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다시 읽기

‘착한 커피’ 혹은 더바디샵

by 낮달2018 2019. 1. 4.
728x90
SMALL

‘윤리적 소비’의 기쁨에 대하여

▲ 나는 꽤 오랫동안 '착한 커피' 애호자였다.

“소비자는 영악하다”는 진술은 다분히 공격적이다. 공급자 편향이 드러나는 이 진술의 소비자 버전은 당연히 “소비자는 합리적이다”일 것이다. 합리적 소비란 물론 ‘최저 비용으로 최고의 재화·봉사를 사는 일’을 이른다. 경우에 따라 거대 할인점의 무차별한 저가 공세를 부나비처럼 쫓아가는 소비자를 바라보는 기분은 씁쓸할 수도 있겠지만, ‘이기’와 ‘이해’ 앞에서 갈기를 세우는 인간들의 저 원초적 본능을 어찌하랴.

 

그러나 소비자가 늘 영악하지는 않다. 그들은 재화의 가치를 거기 투여된 노동으로 환산해 이해한다. 반값으로 물건을 사게 된 행운을 기뻐하면서도 그들은 제값을 받지 못하게 된, 거기 투여된 노동을 안타까워할 줄 아는 것이다. 이러한 경우에 그들은 합리적일 뿐 아니라 ‘윤리적’이기도 하다.

 

불매운동은 소비자의 윤리적 선택

▲ 아름다운 커피에서 판매하고 있는 착한 커피 상표들 ⓒ 아름다운 커피

해마다 되풀이되는 풍작과 그에 따른 농산물 가격의 폭락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그렇다. 흉작 탓에 천정부지로 오른 배춧값 때문에 금치를 먹게 되었다고 푸념하다가도 생산가를 건질 수 없어 배추밭을 갈아엎는 농민들을 바라보면서 그들은 자신의 직업과는 무관하게 농민들에게 연대의 감정을 느끼는 것이다. 쉽지는 않을 터이지만, 그들의 연대와 이해의 감정은 시가보다 비싸게 그걸 사거나, 필요보다 더 많은 양을 구매하는 방식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소비자의 윤리적 선택은 반대로 어떤 제품을 사지 않는 방식으로도 드러날 수 있다. 몇 해 전 일이다. 롯데호텔에서 농성 중이던 노동조합에 대한 경찰의 진압 작전이 정도를 넘었다. 경찰은 임신부를 구타하는 등 무차별 폭력진압을 자행했고, 당연히 여론이 들끓었다. 여직원에 대한 상습적 성희롱 사건까지 불거지면서 민주노조 진영에서 이끄는 롯데제품 불매운동이 벌어졌다.

 

어느 날, 한 후배 교사가 아이스크림을 사러 갔다가 빈손으로 돌아왔다. 그는 아주 진지하게 말했다. “롯데 물건밖에 없어서요…….” 나는 빙그레 웃었고, 그렇게 말했던 것 같다. “부도덕한 기업을 응징하기 위해 불매운동을 벌이자면, 아마 우리가 아무 고민 없이 살 수 있는 상품이 얼마나 있을까?”

 

그러나 나는 그 친구의 소박한 실천이 무의미하다고 생각지 않으며, 그것이 그 대상 기업의 매출에 털끝만 한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 실천의 진정성은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 <아름다운 커피>에 걸려 있었던 '히말라야의 선물' 소개

어느 날 서가에 꽂힌 전여옥이나 조갑제의 책을 찢어 폐지함에 넣거나 이문열의 책을 꾸려서 반납운동에 동참하는 행위는 저명 정치인이나 언론인, 작가의 명성에 타격을 가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것은 정치적이든 문화적이든, ‘권력’을 갖지 못한 시민과 독자로서 ‘권력’을 가진 대상의 발언이나 표현에 대한 명시적이고 적극적인 반대와 비판의 의사 표시로 이해되어야 한다. 따라서 그것을 단순한 정치적 선동으로 폄하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그것은 정치적·문화적 소수자일 수밖에 없는 시민과 독자의 주체적 판단과 비판의식을 능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부도덕한 기업의 물건은 사지 않는다

 

기업 또는 대기업의 부도덕성은 이 땅만이 아니라 전 지구적 현상이라 해도 무방할 듯하다. 이른바 국적을 초월하는 자본의 공세는 지구화와 자유무역의 이름으로 제삼세계와 가난한 나라를 초토화하고 있다. 이 땅의 대기업들 역시 자본의 이해를 관철하기 위해 지극히 자본주의적 방식으로 노동과 노동자들을, 나아가서는 그들의 삶까지도 제어한다.

 

기업이 이윤 동기에 따라 움직이고 기능한다는 데 시비를 걸 생각은 없다. 그러나 그 방식은 최소한의 법적·도덕적 정당성을 가져야 한다. 노동조합이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주요한 기둥임에도 여전히 노조를 금기시하고 있는 삼성의 경우는 현대와 전근대가 뒤섞여 있는 이 땅의 천민자본주의의 모습을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다.

 

휴대폰 위치 추적으로 노조설립 노동자를 감시했다며 삼성 관계자들을 검찰에 고소한 삼성 일반노조 위원장은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해야 했다. 검찰이 삼성관계자를 증거 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한 후, 법원이 그이에게 명예훼손죄를 물은 것이다.

 

이는 어쩌면 ‘휴먼테크’(!) 삼성전자의 노무관리 방식을 압축적으로 보여줄 뿐 아니라, 한편으로는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상식으로 통용되는 21세기 한국판 민주주의의 미니어처일지도 모른다. ‘승자독식’은 ‘신자유주의와 경쟁’이 유일한 시장의 원리로 추앙받는 한국 사회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된 지 오래인 듯하다.

 

노동자로서의 계급적 각성에 이른 한 무력한 노동자 개인의 삶과 생활을 송두리째 뿌리 뽑아 버리려는 집요한 노무관리 방식은 글로벌 스탠다드와는 무관하게 야만적일 뿐이다. 자신의 삶을 옥죄어 온 추적과 미행과 감시의 거미줄 앞에 맨몸으로 선 그 노동자들의 얼굴에 드러난 절망과 공포의 표정을 지켜보면서 나는 더 이상 삼성의 상품을 사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부도덕한 기업의 제품을 사지 않는다는 것은 단순히 경제적 행위가 아니라, 훨씬 더 정치적인 행위다. 그것은 소비자로서의 자기 소비에 대한 윤리적 선택일 뿐 아니라, 나아가서는 실질적으로 엄청난 힘을 소유한 생산자에게 저항하는 정치적 발언인 것이다. 그런 행위가 그 거대 공룡에게 털끝만한 상처조차 입히지 못한다 하더라도 말이다.

 

특정 기업의 제품을 사는 대신 경쟁적 기업의 제품을 삼으로써 우리의 윤리적 선택은 완성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숱한 경쟁 기업, 경쟁 제품이 있는데도 단지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이유’만으로 어떤 상품만을 구매할 수 있다면, 그것은 즐겁고 유쾌한 일일 터이다. 그것은 숱한 이성들 가운데서 나의 사람을 선택하는 행위나 여러 명의 후보자 가운데서 특정한 한 사람을 선택하는 총선이나 대선에서의 선택과 동질적인 행위인 까닭이다.

 

더바디샵을 사는 것은 윤리적 선택? 

▲ 홈페이지에 걸린 동물실험 반대 이슈. 더바디샵 코리아 홈페이지 사진

“정치적 실천은 지구에 사는 사람들의 의무다.”

“우리는 산성비, 재활용, 시골의 몰락, 녹색 소비자와 인종청소에 대해 발언해 왔다.”

 

이건 정치인이나 시민운동가의 발언이 아니다. 이윤을 목표로 기업을 운영하는 영국의 한 화장품 기업 더바디샵(TheBodyShop) 창업자 아니타 로딕((Anita Roddick)의 주장이다. (독일의 토마스 바이덴바흐 감독은 이 히피 출신의 여성 기업인의 헌신적 인생을 조명한 다큐멘터리 ‘아니타 로딕-바디샵 아줌마’를 서울환경영화제에 출품하기도 했다.) 그녀는 소비자들에게 ‘자사의 제품을 사는 것은 윤리적인 선택’이라는 이미지를 굳히는 데 성공한 기업인이다.

 

“여성들이 몸에 불만을 갖도록 하는 것은 비윤리적이다.”

“여성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가장 아름답다.”

 

▲ 더바디샵 창업자 아니타 로딕

다이어트나 여성미를 강조하는 광고에 대한 여성 운동가의 발언이 아니다. 화장품을 만드는 기업인 더바디샵은 이러한 인식 아래, ‘당신의 몸을 긍정하고 사랑하라’는 이념을 실현해 왔다.

 

그녀의 이러한 인식은 굵직한 허리에 배가 볼록 나온 ‘평균 체형’의 여성 인형 ‘루비’를 자사의 홍보 모델로 삼고, 소비자를 오도하는 ‘뷰티’라는 단어는 아예 쓰지 않으며, 직원 중 여성의 비율을 80% 안팎으로 유지하고, 탁월한 보육 시설이나 복지제도 등 여성적 경영 방식을 취하면서, ‘동물실험 반대’, ‘용기 재활용’ 등 적극적 환경 보호에 참여하고, ‘자유무역과 세계화 반대’로 이어진다.

 

이탈리아계 이민 가정에서 태어난 로딕은 2차 세계대전 중 어머니를 통해 근검절약의 정신을 배웠고, 지역거래·재활용·재사용·리필링과 같은 ‘바디샵’의 환경보호 운동을 탄생시켰다.

 

▲ 딸애가 쓰고 있는 바디샵의 제품들

오늘날 더바디샵의 사회 활동은 방대하다. 인도에서는 바디샵의 코끼리가 몸통에 에이즈예방법을 광고하며 걸어 다니고, 영국에서는 버스 12대가 반전 포스터 등을 붙이고 운행한다고 한다. 기업 활동을 정치적·사회적 발언과 실천의 일부로 만들어 가고 있는 더바디샵은, 아니타 로딕은 행복하다.

 

<한겨레>(‘인종차별·산성비 경고하는 화장품회사’, 2005.12. 07)에 실린 더바디샵의 이야기를 읽은 딸애는 자신이 쓰던 바디샵 제품을 보여주면서 들뜨고 즐거워했다. 자신의 단순 소비행위가 윤리적 의미를 갖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은 즐거운 일임에 틀림없다.

 

커피콩 생산 농민을 위해 ‘착한 커피’를 마시다

 

나는 오늘 ‘아름다운 커피(http://www.beautifulcoffee.com/)’에 주문한 ‘착한 커피’ 200g 두 봉지를 택배로 받았다. 이 ‘히말라야의 선물’은 아름다운 재단에서 운영·판매하는 네팔산 ‘공정무역 커피’ 1호다.

 

석유 다음으로 교역량이 많은 커피는 주로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등의 저개발국가에서 생산된다. 커피는 세계적으로 한해 600억 달러어치가 팔리지만, 그것을 생산하는 케냐, 과테말라, 브라질, 인도네시아 등의 농민들에게 돌아가는 수익은, 커피 45잔을 만들 수 있는 원두 1파운드(약 0.45kg)에 평균 60센트(약 580원)밖에 없다고 한다.

▲ 아름다운 커피의 생산자들. 위는 네팔, 아래는 우간다의 농민. ⓒ 아름다운 커피

2001~2002년 영국 소비자가 우간다산 커피에 지불한 돈 가운데 우간다 농민의 몫은 0.5%에 불과했다. 나머지 99.5%는 물론 다국적기업이 대부분인 가공·판매업자와 중간상인들의 차지다.

 

내가 지불한 200g 한 봉지당 1만 원은 일반 커피 가격의 두 배에 이르는 1파운드당 최소 1달러 26센트에 원두를 사들이는 데 쓰일 것이다. 단지 수십 센트에 불과한 돈이지만 그 돈으로 커피콩 생산 농민들은 아이들을 학교에도 보낼 수 있고, 열대우림을 파괴하지도 않는 친환경 농법을 쓸 수도 있게 된다.

 

결국 내가 ‘선택한 소비’는 커피 판매에 따른 이문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다국적 커피 회사들의 착취 고리를 끊고 생산지 농민들에게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지불하는 밑돈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아름다운 가게의 구호처럼 ‘생산자에게 희망을, 소비자에겐 기쁨을’ 주는 매우 윤리적 선택인 것이다.

 

윤리적 도덕적 기업 운영의 본보기를 따로 들지 못하는 것은 그 방면에 과문한 탓이다. ‘기업 이윤의 사회 환원’을 모범적으로 실천해 온 유한양행이나 노사 상생을 위한 경영전략으로서 뉴 패러다임 모델 운영의 귀감이 된 유한킴벌리는 해마다 존경받는 기업과 기업인의 으뜸으로 꼽히는 삼성전자와 이건희의 그늘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삼성이나 그 총수가 쌓아 올린 거대한 성이 드리운 그림자는 꼼짝없이 우리 경제의 취약점이며 전근대성의 표지라는 것을 사람들은 너무 자주 잊어버리는 듯하다.

 

더바디샵이 행복하고, 아니타 로딕이 행복하겠다고 말했지만, 나는 정말 행복한 것은 여러 개의 동종의 상품 중에 꼬집어 한 제품을 고르면서, 자신의 선택이 갖는 윤리적 의미를 즐거워하고 자랑스러워하는 선량한 소비자일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러한 선량한 소비자들의 참여가 ‘사람 사는 세상’을 여는 조그마한 실마리라는 것도 믿어 의심치 않으며 천천히 ‘착한 커피’를 마신다.

 

 

2007. 1. 23. 낮달

 


아니타 로딕의 ‘바디샵’ ‘매각 사실’을 밝힙니다

지난해 3월 로레알에서 인수…환경단체, 바디샵 불매운동

 

애당초 이 기사는 ‘소비행위의 윤리적 의미’에 대한 성찰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특정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이 그 품질과는 무관하게 제조기업의 윤리나 이념에 대한 사회 일반의 ‘항의나 도덕적·윤리적 지향’을 포함하고 있듯이 역의 이유로 특정 상품에 대한 ‘선택적 소비’가 가능할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단편적인 생각 어름에 일부 기업의 횡포와 윤리적 기업 경영의 본보기로서 한 일간지에 보도된 바디샵이 떠올랐고, 이는 보다 조직화된 시민운동으로서의 ‘공정무역 운동’까지 아우를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기사가 나가고 몇몇 독자께서 댓글로, 쪽지로 문제를 제기해 주기 전까지 저는 바디샵의 매각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많은 독자들께서 매각 이전의 바디샵 활동만으로 현재의 바디샵을 이해할 수도 있게 하였다는 점을 확인하며, 이에 대해 기사 작성자로서 사과를 드립니다.

 

제가 확인(<프레시안> “바디샵 수익이 로레알 동물실험에 쓰이다니…”, 노주희 기자, 2006.3.20)한 바로는 바디샵이 세계 최대의 화장품 기업인 로레알에 인수합병(M&A)된 것은 지난해 3월입니다.

 

아니타 로딕은 수천억 원에 자신의 지분을 매각했고, 바디샵의 고문직을 유지하면서 “바디샵의 모든 가치들을 수호하기로 (로레알과) 합의했으며, 동물실험을 금지하는 기존의 정책도 그대로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영국의 환경단체들은 바로 바디샵 불매운동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동물실험을 반대하고 반세계화를 지향하는 기업 이념으로 칭송받아온 바디샵의 매각을 소비자들은 ‘돈의 힘에 굴복한 윤리적 경영’으로 이해하는 듯합니다. 그리고 바디샵 제품 보이콧의 핵심에는 ‘바디샵에서 번 돈이 로레알의 동물실험에 쓰일 수 있다’는 개연성에 대한 우려가 있습니다.

 

로레알은 아름다움을 위해서는 ‘화학물질, 보톡스 주사, 콜라겐 주입, 지방흡입술도 사용할 수 있다’는 태도를 고수해 온, 화장품(랑콤, 메이블린)과 향수(아르마니, 랄프 로렌 등)를 제조하는 세계 최대의 화장품회사이며, ‘동물실험’으로 환경단체들의 비난을 계속 받아왔기 때문입니다.

 

바디샵 매각을 바라보는 일련의 움직임들은, 윤리적 소비는 소비자 개인의 선택이지만, 시민사회의 냉정한 감시와 그에 따른 문제 제기를 통해서 완성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해 주고 있습니다. (2007. 2. 2.)

 

 
 

'착한 커피' 혹은 더바디샵

윤리적 소비의 기쁨에 대하여

www.ohmynews.com

 

 

반응형
LIST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