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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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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팔꽃과 동요 ‘꽃밭에서’

by 낮달2018 2019. 9.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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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팔꽃의 계절과 동요 ‘꽃밭에서’

▲ 이른 아침 출근길에서 만나는 나팔꽃

바야흐로 ‘나팔꽃의 계절’이다. 주변에서 나팔꽃을 일상으로 만나게 된 건 요 몇 해 사이다. 걸어서 출근하다 보면 두 군데쯤에서 새치름하게 피어 있는 나팔꽃을 만난다. 한 군데는 찻길에 바투 붙은 커다란 바위 언덕이고 다른 한 군데는 주택가의 축대 위다.

 

굳이 ‘새치름하다’고 쓴 까닭은 굳이 설명할 일은 없을 듯하다. 때를 맞춰 활짝 무리 지어 피어난 꽃은 ‘흐드러지다’고 표현하지만 이른 아침, 산뜻한 햇살을 받으며 꽃송이를 여는 나팔꽃을 ‘흐드러지다’고 묘사하는 것은 아이들 말마따나 ‘에러’기 때문이다.

 

나팔꽃은 말 그대로 꽃잎에 나팔 모양으로 생겼다. 짙은 남색이나 연보라, 연파랑 등의 산뜻한 색상으로 피어나는 나팔꽃은 수더분하거나 넉넉함과는 거리가 멀다. 뭐라 할까, 나팔꽃은 마치 제 할 일을 맵짜게 해치우고 앙큼하게 시치미를 떼고 있는 계집아이의 모습 같은 느낌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나는 나팔꽃을 어린 시절의 동요에서 처음 만났다. 이 나라의 어린이들이 모두 그랬듯 우리는 초등학교 교실에서 동요 ‘꽃밭에서’를 배우며 자랐다. 교실 앞 화단에는 채송화와 봉숭아도 피었고, 새끼줄이 아니라 단층 옥상에서 늘어뜨려 매어 놓은 철사 줄을 따라 나팔꽃도 피어 있었다.

 

동요 ‘꽃밭에서’

 

동요 ‘꽃밭에서’의 노랫말은 쓴 이는 아동문학가 어효선(1925~2004)이다. 그는 우리가 즐겨 불렀던 동요 ‘파란 마음 하얀 마음’, ‘과꽃’ 등을 썼다.

 

초등학교 때 음악책에서 배우는 동요는 7·5조 3음보 율격을 가진 노래가 태반이다. ‘학교 종’에서부터 ‘반달’까지 이 7·5조의 율격은 마치 관습처럼 되풀이된다.

 

‘꽃밭에서’는 7·5조가 기본이되, 부분적으로 6·5, 8·5조의 변형이 섞여 있다. 굳이 노래하지 않아도 저절로 가락이 생기는 형식이다. 그때 우리는 그 노랫말과는 무관하게 살고 있었지만 그게 무슨 상관인가. 우리는 음악 시간에 오르간 반주에 맞추어 입을 모아 ‘꽃밭에서’를 불렀다.

 

우리 중에 아무도 ‘아부지’ 대신 ‘아빠’라고 부르는 아이는 없었다. 아빠하고 만든 꽃밭이 있는 아이는 물론이거니와 아빠를 생각하면서 꽃을 보는 아이도 더더욱 없었다. 그 시절에도 도시의 가족들은 그런 그림 같은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던 걸까.

 

그 시절에 아버지들은 집안에서 가장 두려운 존재였다. 지엄한 그 집안의 가장은 늘 술에 취해 있거나 노름판에 빠져 몇 날 며칠을 돌아오지 않기도 했다. 아이들은 아버지와 함께 꽃밭이 아니라, 밭에 김을 맸고, 쇠풀을 베거나 땔나무를 하러 산으로 들어갔다.

 

동요 ‘꽃밭에서’를 들으면서 그런 생각을 잠깐 했다. 따뜻한 봄날, 아이들과 함께 꽃밭을 일구는 아비를, 그리고 아버지가 없는 쓸쓸한 집을 지키며 ‘꽃처럼 살라’고 한 아버지의 말씀을 떠올리는 아이를. 그러나 내 아이들도 그런 경험을 하지 못한 채 자랐다. 학원과 과외에 쫓기는 지금 아이들도 다르지 않을 터이다.

 

아침의 영광(Morning glory), 혹은 덧없는 사랑

 

나팔꽃은 새벽 서너 시에 봉오리가 터지기 시작해 아침에 활짝 핀다. ‘모닝글로리(Morning glory)’로 불리는 이유다. 그러나 나팔꽃은 오후가 되면 꽃잎이 고깔처럼 시들어 떨어지고 만다. 그래서일까, 나팔꽃의 꽃말은 ‘덧없는 사랑’이다.

 

그러나 꽃말과는 달리 나팔꽃은 쓸모 있는 꽃이다. 씨를 뿌리면 싹이 잘 트고 자라는 속도가 아주 빨라 기르기 쉬운 것이 나팔꽃의 덕성이다. 닷새만 지나면 싹이 트고, 한 달 후면 완전히 꽃을 피운다. 그리고 대기오염 물질인 오존이나 이산화황에 민감하게 반응해 들깨, 가중나무와 함께 대기오염의 정도를 알아보는 식물로도 널리 쓰이니 새치름한 겉모습에 비기면 속은 단단한 셈이다.

 

한방 약재로 쓰이는, 새까맣게 광택이 나는 나팔꽃의 씨를 ‘견우자(牽牛子)’라고 한다. 거기 ‘견우’라는 이름이 붙은 까닭은 옛날 중국에서는 소가 끄는 수레에 나팔꽃을 싣고 다니며 팔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 메꽃은 여러해살이풀로 땅속줄기로 번식한다.
▲ 나팔꽃의 잎은 하트 모양이다 .

나팔꽃과 메꽃

 

얼마 전 어느 블로그에서 나팔꽃을 ‘메꽃’이라고 소개하고 있는 글을 읽고 잔뜩 헷갈린 적이 있다. 이런, 내 얄팍한 앎이 꼼짝없이 임자를 만났는가 싶어 나는 화초 기르기로 일가를 이룬 동료에게 물었다. 동료는 간단히 내 손을 들어주었다.

 

“나팔꽃을 메꽃이라고도 부르는가요?”

“아뇨, 메꽃은 따로 있어요. 어디 봐요. 에이, 모두 다 나팔꽃이고 중간의 것만 메꽃이네요.”

 

나팔꽃이나 메꽃이나 같은 메꽃과다. 풀꽃 이름 따위에는 손방인 내게 이런 시시콜콜한 걸 알게 해 주는 건 ‘생활의 필요’다. 메꽃도 나팔꽃처럼 시계 반대 방향으로 줄을 감아올리는 습성을 가졌지만, 둘은 다른 점이 많다. 나팔꽃은 아침에 피지만 메꽃은 낮에 핀다.

 

나팔꽃이 한해살이풀로 씨로 번식하는 데 반해 메꽃은 여러해살이풀로 땅속줄기로 번식한다. 꽃 빛깔도 나팔꽃은 남색, 보라색, 빨강, 분홍색과 각종 무늬가 다양하지만, 메꽃은 흰색과 분홍색만을 띤다. 나팔꽃이 씨를 약재로 쓰는 반면, 마의 뿌리처럼 도톰한 메꽃의 뿌리는 녹말이 많이 들어 있어서 춘궁기 때에 구황작물 노릇을 했다고 한다.

 

일부러 찾아보려고 했지만, 주변에 메꽃은 보이지 않는다. 인터넷에서 검색한 이미지를 들여다본다. 그렇다. 꽃 빛깔도 그렇지만 잎의 모양도 확연히 다르다. 그런데도 인터넷에 떠도는 이미지 가운데에는 나팔꽃을 메꽃이라고 써 놓은 데가 많다. 이럴 때 ‘정보의 바다’는 그리 유익하지 않다고 보는 게 맞지 싶다.

▲ 들길에서 만난 나팔꽃.

 

2009. 9. 12.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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