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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행복한 책 읽기

“간밤에 자고 간 그놈”

by 낮달2018 2019. 8.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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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시조 몇 수 읽기

 

▲ 휴머니스트, 2008

뒤늦게 철이 든다고 해야 하나. 이제 내가 가르치는 우리말과 우리글이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꼼짝없는 ‘늦깎이’인 셈이다. 20년이 넘도록 가르쳐 온 말글이었으나 정작 내가 그것을 마음과 문리(文理)로 깨치게 된 것은 몇 해 전부터인 듯하다.

 

현대시 몇 편을 가르친다고 열몇 시간을 쓰면서 아는 것 모르는 것 죄다 떠벌리며 거품을 물던 초임 교사 시절을 나는 쓴웃음 없이 떠올릴 수 없다. 그때 내 앞에서 국어 교과서를 폈던, 이제 불혹을 넘긴 중년 부인이 된 제자들을 만나면 나는 그렇게 말하곤 한다. 그때 내가 뭘 알고 있는 것 같았니? 정말 그때 내가 시를 제대로 알고나 있었을까…….

 

갑갑하고 따분해서 읽지 못하던 고전문학 관련 서적을 눅진하게 읽을 수 있게 된 것도 변화 중의 하나다. 무어 그리 삼빡한 내용도 아니건만, 시간을 두고 그것들을 읽으면서 나는 내 앎이란 게 기실 얼마나 천박한 것인가를 깨닫곤 한다.

 

우연히 온라인 서점을 뒤지다가 발견한 책이 <한국의 고전을 읽는다>(휴머니스트, 2006~2008)다. 책은 ‘오늘의 눈으로 고전을 읽자’를 모토로 휴머니스트 창립 5주년 기획 시리즈다. 고전문학, 역사·정치, 문화·사상, 현대문학으로 나누어 모두 8권으로 기획된 이 시리즈는 현재까지 7권이 나왔는데 나는 두 차례에 걸쳐 그중 5권까지를 구매해 읽는 중이다.

▲ 휴머니스트, 2008

고전문학이란 게 그렇다. 대부분 작품이 눈과 귀에 익은 것이긴 하지만 정작 그것에 대한 이해란 너나없이 얕고 가볍기 짝이 없다. 국문학 전공자라 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 대학 시절 전공 수업으로 공부한 것도 고작 개설서 정도의 초보적 지식에 지나지 않을뿐더러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수준도 기껏 참고서의 그것을 되풀이하는 데 그치기 때문이다.

 

전문 연구자들의 시선을 통해 우리 고전문학의 주요한 작품을 새롭게 바라보고 있는 이 책이 주는 재미는 제법 쏠쏠하다. 이 책에서 연구자들은 김만중의 <구운몽>을 통해 “조선 사대부의 꿈과 욕망”(송성욱)을, <토끼전>을 통해 “웃음과 우화로 엮어낸 민중의 정치의식”(정출헌)을, 정철의 <관동별곡>으로 “사대부 가사의 정점”(조세형)에 논하며 고전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해 주고 있다.

 

이정보의 사설시조를 통해 “사대부가 노래한 시정 풍속도”를 보여주고 있는 신경숙(한성대) 교수의 논고는 특히 흥미롭다. 이정보는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누구나 배우는 아래 시조의 지은이로 조선 후기 숙종~영조 연간의 문신이다.

 

국화야 너는 어이 삼월동풍 다 지내고

낙목한천(落木寒天)에 네 홀로 피었는고

아마도 오상고절(傲霜孤節)은 너뿐인가 하노라.

 


이정보(李鼎輔)(1693 ~1766)

 

자는 사수(士受), 호는 삼주(三洲)다. 그의 현조, 고조, 증조가 내리 대제학을 지내 명문 벌열 가에서 태어났다. 공조·이조판서, 함경감사, 대사성, 대제학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관직에 있는 동안 직언을 자주 하여 누차 파직되거나 좌천되었다.

 

그러나 대개는 그의 강직함이 인정되어 바로 복직되곤 했다. 음악에 조예가 깊어 악보와 새로운 가사를 많이 지었으며, 수많은 남녀 명창들을 배출했다.

 

만년에는 벼슬에서 물러나 한강변 학여울 가에 정자를 짓고 음악에 전념하는 생을 보냈다. 문집은 발견되지 않으며, 김수장의 <해동가요>에 82수 작품이 전한다. 이중 사설시조 18수가 있다. 그 외 가집들의 전하는 작품들을 합하면 100여 수가 된다.

 

<한국의 고전을 읽는다> 2권 248쪽에서

 


논고에 따르면 이정보는 사대부로서 사설시조를 제일 처음 짓기 시작한 사대부 음악가였다고 한다. 그는 ‘하층민 삶 안에 자리한 생의 활력’을 발견하고 그들의 ‘비속어를 시어로 이끌어와 시정 바닥 하층민의 삶을 핍진하게 그려낸’ ‘시정 풍속 묘사의 달인’이었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작자 시비에 휘말린 아래 사설시조를 보라.

 

간밤에 자고 간 그놈 아마도 못 잊으리.

기와공의 아들놈인지 진흙에 뽐내듯이, 두더지 아드님인지 국국이 뒤지듯이, 사공 놈의 큰아들인지 삿대로 찌르듯이, 평생에 처음이요 흉중에서 야릇해라.

전후에 나도 무던히 겪었으되 참 맹세하지 간밤 그놈은 차마 못 잊을까 하노라.

 

화자는 여성이다. 그녀는 기막힌 엑스터시의 간밤을 보냈고 그 감격(?)을 겨워하고 있다. ‘기와공과 두더지, 그리고 사공 놈’의 비유까지 끌어와 그 ‘쾌감의 강도까지 적시’하는 이 노래의 노골성은 타의 추종의 불허한다. 그런데 이 시가 영조 때 문형(文衡), 즉 대제학까지 지낸 이정보의 작품이다?

 

당대의 가객 김수장이 세 차례나 개편 보완한 시조집 <해동가요>에 수록된 이 작품이 이정보의 것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한다. 그런데도 원작자 시비가 인 것은 설마 지체 높은 사대부가 그런 비속한 노래를 지었겠느냐는 일반의 통념 때문이라고 지은이는 지적한다. 그러나 아래 작품에서 드러나는 이정보의 시적 경지는 일반의 통념을 가볍게 넘어선다.

 

님은 금성 회양의 오리나무 되고, 나는 삼사월 칡넝쿨 되어

그 나무에 그 칡이 납거미가 나비 감듯, 이리로 칭칭 저리로 칭칭, 외오 풀어 옳게 감아, 얽어져 풀어져, 밑부터 끝까지, 조금도 빈틈없이, 찬찬 굽이지게, 휘휘 감겨, 주야장상 뒤틀어져 감겨 있어

동지섣달 바람비 눈 서리를 아무리 맞은들 떨어질 줄 있으랴.

▲ 창비, 2007

사설시조가 보여주는 관능적 에로티시즘과 중세의 도덕적 억압에 대한 저항 의식은 평시조의 그것보다 훨씬 매력적이다. 임형택·고미숙이 엮은 <고전시가선>(창비, 1997)을 매입하여 읽게 된 것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다. <고전시가선>은 ‘사설시조 미학의 핵심은 감성의 자유분방한 분출과 시정 세태의 다채로운 반영’이라고 지적한다.

 

사설시조가 구현하는 사랑의 이미지들은 ‘용솟음치는 에너지와 관능적 환희’가 넘쳐흐르고, 그것을 향한 주인공들의 행동도 ‘저돌적이고 전투적’이다. 또 이들 인물의 묘사는 ‘사실주의 경향의 발전과 연관’되어 있기도 하다. 그런 뜻에서 사설시조는 우리 시가 사의 흐름에서 사대부들의 관념과 추상을 벗어던진 혁신의 형식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건강한 사람들의 진솔한 생활 감정의 토로인 사설시조는 때에 따라선 해석과 해설이 오히려 거추장스러울 수 있으리라. <고전시가선>에 실린 몇 수의 사설시조를 감상하면서 이 폭염을 견뎌보는 것은 어떨지.

 

어젯밤도 혼자 곱송그려 새우잠 자고 지난밤도 혼자 곱송그려 새우잠 자네.

어인 놈의 팔자인데 주야장상(晝夜長常) 곱송그려 새우잠만 자노.

오늘은 그리던 님 만나 발을 펴 벌리고 찬찬 휘감아 잘까 하노라.

 

반(半) 여든에 첫 계집을 하니 어렷두렷 우벅주벅 죽을 뻔 살 뻔하다가

와당탕 들이 달아 이리저리하니 노도령의 마음 홍글항글

진실로 이 자미(滋味) 아돗던들(알았던들) 길 적부터 할랏다.(하겠다.)

 

얽고 검고 키 큰 구레나룻 그것조차 길고 넓다.

젊지 않은 놈이 밤마다 배에 올라 조그만 구멍에 픈 연장 넣어두고 훌근할 적 할 제는 애정은커니와 태산이 덮누르는 듯 잔방귀 소리에 젖 먹던 힘이 다 쓰이노매라.

아무나 이놈을 데려다가 백년동주(百年同住)하고 영영 아니 온들 어느 개딸년이 시앗 새옴(시샘)하리오.

 

 

2008. 7. 28.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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