가 아주 좋았다 했다.

 

그 고모의 부음을 받자, 머리를 풀고 마당에 주저앉아 통곡하던 어머니의 모습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그러나 어머니께서는 당신의 지아비가 동기간 중 두 번째로 세상을 떠나리라고는 생각지 못하셨을 것이다. 아버지께선 간암으로 오래 투병하다 세상을 버리셨다.

 

큰 고모부가 다음 차례였고, 큰고모가 뒤를 이었다. 불과 몇 해 사이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고모부는 노환으로, 고모는 짐작건대 파상풍으로 넘어지셨던 듯하다. 고모의 죽음 앞에서 어머니의 슬픔은 좀 더 곡진했던 것 같다. 고모가 마지막으로 세상에 남은 지아비의 친동기였으니.

 

그다음 차례가 작은 고모부였다. 내가 한 차례 문병을 다녀온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때 이미 노쇠하여 기동할 수 없게 된 어머니께선 의외로 담담하게 그 부음을 받아들이시고, 이제 당신만 남았다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리신 것을 기억한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게 세 해 전이다. 그보다 10년이나 앞서 형님이 가셨으니, 그때야 어머니께선 자신의 가슴 속에 묻은 맏이의 죽음으로부터 비로소 놓여나셨을 것이다.

 

어머니가 아버지 동기간의 마지막이었다고 했지만, 아직도 한 분이 남아 계신다. 일찍 세상을 뜨신 작은고모를 대신해 처녀의 몸으로 작은 고모부 댁의 안주인이 되신 ‘새 작은고모’가 그분이시다. 딸이 죽은 뒤 사위가 맞은 후실을 ‘움딸’이라 하고, 시집간 누이가 죽은 뒤에 다시 장가든 매부의 후실을 ‘움누이’라 하니 새 작은고모는 아버지께는 ‘움누이’였던 셈이다.

 

그 시절의 법도가 그랬던지, 새 고모는 고모부와 함께 신혼여행을 마치고 우리 집에 들렀고, 그때만 해도 생존해 계셨던 아버지를 스스럼없이 ‘오라버니’로, 어머니를 ‘형님’이라 불렀다. 물론 부모님은 그녀를 ‘유실(柳室)’이라 불렀다.

 

나는 지금도 새 고모의 성씨가 무엇인지 모른다. 자기의 실존과는 무관하게, 새 고모는 돌아가신 고모의 자리를 완벽하게 이어받았고, 우리 가족도 추호의 의심도 없이 그녀를 고모라 칭하고 대했다. 그게 그 시대를 규정짓던 법도였다.

 

새 고모도 요즘 건강이 좋지 않으시다고 한다. 따로 소생이 없는 새 고모는 전처가 낳은 아들 하나만 바라보고 수십 년을 사시다 지아비를 먼저 떠나보내셨다. 시방, 고모는 어쩌면 남은 날들을 헤아리고 계실지 모르겠다.

 

살아 계시면, 아버지께서 여든여덟, 어머니께선 아흔하나가 되니, 그 세대 중 살아 계신 분들이 손꼽을 정도라는 게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한 세대가 가고 우리 세대가 이제 장년의 끝, 노년의 입구에 다다랐다. 한 세대와 다른 세대의 순환이란 건 결국 시간의 몫인 것이다.

 

2005. 8. 15. 낮달

 

 

환절기는 노인에게 치명적이다. 갑자기 날씨가 바뀌면서 기력이 떨어져 외부 환경에 적응하는 힘이 예전 같지 않은 노인들의 급서 소식이 줄을 잇는 까닭이 거기 있다.

 

봄이 오는가 했는데, 꽃샘추위가 어지럽다. 불현듯 고모 생각이 난 건 얼마 전 집안 아저씨의 문상을 다녀온 탓인지 모르겠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이지만, 우리는 고모를 대하면서 한 번도 그이가 ‘남’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후덕하고 인정이 남다르신 고모님께서 살아 계신 동안이라도 건강하셨으면 하고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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