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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길 위에서

세월

by 낮달2018 2019. 9.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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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이 떠난 뒤 20년 …, 이제 그리움조차도 바래었다

▲ 그는, 내게 몇 통의 편지와 글로 남았다. 그게 죽음이다.

갑자기 그가 왜 생각나는지 모르겠다. 간 지 벌써 20년이 넘은 친구다. 그는 자기 고향 앞산에 묻혀 있다. 그의 무덤을 찾아가 본 게 까마득하다. 글쎄, 무덤을 찾은들 무엇하랴, 허망해서였다. 고단한 삶은 때로 사람을 추억 속에 머물게 해 주지 않는다.

 

압도적인 시간의 중력 앞에 인간은 무력한 존재

 

그는 죽었고 세상과 세월은 그것과 무관하게 흘렀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때로 그런 세월 앞에 마치 무시당한 것 같아 분하기도 하다. 그러나 그게 시간이고 세월이다. 우리는 이 압도적 시간의 중력 앞에서는 무력한 존재일 뿐이다.

 

1988년 1월, 그의 죽음을 전해 들었을 때는 물론, 그를 산에 묻고 돌아와서도 나는 오랫동안 그의 죽음을 믿을 수 없었다. 그건 마치 거짓말 같았다. 때때로 걸려오는 전화 속에서, 휘갈겨 쓴 편지 속에서 그는 생시처럼 늘 살아 있는 존재였다.

 

그의 죽음은 남은 유족을 통해서 조금씩 확인되었다. 혼자 남은 그의 아내와 부모님, 그리고 친구들……. 나는 그의 아내가 건네준 유고를 정리해 전자타자기로 출력해 모두 네 부의 복사본 책자로 만들었다. [관련 글 : 형을 찾아서]

 

시가 33편, 콩트를 포함한 소설이 모두 8편이었다. 나는 그것을 그의 아내와 부모님, 그리고 가장 가깝던 후배에게 건넸다. ‘송년의 노래’는 바로 그 책자 속에 든 시다. 그는 고교 시절 내내 그리고 대학에 들어와서도 시를 썼다.

 

시를 버리고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게 아마, 우리가 처음 만났던 3학년 때였던 것 같다. 구내식당 앞 벤치에서 우리는 악수를 했고 그날 밤 소주를 장복하면서 금세 지기가 되었다. 그리고 6년, 우리는 서로에 대해서 나눌 것은 모두 나누었다. 그러나 영혼까지라고는 감히 말하지 못한다.

 

그 부부의 사랑, 그리고…

 

멀찌감치 지켜보기만 했지만, 그와 아내의 사랑을 나는 안다. 그 표현하지 못하는 마음의 결마저 어렴풋이 느낄 만큼. 그의 아내가 견뎌야 했던 절망의 크기는 나는 감히 말할 수 없다. 그녀가 새 사람을 만난 것은 결국 그의 부재를 넘기 위해서였으리라.

▲ 시간의 압도적 중력 앞에 인간은 다만 무력한 존재일 따름이다. ⓒ pixabay

나는 그이의 재혼 소식을 한참 후에 들었다. 그녀는 그랬다고 한다. 자신은 괜찮은데, 내가 받아들이지 못할까 봐서 따로 연락하지 못했다고……. 나는 머리를 끄덕였다. 정말이지 나는 그녀의 재혼을 무심히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다. 이해한다고 하는 것과 그것을 마음으로 녹이는 것은 다른 것이니까.

 

그이의 재혼이 환기하는 것은 벗의 부재, 그 확인이었다. 그리고 죽음이란 이 지상의 모든 것을 일시에 무화해 버리는 망각의 출발점인 것이다. 죽음 앞에 영원한 것은 없다, 모든 것은 그 죽음이라는 망각의 늪에 흔적도 없이 녹아 사라져 버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흘렀나. 복직하면서 이 북부지방에 와 살게 된 어느 날, 업무 관계로 건 전화 저편의 웬 여인과 나는 제법 대화를 나누었다. 내가 찾는 상대는 자리에 없었고, 그 여자는 거기 들른 손님이었다. 끝에 상대에게 전해 달라며 내가 이름을 밝혔을 때, 전화선 저 너머에서 짧은 탄성이 들렸다.

 

“선생님, 저…… ○○○입니다.”
“아, 그랬군요…….”

 

우리는 정중하게 서로 안부를 주고받았다. 그이와 나는 서로가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알고 있었으므로 의례적인 얘기를 나누었다. 자라고 있는 아이들 이야기, 언제 식사나 같이 하자고 하면서 우리는 전화를 끊었다. 나는 잠깐 멍하니 앉아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다시 10년이 흘렀다.

▲ 연말, 한 해의 끝으로 가고 있는 학교 풍경

지난해던가, 어떤 영결식장에서 나는 그녀를 만났다. 먼빛으로도 나는 그녀를 알아보았다. 그러나 자신이 없었다. 어느새 20년이 훌쩍 흘러 버린 것이었다. 식이 끝나고 그이가 내 앞을 지날 때, 나는 나지막하게 그이를 불러 세웠다.

 

내 목소리가 작았던가, 아니면 그이가 방심했던가. 그녀는 나를 무심히 일별하고 내 앞을 지나갔다. 나는 다시 그를 부르지 않았다. 나중에 지인을 통해 그이였다는 걸 나는 확인했다. 그이는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다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고 한다. 그랬냐고 나는 웃어넘겼다.

 

알아보고 안부를 나누었던들 무슨 소용인가

 

설사 만나서 서로를 알아보고 안부를 나누었던들 그게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무슨 은원이 있는 것도, 묵은 감정이 있는 것도 어차피 아니다. 벗의 죽음을 내가 아프게 갈무리한 것처럼 그녀의 삶을 나는 그것 자체로 받아들이고 있을 뿐이다.

 

그가 남긴 시를 뒤적이면서 나는 문득 내가 과거의 시간 속으로 퇴행하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삶은 경험을 보태어가는 과정이지만 나이 들면서 오히려 이미 내 안에서 굳어진 이미지와 개념을 확장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어느 날부터 우리는 미래가 아니라, 과거의 의미와 연상을 새롭게 되새기기 시작하는 것이다. 기대할 ‘무엇’도, 기다려야 ‘날’도, 확인해야 할 ‘희망’도 없으면서도 때론 ‘세월’은 막연하다. 그러니 오래된 과거의 기억을 끄집어내어 거기 담긴 곰삭은 의미를 돌이켜보는 것이다.

 

고단한 한 해가 저무는 세밑은 어려운 경제, 불안정한 정국 탓에 더욱 어둡고 우울하다. 이미 세상을 떠난 지 20년이 넘은 벗의 죽음과 그 죽음이 환기해 주는 세월의 의미를 새롭게 더듬어 보면서 나는 이 해를 보내고 있다.

 

 

2008. 12. 22.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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