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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부리(多富里)’가 된 다부동과 지방자치

by 낮달2018 2019. 7.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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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 지방자치법에 따라 읍면의 ‘동’은 모두 ‘리’가 되었다  

▲ 지방자치법에 따른 각 단위 지자체의 위계. '리'는 최말단 행정구역 명칭이다.

다부리가 된 다부동

 

1988년 5월 이전까지 경상북도의 읍과 면 지역의 하부 행정구역은 ‘동(洞)’이었다. 그래서 내 본적은 포남동(浦南洞)이었고 칠곡군 가산면 다부동(多富洞)에선 그 유명한 ‘다부동 전투’가 있었다. 나는 그게 우리나라 표준의 행정구역 이름인 줄 알았다.

 

교과서에 마을 ‘이장(里長)’이 더러 나오곤 하는 초등학교 고학년 때 선생님은 그게 우리 지역의 ‘동장(洞長)’과 같은 거라고 알려주었다. 나는 그 낱말이 낯설어서 왜 그걸 동장이라고 하지 않고 이장이라고 한담, 하고 고개를 갸웃했다. 아마 선생님들도 우리 지역 출신이어서 그걸 잘 몰랐을지도 모르겠다.

 

중학교로 진학한 대구의 동네 이름도 신암동, 대명동, 남산동이었으니 나는 ‘○○리(里)’라는 동네 이름을 상상하지 못한 채 성장했다. 20대 끝자락에 경주시 안강읍에 있는 여학교에 임용되어 이사하고 전입신고를 하면서 그쪽 동네 이름이 ‘안강리’와 ‘양월리’ 등 ‘리’로 끝나는 이름이란 걸 알았다.

 

아, 이쪽 지역은 동네 이름을 ‘리’로 쓰는구나. 당연히 동장이 아니라 ‘이장’이겠네. 나는 거기서 4년간 살았다. 1988년, 학교를 옮겨서 우리 가족은 고향 근처인 왜관읍 왜관동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해 5월에 지역의 행정구역 이름이 왜관리로 바뀌었다.

 

1988년 4월 6일 전부 개정된 지방자치법에 따른 조치였다. 당시 개정된 조항은 “……시와 구(자치구를 포함한다)에는 동을, 읍·면에는 리를 둔다.”는 것이었다. 이 법률에 따라 내 본적지는 포남리가 되었고 다부동도 다부리가 되었다. 반면 경주 안강리와 양월리는 제 이름을 지켰음은 물론이다.

▲ 칠곡군 지천면 신동에 있는 역은 '신동'이 '신리'로 바뀌어도 여전히 신동역으로 남아 있다.
▲ 칠곡군 가산면의 다부동 전적기념관 조형물. 지명이 다부리로 바뀌었지만, 그 전투는 지금도 '다부동 전투'다.

그러나 사람들은 관습적으로 여전히 ‘리’ 대신 동을 쓰는 경우가 많다. 칠곡군 지천면 신동(新洞)은 ‘신리(新里)’가 되었고 칠곡군 석적면 중동(中洞)은 ‘중리(中里)’가 되었다. 그러나 나이든 이들에게 거긴 여전히 신동이고 중동이다.

 

구미시와 붙어 있어 시내와 진배없는 고아읍 원호동도 원호리가 되었지만, 여전히 원호동이라 부르는 이들이 적지 않다. 변화에 잘 적응하는 젊은이들이야 바뀐 호칭에 이내 익숙해졌지만 말이다.

 

오늘 산에 다녀오다가 문득 이 동네 이름에 생각이 미쳤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고서 나는 내가 알고 있었던 게 지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나는 ‘리’를 썼던 경주의 시골이 예외라고 생각했지만 기실 예외는 경상북도였기 때문이다. 경북을 제외한 대부분 시골에서 ‘리’를 쓰고 있었으니 교과서에 ‘이장’이 나올 수밖에.

 

“시와 구에는 동을, 읍·면에는 리를 둔다.”

 

<위키백과> 등에 따르면 조선 시대에는 시골 지역 기초행정구역에 동, 리, 촌, 부락 등의 명칭이 섞여 있었다고 한다. 1914년 부군면(府郡面) 통폐합을 기점으로 촌과 부락의 명칭을 동과 리로 정리하였는데, 경상북도, 평안북도, 함경북도에서는 읍·면의 하부 행정구역을 리가 아닌 ‘동(洞)’으로 썼다고 한다.

 

세 도에서 왜 리 대신 동을 썼는지는 알 수 없다. 경상북도 가운데서도 경주, 포항 등지에서는 ‘리’를 썼는데 다른 시군의 읍면지역 말단행정구역의 명칭이 ‘리’로 일원화된 것은 앞서 말한 것처럼 1988년이다.

 

1988년 전부 개정되었던 지방자치법은 이후 여러 차례 개정되었고, 현행 법률은 2011년 5월 30일에 개정된 것이다. [지방자치법 참조] 예의 조항은 “③ 특별시·광역시 및 특별자치시가 아닌 인구 50만 이상의 시에는 자치구가 아닌 구를 둘 수 있고, 군에는 읍·면을 두며, 시와 구(자치구를 포함한다)에는 동을, 읍·면에는 리를 둔다.”로 바뀌었다.

 

지방자치법 제3조는 지방자치단체의 법인격과 관할을 규정하고 있는데 이 조항으로 지방자치단체의 위계를 확인할 수 있다. 광역단체인 ‘시·도’와 ‘시·군’에서의 시(市)는 위계가 다르다.

 

지방자치단체의 ‘위계’

 

앞의 시는 광역단체로 서울, 부산, 대구, 광주와 같은 광역시를 이르고 뒤의 시는 광역단체인 도(道) 아래 있는 경기도 수원시, 경북 구미시, 충남 논산시 같은 기초자치단체를 이르는 것이다.

 

동(洞)도 비슷하다. 광역시 자치구(서울특별시 종로구, 대구광역시 수성구…)는 도의 시군과 위계가 같고 자치구의 동은 시군의 읍면과 같은 것이다. 그렇게 보면 읍면지역의 리는 최말단의 행정구역이라 할 수 있다.

 

법률에 나오는 특별자치도는 제주도, 특별자치시는 세종시 같은 자치단체를 이른다. 둘 다 하위에 기초지방자치단체를 두지 않는 단층제 광역지방자치단체다. 제주특별자치도는 남북으로 두 개의 행정시(기초자치단체가 아닌 형식적인 행정구역)인 제주시와 서귀포시가 설치되어 있는데 시장은 도지사가 임명한다.

 

박정희 독재로 효력이 정지되어 있었던 지방자치법이 1988년 전면개정된 뒤 1991년 지방의회가 구성되면서 시작된 지방자치는 벌써 성년을 넘겼다. 그러나 ‘풀뿌리 민주주의’로 잔뜩 기대를 받은 데 비기면 그것은 절반의 성공에 그치고 있다.

 

지방선거가 참신한 정치 신인의 발굴보다는 검증되지 않은 지방 토호세력의 진출 경로가 되고 있으며, 지방의회가 특정 정당의 일당 지배로 단체장의 거수기 노릇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 현실인 것이다.

 

 

2019. 7. 13.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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