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이무열 시집 <묵국수를 먹다>와 1970년대 대구의 문청(文靑) 시대
이무열이 시집을 냈다. 내게 이 사실은 '유명 시인 아무개가 새 시집을 냈다'는 여느 '팩트'와는 다른 결과 무게로 다가온다. 시집 <묵국수를 먹다>는 1990년대 후반 신춘문예에 동화로 당선한 뒤, 2010년에 계간 <유심>에 시를 발표하면서 등단한 이무열 시인의 생애 '첫 책'이기 때문이다.
20대의 막바지까지 이무열은 소설을 썼지만, 등단은 동화로 했다. 동화집 한 권 못 내고 시로 옮겨와 마침내 환갑·진갑을 넘긴 60대 중반에야 그가 첫 시집을 낸 것이다.
소설을 쓰며 젊음의 한때를 지나올 때, 나는 그와 함께하고 있었다. 심야의 대구 시내버스 뒷좌석에 함께 앉아서 도저한 객기로 거품을 물던 젊은 시절을 나는 부끄러움과 함께 그리움으로 떠올린다.
1970년대 대구의 문청 시대
1970년대에 대구의 고교 문예반은 저마다 '문학동인회'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면서 학교를 넘어 교류하고 있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학교별 동인은 계단(대구고), 근일점(계성고), 소라(대구상고), 씨알(대륜고), 태동기(대건고) 등이다. 대중에게 잘 알려진 시인 안도현도 태동기 출신의 후배다.
돌이켜보면, 기성 문인 못잖은 시와 소설을 썼던 그 시절 친구들이 교유한 커뮤니티는 가히 '학생 문단'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았다. 각 학교 동인들은 대구 YMCA 2층 어두컴컴한 복도에서 시화전을 열어 관람객을 맞이하면서 들큼하게 '문학을 소비'하곤 했다.
시화전이 끝나면 YMCA 앞 중국음식점에서 반성회라는 이름의 식사와 곁들인 술이 한 순배 돌곤 했다. 고3 때였던가, 짜장면과 배갈로 잔뜩 흥을 냈는데, 음식값을 낼 돈이 아무에게도 없었다. 내가 차고 있던 오리엔트 시계를 맡기고서야 식당을 나왔던 기억이 아련하다.
올해 예순넷, 다섯 살이 되었을, 경주에서 열리는 신라문화제 백일장에 떼 지어 몰려가 상을 석권하곤 하던 재주 많은 친구들은 대학을 거쳐 이내 하나둘씩 정식 등단하여 일가를 이루었다. 가장 먼저 시집을 낸 친구가 <작아지는 너에게>(1982)의 홍영철이다. 그는 이후에도 여러 권의 시집을 냈고, 서울에서 출판사를 꾸리며 살고 있다.
1988년 <얼음시집>을 냈던 송재학은 문학상을 여럿 받았고, 최근 열 번째 시집을 출간했다. 1989년에 <강물과 빨랫줄>을 낸 서지월도 전후 네댓 권의 시집을 내면서 대구에서 열심히 시를 쓰고 있다. 오정국은 다섯 번째 시집 <파묻힌 얼굴>(2011)을 냈고, 홍승우는 <식빵 위에 내리는 눈보라>(2007)로 뒤늦게 이 시집 출간 대열에 합류했다. 오두섭도 2010년에 시집 <소낙비 테러리스트>를 냈다.
장편소설 <바다로 가는 자전거>(1994) 외 여러 권의 소설과 시집을 낸 문형렬은 2017년에 문재인 대담집 <대한민국이 묻는다>를 썼다. 여러 권의 소설집을 펴내고 교직에서 물러난 박명호는 2016년에 소설집 <어떤 우화에 대한 몇 가지 우울한 추측>을 내고 부산에서 활동 중이다.
서른 고개를 넘기면서 습작기를 끝낸 나는 이들과 교유에서 멀어졌고, 아이들에게 문학을 가르치면서도 문학과는 무관한 삶을 살아왔다. 지난 5월에 일제강점기 친일문인들의 문학과 삶을 다룬 <부역자들, 친일문인의 민낯>을 펴낸 것은 그러니까 뜻하지 않은 외도인 셈이었다(관련 기사 : 30년 문학교사가 추적한 친일문인의 민낯).
2017년에 출판사로부터 책 출간 제의를 받기 전이다. 문득 책을 한 권 내어 볼까 싶어서 전화로 의견을 구한 친구가 이무열이다. 그는 단박에 좋다고 동의해 주었다. 나는 자넨 책을 냈는가 하고 물었고, 그는 고개를 저었다.
“뭐 했어? 이 좋은 세월에. 등단한 지가 언젠데 아직 책 한 권을 못 냈다고?”
“글쎄, 말이야. 그렇게 됐어…….”
60대 중반에 첫 책, 이무열을 지지함
이미 등단의 과정을 통과했던 이무열에게 책 내기가 그리 어렵지는 않았을 텐데, 궁싯거리다가 오늘까지 온 이유쯤이야 미루어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몇 해 전, 50대 중반을 넘기면서 첫 시집을 낸 후배를 지지했듯 나는 환갑, 진갑 다 지내고 시집을 낸 이무열을 지지해 마지않는다.
이순을 넘기고 겨우 시집 한 권을 펴내 그가 무슨 영화를 보려고 했겠는가. 그는 다만, "도서관에서 경제원론 책 저만치 밀쳐두고 황동규·김영태·마종기 3인 시집을 읽던 그때"(시인의 말)를 가뭇없게 기억하면서 "어쩌다 스스로를 고립 가운데 머물도록 하면서" 시를 썼고, 이제야 그걸 독자들 앞에 들이민 것이다.
“내 허랑허랑 걸어온 내력 부끄러운 시편들을 두고 달리 무슨 변명의 말을 덧붙이랴? 우리네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개중 몇 편이라도 웅숭깊고 곰삭은 사람살이의 속내와 뒷 표정을 읽을 수 있다면 좋겠다.”
- '시인의 말' 중에서
시집 <묵국수를 먹다>에는 모두 예순두 편의 시가 실렸다. 책 끝에 붙인 이태수 시인의 해설에서 지적한 대로 "서정적 서사, 질박한 휴머니티"로 요약할 만한 작품들이다. 그의 시 곳곳에서 발견되는 서사와 그것을 뒷받침하는 묵직한 묘사력은 소설로 시작한 그의 오랜 산문 공부의 결과일 것이다.
쉰다섯에 문예지에서 신인 추천을 받아 등단하던 시기를 돌아보는 시 '낭패'는 은근한 반어로 신인이 된 자신의 속내를 푸념처럼 고백한다. 짐작건대 이러한 시인의 자의식이 책을 내는 일을 주저하게 하지는 않았을지.
이것 참, 낭패로구먼 / 무심하게 딴전 피워 보는데
이보게 신인! / 앞발 긴 이리[狼]와 뒷발 긴 이리[狽] 함께
업고 업혀야만 다닐 수 있다는 그 깊은 뜻 아는가
치명에 들리도록 서른 해 / 가뭇없이 허우적거리던 진창길에서 만난
우리 서로 낭패 볼 일만 남았다네
- ‘낭패(狼狽)’ 중에서
생애 첫 책으로 우리의 문청 시대는 마무리될까
표제작 '묵국수를 먹다'는 그가 화장품 회사를 퇴직한 뒤 '박가분' 가게를 꾸려오다 겪은 어느 고단한 삶의 장면을 노래한 작품이다. 늘 그만그만한 서사를 뒷배 삼아 교직하는 이무열 시의 특징이 제대로 드러난 시편이다.
주인 할아버지는 끓는 메밀 솥을 주걱으로 연신 휘젓고
묵 치는 할머니의 등은 해거리 비탈밭처럼 꾸부정한데
답답하고도 설운 심사 달래듯
묵국수 사발에 꾸역꾸역 고개를 처박았다
십 년 넘게 꾸려온 화장품 점포를
무조건 비우라는 집주인의 건물인도 청구소송에
오늘은 어쩔 수 없는 답변서를 작성해야겠다
애꿎은 송사에 변호사도 사지 못한 자에게
때로 산다는 건 쓸쓸한 식탐처럼 자꾸 목이 메는 것이라서
귀때기 파랗게 질리는 난전 시장통을 돌아
지지 눌러온 분노와 용서 사이
봉두난발로 분분한 눈길을 하염없이 걸었다
- ‘묵국수를 먹다’ 중에서
그는 결국 시내 번화가에 내었던 가게를 접으면서 권리금 포함 1억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던가. 고단한 삶의 이해는 그의 시선이 낮은 사람들의 성긴 삶에도 따뜻하게 머물게 한다. 그가 말한 "웅숭깊고 곰삭은 사람살이의 속내"로 잘 여미진 시편들 가운데 '김수우 씨'가 있다.
고아로 자라 "징역 살고 몇 차례 소년원에도 다녀온", "철가방 아저씨"는 뺑소니 차에 치여 홀로 죽어갔다. 그의 죽음 뒤에야 한 달 칠십만 원 수입 중 십만 원을 불우한 아이들 후원하고 아이들이 보내준 사진과 편지로 보람 삼아 살았던 그의 삶이 드러난다. "55킬로그램 체중에 키는 158센티미터"의 사내는 장기 기증 약속과 보험금 사천만 원을 후원회에 남겼다. 그리고 그는 영정사진 속에서 웃으며 묻는 것이다. "세상살이, 당신도 행복하십니까?"라고.
40년도 전의 젊은 시절을 소환하면서 나는 질펀하게 추억에 젖었지만, 그의 시집이 내게 다가온 느낌과 같은 무게로 독자들에게 다가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비록 다투어 출판되는 책 가운데 또 한 권으로 그칠지라도 그의 첫 책은 70년대를 문학청년으로 살았던 그는 물론, 우리에게 생애의 어떤 시기를 아퀴짓는 일이 될 것이다.
열아홉 살의 봄을 빛나는 언어로 형상화했던 그 시절의 벗 가운데 스무 살 약관에 신춘문예에 당선했지만, 이후 시집은커녕 오랫동안 시를 떠나 있었던 '류(柳)'가 있다. 이무열 시집을 뒤적이면서 나는 그에게 올해를 넘기지 말고 시집을 내라는 당부를 전하고 싶다. 그가 뒤늦게라도 자신의 시를 묶어내는 일은 우리가 함께 건너온 청춘, 그 번민과 치기의 시대를 마무리하는 일이 될 수도 있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2019. 9. 21. 낮달
'이 풍진 세상에 > 행복한 책 읽기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옛 스승 도광의 시인과 제자들 (0) | 2019.10.16 |
---|---|
죄책감과 공포를 넘어서 (0) | 2019.10.15 |
‘지속 가능한 사회’, 그리고 ‘인간의 걸음’ (0) | 2019.09.19 |
주례사 비평, 끼리끼리 나누는 ‘우의의 연대’? (0) | 2019.09.18 |
‘황석영’을 다시 읽으며 (0) | 2019.09.1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