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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풍경

그, 혹은 나의 초가삼간(Ⅰ)

by 낮달2018 2019. 8.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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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꿈꾸는 우리의 초가삼간

▲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인 친구의 조립식 주택. 아직 지붕을 얹지 않았는데 텃밭이 아주 넓다.

나이가 들면서 한적한 교외에 ‘그림 같은 집’을 짓는 건 웬만한 가장들이라면 꾸어 볼 만한 꿈일지 모른다. 개인차는 있겠지만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나이를 먹으면서 ‘흙’이든 ‘고향’이든 귀촌의 유혹을 겪게 되는 모양이다. 그림 같은 집이라 했지만, 시속(時俗)에 따라 그 그림은 ‘목조’나 ‘통나무’, ‘황토집’ 등으로 바뀌곤 한다.

 

‘그림 같은 집’의 꿈

 

그런 사람들이 짓고 사는 집 이야기는 해마다 이어진다. 안동 주변에도 수년 전부터 선배 동료 4~5 가족이 함께 터를 사고 목조 주택을 올려 이웃을 이루었고 가까이는 올 2월에 명퇴로 교단을 떠난 내 친구가 인근 골짜기에 누옥을 마련 중이다.

 

일찍이 시골에 비싸지 않은 땅을 얼마간 사고 거기 적당한 집을 올리고 사는 걸 노래를 부르던 벗은 말하자면 소원을 성취한 셈인가. 크든 작든 나무집이든 흙집이든 집을 새로 올리는 사람들을 보면 이 ‘집짓기’는 일종의 추세라는 생각을 아니 할 수 없다.

 

그러나 나는 그런 추세를 뜨악하게 바라본다. 마당 없는 아파트는 흉물이라고 여기긴 하지만 거기서의 삶에 대체로 만족하며 살고 있다. 나는 무엇보다도 새로 집을 짓는 따위의 큰일을 감당할 자신이 전혀 없다. 물론 일차적으로 그건 경제력의 문제이긴 하다. 하지만 설령 그게 해결된다고 한들 거기 들일 노력과 에너지를 짜내고 싶지는 않다. 물론 이건 취향의 문제이지 시비의 문제는 결코 아니다.

 

지난주에 인근 탑리 쪽의 산등성이 밭 600여 평을 사서 거기다 15평짜리 조립식 주택을 짓고 있는 벗을 찾았다. 막 관정을 끝내 마무리공사와 지붕을 얹기 전에 마치려는 전기 내장 공사가 한창이었다. 열다섯 평이라지만 방 두 개의 널찍한 거실을 포함한 집은 그리 좁아 보이지 않는다.

 

공사가 진행되는 거실 바닥에 스티로폼을 깔고 앉아서 막걸리 잔을 나누었다. 맞뚫린 커다란 창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그는 굳이 ‘그림 같은 집’을 원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는 단지 시골에서의 삶을 원했으므로 내외가 몸을 뉠 공간이 필요던 것이다. 그게 시방 짓고 있는 집이 조립식인 까닭이다. 그는 지금 짓고 있는 집에 거처하면서 마당 한편에 시간을 두고 황토방 한 칸을 내려고 한다. 서너 평쯤의 황토방을 내고 평소에는 거기서 지내겠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비스듬한 산등성이 아래는 자두밭이었고 그 너머는 마을이었다. 집 오른편은 조그만 솔밭, 거기서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했다. 산등성이 위로도 복숭아밭, 자두밭 등이 죽 이어져 있었다. 어디 탁 트인 전망이라고 할 것은 없지만 고개를 들면 새파란 하늘, 사방을 둘러보면 푸른 들과 나무가 시야를 가득 채운다. ‘그림 같은 집’은 아니지만, 풍경은 얼추 그림에 가깝다고 봐도 좋겠다.

▲ 멀지 않은 교외에 선배가 마련한 목조주택. 그림 같다는 표현이 지나치지 않다.

아직 베어내지 않은 복숭아밭 한쪽에서는 황도가 누렇게 익어가고 있었다. 원래 밭 주인이 짓던 농사인데 벗은 올해 수확을 허락했다고 한다. 밭에는 조금씩 심어놓은 고추, 콩, 들깨, 가지, 호박이 웃자라 있었는데 한쪽에 좀 묘하게 생긴 열매가 눈에 띄었다.

 

“이거 아주 열매가 묘한데 뭐지?”
“열매가 아니라 꽃이야. 더덕꽃.”
“뿌리를 먹는 더덕?”
“그래.”

 

난생처음으로 보는 더덕은 잎사귀가 시원하다. 그리 큰 키는 아닌데도 알루미늄 지지대를 감고 올라온 줄기도 싱싱하고 연둣빛 어린잎의 빛깔이 맑고 그윽하다. 열매라고 생각했던 꽃은 오므렸던 봉오리를 열자 그 진면목을 드러낸다.

 

더덕은 초롱꽃과의 쌍떡잎식물로 여러해살이 덩굴식물이다. 초롱꽃처럼 아래를 향해 드리운 종 모양인데 겉은 희미한 분홍빛이고 속은 붉은빛이 섞인 자줏빛이 강렬하다. 불가사리 모양의 연둣빛 꽃받침이 선명하고, 꽃잎 안쪽에도 삼각형의 노란 꽃술이 묘하다. 묘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꽃이나 시원한 잎은 흔히 식용하는 뿌리의 모습으로 더덕을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묘한 부조화를 연출한다.

 

벗의 집 주변에서 가장 부러운 게 마당 끝머리에 있는 텃밭이다. 아직 제대로 가꾸지 못해 엉성하긴 해도 시퍼렇게 물오른 작물들 그 땅의 기름진 흙의 힘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이틀에 한 번꼴로 밭에 들르는 친구 내외의 발걸음이 역력하다.

▲ 더덕꽃. 마치 열매처럼 보이지만 아직 봉오리를 열지 않은 꽃이다.
▲ 더덕의 어린잎. 그 투명한 연둣빛 잎이 맑고도 그윽하다.
▲ 더덕꽃. 초롱꽃처럼 아래를 향해 드리운 종 모양인데 속은 붉은빛이 섞인 자줏빛이 강렬하다.

역시 텃밭이란 ‘지척’에 있어야 한다. 몇 해 동안 지척이라 할 수 없는 거리에 텃밭을 가꾸어 보니 그랬다. 필요하면 언제든 밭에 들러 풀을 매주고 솎아줄 수 있는 거리라야 서투르나마 제대로 작물을 기를 수 있는 것이다.

 

전체 600평 가운데 절반쯤이 아직도 복숭아 과수원인데 어떡할지 아직 요량이 서지 않았다고 한다. 베어내는 게 맞는데 한창 복숭아가 열리는 나무를 베어내자니 그렇고, 또 그냥 두자니 제대로 농사를 지을 자신이 없는 것이다.

 

흙이 아니라 이 나라 농정과 싸움을 벌이고 있는 농민들껜 민망한 일이지만 그가 여기 들어온 것은 ‘귀농’이 아니라 ‘귀촌’이다. 그는 시골에서 텃밭이나 가꾸면서 은퇴 이후의 삶을 꾸려가고자 한다. 그는 텃밭 농사도 농약과 비료는 물론이거니와 비닐도 쓰지 않겠다고 한다. 그리고 그건 그의 진심일 것이다.

 

나 같으면 어떻게 할까. 모르긴 몰라도 그런 ‘유난’을 떨 자신은 별로 없다. 내가 먹을 거니까 뭐, 하면서 필요하면 비료든 농약이든 쓰는 걸 그리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쓰고 나서는 마음이 썩 편치는 못하겠지만 말이다.

 

집을 짓는 것은 물론, 시골에서 노후를 보내겠다는 생각도 나는 해 본 적이 거의 없다. 언젠가 지리산에 사는 두 할머니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고 ‘시골에서 사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잠깐 한 적이 있긴 하다. 그러나 그건 한때의 스쳐가는 감정일 뿐이다.

 

친구의 초가삼간(?)을 둘러보면서 내가 이런 누옥의 주인이 되면 어떨까를 잠깐 상상해 보았다. 그것은 그리 어울릴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리 낯설고 생경한 그림도 아니었다. 친구와 헤어져 돌아오며 나는 아내에게 물어보았다.

 

“어때? 우리도 나중에 저런 집 하나 짓고 살까?”
“그러든지. 그렇지만 당신이? 어느 세월에…….”

 

그렇다. 어느 세월에 내가 그런 그림을 그려보기나 할까. 면앙정 송순은 ‘10년을 경영하여 초가삼간 지어’냈다지만……. 다른 무엇보다 나는 그의 텃밭이 탐나고 부럽다. 그래서 건성으로 혼자 중얼거려 본다. 손바닥만 한 자투리땅이라도 달린 집 하나 어디 없는가…….

 

 

2011. 8. 24. 낮달

 

[관련 글 : 그, 혹은 나의 초가삼간(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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