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루쉰 아포리즘 『희망은 길이다』
루쉰 아포리즘 『희망은 길이다』는 루쉰 연구자 이욱연 교수가 기왕의 연구를 통해 간직해 왔던 루쉰의 저작 중에서 밑줄을 쳐 두었던 문장들을 모으고, 판화가 이철수가 판화로 꾸민 책이다. 이철수의 힘찬 판화 글씨체 제목과 모루 위에 올라선 노동자의 모습을 새긴 판화로 구성된, 코팅하지 않은 미색 하드커버 표지는 일종의 설렘과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아포리즘은 ‘깊은 체험적 진리를 간결하고 압축된 형식으로 나타낸 짧은 글’로 정의된다. 아포리즘 하면 대개 칼릴 지브란의 시, 크리슈나무르티 류의 명상 철학자들의 잠언집을 떠올리기 쉽지만, 루쉰의 이 책은 분명코 달라 보인다. 흔히들 잠언집 따위에서 나타나는 모호하고 불확실한 비유나 예언적 글귀들이 갖는 도그마에서 이 책은 뚜렷이 비켜 서 있다.
무엇보다도 루쉰은 인간과 그 삶을, 현실과 무관하게 존재하는 관념적 진리가 아니라, 당대의 현실을 굳건히 디디고 선 실존적 존재와 상황으로 바라본다. 그러면서 이 책이 가감 없이 드러내는 것은 지식인의 통렬한 현실 비판을 통하여 봉건사회에서 근대사회로의 이행기에서 흔들리고 있는 중국 인민들의 땀과 체취이다.
먼저 그는 삶과 사랑, 희망을 말한다. 그는 ‘희망’이란 ‘길’과 같고, 인간의 노력과 싸움을 통해 열린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것이 한 시대에 한정되는 진리가 아니라, 인간의 삶이 있는 한 ‘영원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루쉰은 절망에 맞서 싸우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세상에 분투 없이 열리는 길은 없다.”
“길은 이전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영원히 있다.”
“절망하지만 반항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며, 희망으로 인해 전투를 벌이는 사람보다 훨씬 용감하고 비장하다고 본다.”
한편으로 그는 사랑을, 희생과 세대의 순환, 기억과 망각에 대해서 말한다.
“한 송이 꽃을 위해서라면 풀이 되어 썩어도 좋다.”
“사랑은 늘 새로워야 하고, 커나가야 하고, 새롭게 창조해야 한다.”
“무릇 늙고 낡은 것은 즐겁게 죽는 것이 참으로 좋다고 생각한다.”
“죽은 자가 산 자의 마음속에 묻히지 않을 때 그는 참으로 죽고 만다.”
“사람들은 망각이라는 것이 있기에 자기가 겪은 고통에서 점차 벗어날 수도 있지만, 망각이라는 것 때문에 왕왕 앞사람들이 범한 오류를 다시 범하게 된다.”
20세기의 벽두, 근대 중국의 사상가 루쉰은 여성과 그 해방에 대해서도 말하되, 리얼리스트의 냉정을 잃지 않는다. 그는 집을 나간 노라(입센의 희곡 『‘인형의 집』의 여주인공)에 대해서 그녀가 가지고 나간 것이 빨간 털목도리 하나뿐이라면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돈이 있어야 한다고 일갈한다. 아울러 여성 해방이 참정권 투쟁보다 더 힘들다는 점을 꿰뚫어 보고 있다.
“자유는 물론 돈으로 살 수 없다. 하지만 돈에 팔릴 수는 있다.”
“참정권을 요구하는 것보다 더 격렬한 싸움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소극적으로 편안하게 사는 데는 자유가 없다. 자유를 가지려면 다소 위험을 겪어야 한다.”
루쉰은 근대 중국이 오랜 봉건체제의 잠에서 깨어나 근대를 지향하는 과정을 모순과 그 극복이라는 역사 발전의 관점에서 이해하면서 민중의 잠재력과 그 가능성을 ‘파도’로 비유하기도 한다.
“돌이 짓눌러도 불꽃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무릇 문명의 조짐은 야만에서 싹튼다.”
“문제가 없고 결함이 없고 불평이 없으면, 해결이 없고 개혁이 없고 반항이 없다.”
“민중은 거센 파도와 같다. 막을수록 더욱 거세어진다.”
루쉰은 봉건체제에서 근대사회로 이행하고 있는 당대 중국 현실을 통렬하게 비판하면서 변화와 개혁, 혁명 앞에서 무감각한 중국의 인민과 사회를 날카롭게 도려낸다. 그는 중국의 현실을 ‘시간의 정지’로 받아들이기도 하고, 진시황의 우민정책은 2천 년이 지나도 효과를 지속하고 있다고까지 풍자한다. 그런 풍자와 비판은 스스로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자신을 만든 것도 조국 ‘중국의 현실’이라고 그는 고백한다.
“중국인들은 현실을 직시할 용기가 없으며 기만과 속임수로 갖가지 기묘한 도주로를 만들고는 스스로 그것이 정도라고 여긴다.”
“중국의 인민들은 늘 자기의 피로 권력자의 손을 씻겨주고 깨끗한 인물로 만들어준다.”
“유감스럽게 중국인은 상대방이 양일 때만 맹수의 얼굴을 하며 상대방이 맹수일 때는 양의 얼굴을 한다.”
“신해혁명 이전에 나는 노예였다. 그런데 혁명이 일어나고 얼마 안 되어 노예에게 속아 그들의 노예가 되고 말았다.”
“『자본론』은 읽은 적도 없고 손도 대 본 적이 없다. 나를 눈뜨게 한 것은 현실이다. 그것도 외국의 현실이 아니라 중국의 현실이다.”
나는 루쉰을 고교를 졸업할 무렵에 읽은 『아큐정전』과 『광인일기』의 작가로 기억한다. 『광인일기』의 내용은 전혀 기억에 없고, 『아큐정전』의 경우는 그 해설서의 내용이 명확하게 와닿지 않았던 기억만 모호하게 남아 있다. 그 시절에는 아마 역사를 연대기적 기록이 아닌, 삶과 현실로 이해할 능력이 따로 없었던 탓이었지 않나 싶다.
그러나 루쉰은 자신을 문인으로 여겼고 문학에 대한 신뢰를 버리지 않았다. 그는 니체가 ‘피로 쓴 책’을 좋아했다며 ‘문학의 힘’을 이야기한다.
“핏자국은 물론 글보다 격정적이고 직접적이며 분명하다. 하지만 쉽게 변색되고 지워지기 쉽다. 문학의 힘이 필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문학과 예술은 국민정신이 발하는 불꽃이자 국민정신의 앞길을 밝히는 등불이다.”
“죽일 수 있어야 살릴 수 있고, 증오할 수 있어야 사랑할 수 있으며, 살릴 수 있어야 사랑할 수 있고, 그래야 문학을 할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는 자신이 혁명가가 되지 못한 이유를 ‘혁명가란 명령을 따를 뿐, 왜냐고 물어서는 안 되는데, 자신은 묻고자 했고, 일의 가치를 재보고자 했기 때문’이라고 술회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문학으로 살아가는 일의 고통을 고백하며 ‘문인이나 예술가가 되지 않도록 하라’는 유언을 남기는 모순적 태도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 모순적 이중성은 어쩌면 그가 작가였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문학으로 살아가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일이다.”
“아이들은 커서 재능이 없으면 조그만 일을 하며 살아가게 하라. 절대로 실속 없는 문학자나 미술가가 되지 말 것.”
2007. 5. 6. 낮달
2005년에 읽은 책인데, 정작 서지사항을 보니 2003년의 초판 1쇄다. 그게 별로 팔리지 않았다는 증거인지는 모르겠다. 그는 “걸어가는 사람이 많으면 그게 곧 길이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여럿이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는 오래된 비유와 같은 맥락의 명제다. 그는 또 이렇게 말한다.
“절망하지만 반항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며, 희망으로 인해 전투를 벌이는 사람보다 훨씬 용감하고 비장하다고 본다.” 어렵고 힘들었을 때는 언제나 있었고, 그것을 이겨 나간 힘은 절망한 이들의 용감과 비장한 싸움이었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2007년, 봄을 보내며 다시 생각한다.
“희망은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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