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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행복한 책 읽기

역사의 그늘을 더듬은 인문학자의 박람강기(博覽强記)

by 낮달2018 2019. 10.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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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강명관의 <조선의 뒷골목 풍경>

▲ 푸른역사, 2008(초판 17쇄)

일찌감치 나는 강명관을 읽고 싶었다. 물론 그의 저작들이 신문 지상에 소개될 때부터다. 그가 매주 한 차례씩 <한겨레>에 연재하던 ‘고금변증설’을 읽으면서 그 생각은 굳어졌다. 그러나 인연이 닿지 않아서인지, 차일피일하다 <조선의 뒷골목 풍경>을 산 게 지난달 말께다.


최근 3년간 가장 흥미진진하게 읽은 책

 

열흘 전쯤부터 학교에 가져다 놓고 틈틈이 읽기 시작했다. 마지막 몇 장이 남았을 때 나는 동료에게 그렇게 말했다. 최근 한 삼 년 동안 가장 즐겁게 그리고 흥미진진하게 읽은 최고의 책이라고. 단숨에 읽을 수 있는 책이었지만, 나는 그것을 두고두고 읽었다. 아까워 한꺼번에 먹어 치울 수 없었던 박하사탕처럼.

 

강명관은 한문학자다. 그는 한문학 연구를 위해 선인들의 문헌을 읽어야 하는 과정에서 ‘문학과 관련 없는 이런저런 자료’를 만나는데 이런 자료를 ‘계륵(鷄肋)’이라 말한다. ‘애써 챙겨두자니 별 소용이 없을 것 같고, 그냥 버리자니 못내 아깝다’(머리말)는 뜻에서다. 그가 건강 문제로 얻은 뜻밖의 휴가에서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서 쓴 책이 <조선의 뒷골목 풍경>이다.

 

‘강명관 교수와 함께하는 유쾌한 조선 풍속기행’이란 부제가 붙은 이 책에서 저자는 ‘조선이 조용한 아침의 나라’라는 일반적 평가를 부정한다. 조선의 뒷골목은 “유흥계를 호령한 무뢰배들, 투전 노름에 골몰한 도박꾼, 술과 풍악으로 일생을 보낸 탕자들, 반양반의 기치를 높이 든 비밀 폭력조직, 족집게 대리시험 전문가, 벼락출세한 떠돌이 약장수, 설렁탕 한 그릇에 조직을 배신한 도적…….”(책 표지)으로 어지러운 것이다.

 

‘역사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왕과 양반처럼 고귀한 사람들 아니면 홍경래나 임꺽정처럼 무언가 큰 사고를 낸 사람들뿐’이지만 저자의 박람강기(博覽强記)는 뒷골목에서 노닐던 ‘역사가 기억하지 않는 조선 사람들’을 찾아낸다. 그는 서설(‘잊혀진 조선 사람들의 역사를 위하여’)에서 굳이 ‘하찮은 잡동사니 같은 주제’를 다루는 이유를 대체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우리 역사는 조선의 금속활자를 구텐베르크의 그것보다 88년 앞섰다고 자랑한다. 그러나 한국의 금속활자는 유럽의 그것과는 달리 지식의 대중적·보편적 확산에 전혀 기여하지 못했다. 이는 한국사라는 컨텍스트 속에서 금속활자의 의미를 규명하지 않고 ‘민족 문화유산’이란 이름으로 모든 것을 은폐해 버리는 사례다. 다양성과 구체성을 지워버리고 단일한 중심만을 내세워 대상을 왜곡시키는 권력이야말로 중심적 담론의 독재가 아니겠는가.”

 

그러면서 저자는 ‘인간은 결정된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해가는 존재’이며, ‘시간 속에서 스스로를 변화시켜 나가는 존재’로 이해한다. 역사의 그늘에 가려진 인물들을 통해 조선 후기사를 바라본 이 한문학자는 역사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다음과 같이 진술함으로써 몸풀기로서의 서설을 맺는다.

 

“현재의 인간은 시간적 변화의 산물이며, 역사학은 바로 변화하는 인간을 해명하는 학문이다. 나는 어떤 교훈적, 목적 의식적, 기념비적 역사관도 믿지 않는다.”

 

<조선의 뒷골목 풍경>에서 저자는 지배 중심의 역사에 묻힌 서민들의 삶과 문화를 복원한다. 그는 <조선왕조실록>과 <백범일지>는 물론, 개인 문집 등 다양한 자료를 통해 이른바 ‘뒷골목 비주류 인생’들의 삶을 고스란히 되살린다.

▲ 투전도(김득신)  조선의 뒷골목 풍경 삽입 그림

그들은 민중의(民衆醫), 군도(群島)와 땡추, 노름꾼, 왈자, 탕자이며, 정절을 벗어던진 여인네다. 그뿐만 책 속에는 아니라 타락과 부정으로 얼룩진 양반들의 과거가, 조선 후기의 유행을 주도한 오렌지족인 별감이, 서울의 도살면허를 독점했던 반촌(泮村)과 탕자들이 벌이는 호사의 극이 온갖 자료들의 뒷받침을 받으며 차례차례 드러난다.

 

되살린 ‘뒷골목 비주류 인생’들의 삶 

 

교과서의 역사를 ‘공문서 역사’라고 본다면 거기에선 아무도 삶과 인간의 냄새를 맡을 수 없다. 거기 등장하는 이들은 임금이거나 장수고, 역적이거나 충신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명관이 펼쳐 보이는 이 조선 후기사에 좌충우돌 등장하는 이들은 모두 조금씩 모자라거나 조금씩 넘치는 이들로, 바로 오늘도 우리 주변에서 살아 있는 캐릭터들이다.

 

비록 그게 18, 9세기의 조선 풍경이지만, 거기 하나씩 모습을 드러내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오늘날에도 낯설지 않다. 인간의 삶이 지속되는 한, 한 사회의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을 터이기 때문이다. ‘모이면 도적이 되고 흩어지면 백성이 되’는 원리야 저 봉건사회나 이 자본주의 사회나 무엇이 그리 다르겠는가.

 

<조선의 뒷골목 풍경>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이들은 무명의 의사들이다. 허준이나 이제마처럼 학식을 갖추고 조정에 중용된 명의들이 아니라 제대로 의서 한 권 읽지 못했지만 숱한 임상의 경험으로 죽어가는 백성들을 살려낸 민중의 조광일, 백광현, 피재길 등이 그들이다.

 

그들은 이름을 얻으면서 어의(御醫)가 되기도 했지만, 이들의 존재가 사실상 의료혜택으로부터 배제되어 있었던 민중들을 살려낸 것이다. 이들의 이야기가 한 개인의 출세기가 아니라, 공식적 의료시스템 부재의 조선사가, 궁극적으로 약이 없어서가 아니라 돈이 없어서 죽음을 기다리는 현대사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읽어낸 저자의 눈썰미가 두드러진다.

 

조선 후기 경제성장과 함께 일어난 변화 중에 도박의 성행과 관련된 풍경도 흥미롭다. 바둑, 장기, 쌍륙, 투전, 골패 가운데서 도박계의 패권을 차지했던 투전은 ‘소비하는 인간’으로서 상인 내지 중간층 인간형을 출현시켰다. 이 도박의 성행은 조선 후기사회에서 늘어나는 사회적 불확실성의 표지였다고 할 수 있다.

▲ 주막(김홍도) ⓒ 조선의 뒷골목 풍경

‘금주령’이라면 20세기 초반의 미국 사회를 떠올릴지 모르겠지만, 조선조 내내 국가가 수시로 금주령을 발동하여 개인의 음주를 금지했던 역사적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은 듯하다. 귀중한 곡물을 축내는 주범이었던 술에 대한 이 국가적 통제는 강력했지만, 실제 단속에 걸리는 이들은 힘없는 백성뿐이어서, 음주는 정작 양반 계급이 누릴 수 있었던 특권적 쾌락이었던 모양이다.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은 술집 풍경

 

사극 따위에는 주요 교통로마다 술과 밥을 파는 주막이 등장하지만, 기실 조선 시대에 술집이 등장한 것은 상공업이 발달한 조선 후기로 봐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 술집 풍경은 술을 뱃속에 쏟아붓고 주정을 하고 싸움을 벌이고 술집을 마구 부수는 형태였다고 책은 전한다. 술집 풍경은 불과 2, 3백 년 전이나 2, 30년 전이나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중세사회에서 가장 공정한 인재 등용 방법이었던 과거는 실제 시행과정에서 엄청난 불공정을 내포하고 있어 그 속에 중세적 불평등을 내포하고 있었던 제도였다. 18세기께 이미 과거는 인재선발 기능을 잃었다. 출사(出仕)의 욕망은 들끓고, 그 욕망을 충족시켜 줄 벼슬자리는 한정되어 있는 데다가 소수 문벌 가문이 관직을 독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과거는 ‘타락과 부정으로 얼룩진 양반들의 잔치’로 전락하면서 온갖 비리와 부정의 백태(百態)가 연출되었다. 숱한 선비들이 머리를 썩이며 공부했던 내용도 기실 국가 관료로서의 현실적 유용성 따위와는 무관한 시(詩)와 부(賦)에 그쳤다. 그러니 벼슬길에 나아간 선비들이 서리들의 입만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지은이는 조선조의 과거 열풍과 오늘날의 고시 열풍을 견주면서 우리는 아직도 ‘조선 시대’를 치르고 있다고 개탄하기도 한다.

 

감동과 어우동은 조선조 섹스 스캔들의 주인공들이다. 책은 이들의 이야기도 빼놓지 않는다. 그러나 저자는 이들 여인을 도덕적으로 단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스캔들을 조선 시대 남성의 성적 욕망의 분출과 병치하면서 그 속사정을 살피고 있다. 흔히 ‘도덕의 나라’라고 했지만, 양반들의 방탕함을 살피면 조선조는 단지 남성의 성적 욕망을 정당화한 사회였을 뿐이었다. 중종 이후 실록에서 성적 언어가 공식적으로 추방되었을 뿐, 조선 사회는 결코 윤리적 사회가 될 수 없었다는 얘기다.

 

이밖에도 고려말 안향 집안의 노비 후예들로 성균관 주변에 형성한 마을, 반촌(泮村)이 ‘서울의 게토, 도살면허 독점한 치외법권 지대’였다던가, 나라를 뒤흔든 무뢰배들인 ‘검계와 왈자’는 술집과 기방과 도박판을 주름 잡은, 조선 후기 민간예능의 주 향유자였다는 사실을 저자는 꼼꼼하게 천착하고 있다.

 

▲ 신윤복의 그림 <야금모행>(오른쪽)과 별감(왼쪽)

 

이들 왈자 중의 한 부류인 별감은 호화로운 복식과 치장, 온갖 놀이문화, 유행을 주도하면서 시정의 유흥공간을 장악한 집단이었다. 저자는 이들은 역사 발전에 긍정적 기능을 한 것은 아니지만, 조선 후기의 정치와 경제가 소외시킨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부류로 바라본다. 그러면서 오늘날 ‘오렌지족’과 그들을 비기면서 변화와 불변의 본질은 무엇이냐고 묻는다.

 

책의 마지막 장을 장식하는 것은 탕자다. ‘은 요강에 소변 보고 최음제 춘화 가득’한 이들은 ‘유흥하고 소비하는 인간’의 전형으로 저자는 소설 <이춘풍전>과 <게우사>(판소리 ‘무숙이타령’의 사설 정착본)의 주인공 이춘풍과 무숙이를 꼽는다. 이들은 오직 소비와 유흥만을 일삼다가 끝내 몰락하는 인물인바, 저자는 자본주의가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지금 유흥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소비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를 반문한다.

 

시대를 넘어 연면히 이어지는 민중들의 삶의 애환

 

저자는 이 책이 한문학자로서 연구 과정의 결과로 얻은 가외의 소득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책의 내용은 한 시대의 풍속사, 미시적 생활사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탄탄한 자료의 뒷받침을 통해 그 객관성을 얻고 있다. 무엇보다도 저자는 이들의 인생을 복원하면서, 조선 후기사회의 삶과 사회의 모습이 오늘날 우리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확인하고 있다.

 

또한, 인간사회 일반에 담긴 당대의 문제의식과 부조리, 민중들의 삶의 애환이란 시대를 넘어 연면히 이어지고 있음을 다양한 자료와 해박한 박람강기를 통해 증명해 낸다. 그것은 그가 머리말에서 언급한, “현재의 인간은 시간적 변화의 산물이며, 역사학은 바로 변화하는 인간을 해명하는 학문”이라는 진술과 인과적으로 맞닿아 있다.

 

책 뒤에 실은 보론 ‘옛 서울의 주민 구성’도 흥미롭다. 서울에 사는 이들이라면 글을 읽으면서 18세기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시간여행을 떠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책 곳곳에 실은 온갖 사진, 그림 자료들도 이 흥미로운 시간여행의 동반자가 넉넉히 되고도 남음이 있다.

 

2001년 저작 <조선 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나오다>는 저자의 ‘조선 풍속기행’ 첫 번째 이야기다. 순서야 바뀌었지만, 나는 인터넷 서재의 보관함에다 위 책과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를 쟁여 두는 것으로 이 책을 읽은 즐거움과 소회를 마감하기로 한다.

 

 

2009. 3. 15.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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