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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타리 밑의 ‘꼬마 파수꾼’, 꽈리 이야기

by 낮달2018 2019. 7.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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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속 줄기가 벋어 번식하는 식물, 꽈리

▲ 작가 박완서는 중편 '그 여자네 집'에서 꽈리를 울타리 밑은 꼬마 파수꾼이라 표현했다.

아무렴 어릴 적에 꽈리를 구경도 못 했을까. 그러나 꽈리에 관한 한 내 기억은 깜깜하다. ‘꽈리’를 입에 올렸던 기억은 있지만 정작 박완서의 단편의 주인공 만득 씨가 ‘빨갛게 초롱불을 켜 든 꼬마 파수꾼’이라 표현했던 꽈리에 대한 기억은 까맣다 못해 하얗다.

 

그 ‘빨간 초롱불을 켜 든 꼬마 파수꾼’을 며칠 전 들른 친지의 집에서 만났다. 경산의 어느 한적한 산골 마을 꼭대기에 지은 처제네 집 마당에서다. 마당 가장자리의 수풀 사이에서 예의 ‘빨갛게 초롱불을 켜 든 꼬마’가 이내 눈에 띄었다. 아내와 처제가 짤막하게 주고받은 대화다.

 

“얘, 저게 여주 아니니?”
“웬 여주는! 꽈리야.”

 

자연과 한참 멀어져 사는 삶이라 눈썰미가 처진다. 아내는 박과의 한해살이풀인 ‘여주’를 떠올렸으니 정작 그것과 꽈리는 별로 비슷하지도 않다. 나지막한 키의 꽈리는 정말 빨간 초롱불을 닮았다. 꽃이 진 뒤 짧은 통 모양의 꽃받침은 4~5cm 자라서 열매를 완전히 둘러싸게 된다. 이 꽃받침의 모양은 초파일 연등의 모습을 하고 있다.

 

꽈리는 땅속줄기가 길게 벋어 번식한다. 열매는 둥근 장과(漿果, 과육과 액즙이 많고 속에 씨가 들어 있는 과실)인데 빨갛게 익으면 먹을 수 있다. 이 열매가 ‘꽈리’다. 꽈리는 빨갛게 익은 다음 씨를 빼내어 입에 넣고 공기가 채워지게 하여 아랫입술과 윗니로 지그시 누르면 소리가 나서 어린이들이 즐겨 갖고 노는 노리개가 된다. 전체를 말려 만든 약재를 한방에선 산장(酸漿)이라는 부르며 해열약으로 쓴다.

 

“그중 아직도 생각나는 것은 곱단이네 울타리 밑의 꽈리나무를 ‘꼬마 파수꾼들이 초롱불을 빨갛게 켜 들고 서 있는 것 같다’고 표현한 거였다. 당시 우리 동네 집들은 거의 다 개나리로 뒤란 울타리를 치고 살았다. 그리고 뉘 집이나 울타리 밑에서 꽈리가 자생했다. 봄에서 여름에 걸쳐서는 거기에 꽈리나무가 있다는 것도 모를 정도로 전혀 눈에 안 띄는 잡초나 다름없었다.

꽈리가 거기 있다는 걸 알게 되는 건 울숲이 누렇게 생기를 잃고 난 후였다. 익은 꽈리는 단풍보다 고왔고, 아닌 게 아니라 초롱처럼 앙증맞았다. 그러나 그맘때면 붉게 물든 감잎도 더 고운 감한테 자리를 내주고, 들에서는 고추가 다홍빛으로 물들 때였다. 꽈리란 심심한 계집애들이 더러 입안에서 뽀드득대는 것 외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하찮은 잡초에 불과했다. 우리 집 울타리 밑에도 꽈리가 지천으로 자라고 있었다.

그렇게 흔해 빠진 꽈리 중 곱단이네 꽈리만이 초롱에 불 켜 든 꼬마 파수꾼이 된 것이다. 만득이는 어쩌면 그리움에 겨워 곱단이네 울타리 밑으로 개구멍을 내려다 말고 발갛게 초롱불을 켜 든 꼬마 파수꾼 때문에 이성을 찾은 거나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야 그 흔해 빠진 꽈리 중에서 곱단이네 꽈리만을 그렇게 특별한 꽈리로 만들 수는 없는 일이었다.”

 

         - 박완서, 「그 여자네 집」 중에서

 

▲ 열매를 감싸고 있는 꽃받침. ⓒ&nbsp;<민속대백과사전>

꽈리를 불며 논 기억도 물론 없다. 그런데 왜 ‘꽈리’라는 낱말이 낯설지 않을까. 아무리 궁리해 봐도 이유를 찾을 수 없다. 꽈리가 가짓과의 여러해살이풀이라는 사실도 뜻밖이다. 꽈리와 가지의 공통점은 쉽게 떠오르기 어렵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고추 가운데 ‘꽈리고추’라는 종류가 있다. 다른 고추에 비해 껍질이 질기지 않고, 아삭거리고, 매운맛이 덜해 멸치볶음 등 밑반찬 재료로 널리 쓰이는 놈이다. 이 녀석에게 꽈리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꽈리처럼 쪼글쪼글하게 생겨서다.

 

초롱불 같았던 꽈리의 꽃받침은 열매가 익으면서 서서히 쭈글쭈글해지는 모양이다. 그리고 꽈리는 마치 방울토마토처럼 매끄러운 붉은 빛의 사랑스러운 열매가 되는 것이다. 사과나 배 등의 과일은 병해충으로부터 열매를 보호하기 위해서 봉지를 씌우는데 꽈리는 꽃받침이 봉지 구실을 대신해 주는 셈이다.

 

조그마한 키의 여러해살이풀이지만 이같이 예사롭지 않은 얼개 때문일까. 꽈리는 그만그만한 사연의 전설도 품고 있다.

 

“노래를 잘 부르는 ‘꽈리’라는 이름의 착한 소녀가 있었다. 마을 세도가에도 또래의 딸이 있었는데 이 딸아이가 꽈리의 재주를 시기했다. 고을의 원이 소문으로 듣던 꽈리의 노래를 듣기를 청했는데 세도가에서는 건달들을 시켜 꽈리의 노래를 비웃고 폄하하게 했다. 이에 분노하고 낙심한 꽈리는 병이 나서 죽고, 이듬해 봄 꽈리의 무덤에서는 꽃 한 송이 피어나고 빨간 열매가 열렸다. 사람들이 그 열매를 ‘꽈리’라 불렀다…….”

꽈리를 불어서 내는 소리가 아름다우면 얼마나 아름다우랴. 그러나 사람들은 이 꽃과 열매에 동화적 환상을 덧붙인 것이다. 꽈리는 늘 억압받는 자신들과 동일시되는 존재다. 무미건조한 주변의 일상에 고운 환상을 덧입히는 것은 민중들만의 자기 미학인지도 모른다.

 

마치 초파일 날의 연등처럼 주황색 지등을 밝히고 선 저물녘의 꽈리는 아름답고 고혹적이었다. 조만간 꽈리 열매는 익을 것이다. 다시 다시 이곳을 찾는 건 쉽지 않을 터. 처제에게 부탁해서 꽈리 씨라도 갈무리해 두라고나 해 볼까 하는 객쩍은 생각을 잠깐 했다.

 

골짜기에 이내 밤이 찾아왔다. 모깃불을 피우고 가족들이 나누는 정담도 시나브로 깊어갔다.

 

 

2012. 8. 6.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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