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 “구미의 ‘맥주 공장’이 광주로 갔다”는 ‘낭설’은 믿고 싶은 이에겐 ‘진실’이 된다
새 학년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어떤 행사의 뒤 끝에 동료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끝에 구미 경제가 화제로 떠올랐다. 장사를 하든 사업을 하든 인구 변동이 지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예사롭지 않은데 공단에서 철수하는 기업들에 대한 이야기 끝에 ‘오비맥주 구미공장’이 화제에 올랐다.
- 오비맥주 구미공장은 DJ정부 때 광주로 옮겨갔지요. 그런데 웃기는 건 광주공장에서 맥주를 생산하려니까 수질이 좋지 않아서 생산을 못 했다는 거예요. 거의 만화지요.
- 처음 듣는 얘깁니다. 그런데 가정집도 아니고, 큰 공장을 옮기면서 사전조사도 안 하고 옮겨갔다니 이해가 안 되네요. 물을 원료로 하는 맥주공장이 옮기면서 수질 조사도 안 하고 갔다는 건 믿기 힘들지요. 이거 뭐, 배추장사도 아니고…….
‘호남을 살리려고 구미를 죽였다?’
말하는 쪽이나 묻는 쪽이나 상황을 다 알고 있는 건 아니어서 어물쩍하게 화제를 마무리하고 말았다. 이른바 ‘구미 경제 약화론’은 수도권 규제 완화와 맞물리면서 증폭되는 화제다. 거기 양념으로 끼는 게 ‘DJ정부 책임론’이다. 이런 저런 디테일이 있긴 하지만 ‘광주(호남)를 살리려고 구미를 죽였다’는 게 핵심이다.
상식과 논리로 설명하기 힘든 것이 영남인들이 가진 ‘반호남’의 ‘지역감정’이다. 역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영남이 피해자였던 적은 일찍이 없었다. 박정희를 필두로 전두환, 노태우를 거쳐 김영삼에 이르기까지 영남정권이 누린 세월이 30년이 훌쩍 넘는다. 그 시기 동안 영남은 어떤 형식으로든 정권 덕을 보았지만 호남은 상대적 소외와 박탈을 고스란히 견뎌야 했다.
거기다 1980년 5월의 광주항쟁의 핏빛 기억이 보태진다. 신군부의 기만과 왜곡에도 불구하고 ‘광주의 진실’이 하나씩 밝혀졌지만 정작 영남인들의 호남인 기피와 혐오는 짙어진다. ‘가해’와 ‘피해’의 도착된 기억들 위에 그것은 일종의 ‘자기 방어’의 논리처럼 보이기도 한다.
8, 90년대에 영남권에 회자된 호남지역과 관련된 유언비어 가운데 “호남에 가서 주유를 하려면 ‘김대중 선생 만세’를 세 번 불러야 기름을 넣어준다.”가 있다. 은근히 영호남의 가해, 피해 관계를 뒤바꾸는 교묘한 선동이다. 이런 황당한 얘기를 누가 믿나 싶지만 '원시적 증오'와 '기피'의 정서는 애당초 논리라는 토양이 필요 없는 것이다. 아마 이때부터 영남인들의 반호남 의식은 가중된 게 아닌가 싶다.
호남지역을 여행해 보면 그 지역 사람들이 영남사람을 대하기를 마치 살얼음 밟는 듯 조심스러워한다는 것을 단박에 느낄 수 있다. 그들은 자신의 언행이 호남사람의 일반적 인상으로 비칠까 두려워하면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예의를 다한다. 그걸 지켜보는 기분은 안쓰러움을 넘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영남 사람들은 자기 지역이 받은 우대와 혜택, 그 역사에 대해 짐짓 눈을 감는다. 그러면서도 정권교체 후의 국민, 참여 정부가 자신들의 ‘몇 안 되는 혜택’마저 거두어 갔다는 박탈감을 은근히 확대재생산하는 것이다. 지금껏 구미에 회자되고 있는 '맥주공장' 이야기도 그 일단이었으리라.
내 기억에 오비맥주 구미공장은 인동 쪽의 제2공단에 있었다. 한때 귀향길과 벌초길에 늘 지나가던 길가에 그 공장은 은근한 술 냄새를 풍기면서 서 있었다. 그쪽 길을 다닐 일이 없어지면서 그 공장이 폐쇄되었다는 사실을 나는 전혀 몰랐다. 나는 이내 오비맥주 공장 이야기는 잊어버렸다.
얼마 전에 부모님 산소를 다녀오다가 문득 이 이야기가 나왔다. 뜻밖에 아내가 그 공장에 다니다 광주로 옮겼다는 고향 이웃사람 이야기를 했다. 물이 맞지 않아 공장을 가동하지 못했다는 그 예의 맥주공장 말이다. 아내의 후배는 거기서 아주 성실히 근무하고 있다고 했다.
“구미공장은 광주로 옮겨간 적이 없다”
그제야 나는 예의 ‘맥주공장’의 전말을 확인하고 싶어졌다. 인터넷에서 ‘오비맥주 구미공장’ 이야기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서프라이즈(http://www.seoprise.com)에서 저간의 사정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다음은 ‘서프라이즈’에 인용된 일간지 기사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맥주공장’ 전말기다.
맥주업계 감산 돌입
[한겨레]1998-07-06 06면
맥주업체들이 급격한 내수위축으로 공장가동률이 70% 안팎을 오르내리면서 감산에 나서고 있다. 오비맥주는 오비맥주 전체생산 109만㎘ 가운데 23.9%를 차지하는 경북 구미공장 가동을 지난 1일 중단하고 폐업절차를 밟고 있다고 5일 밝혔다. 지난해 강원도 공장을 새로 지은 하이트맥주도 감산을 적극 고려하고 있다. 또 미국 쿠어스와 매각협상을 벌이고 있는 진로 쿠어스 맥주도 감산에 참여할 것으로 알려졌다. <박창섭 기자>
과잉설비도 外資유치 ‘장애물’
[문화일보]1998-05-18 11면
벨기에의 다국적 맥주업체인 인터브루 사와 5억 달러의 외자 유치 협상을 하고 있는 두산은 전국의 3군데 OB공장 가운데 1개 공장 폐쇄 문제를 둘러싸고 막판 진통을 겪고 있다.
인터브루는 OB맥주 지분 50%를 인수하는 조건으로 이 회사의 경북 구미공장을 폐쇄하고 부지와 설비를 매각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두산측은 이에 대해 난색을 표명해 오다가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지자 구미 공장 대신 광주광역시 공장 문을 닫는 조건을 제시하고 있으나 인터브루 측이 이를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OB맥주의 한 관계자는 “인터브루는 소비감소로 국내 맥주업계 평균 가동률이 50%이하로 떨어져 3개 공장을 모두 가동할 경우 만성적자를 면치 못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 같다”며 “지난 91년에 완공한 구미공장은 87년부터 가동을 한 광주 공장보다 신식 설비를 갖추고 있어 인터브루 측의 요구를 쉽게 수용하기 어려워 고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OB맥주 구미공장의 연간 생산능력은 26만㎘로 이 회사 연간 총생산규모(1백9만㎘) 가운데 23.9%를 차지하고 있다. 인터브루가 구미공장 폐쇄를 요구하고 있는 것은 OB맥주의 라이벌인 하이트맥주가 영남시장을 70%이상 점유하고 있어 이 공장을 가동하면 할수록 적자만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기사에서 보듯 먼저 맥주업계가 ‘감산’에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 있었다. 급격한 내수 위축으로 공장가동률이 70% 안팎에 그치는 형편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오비맥주는 전체 생산량의 23.9%를 차지하는 구미공장 가동을 중단하고 폐업절차를 밟기 시작한 것이다. 감산은 오비만의 문제가 아니라 하이트와 진로 쿠어스도 고려하는 상황이었다.
다음 문제는 ‘과잉설비’다. 당시 오비맥주를 생산하고 있던 두산은 벨기에의 다국적 맥주업체인 인터브루 사와 5억 달러의 외자 유치 협상을 벌이고 있었다. 인터브루 사는 OB맥주 지분 50%를 인수하는 조건으로 이 회사의 경북 구미공장을 폐쇄하고 부지와 설비를 매각할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두산의 맥주공장은 경기도 이천과 경북 구미, 그리고 광주 등 세 군데에 있었다. 그중 인터브루가 구미공장 폐쇄를 요구하고 있는 것은 OB맥주의 라이벌인 하이트맥주가 영남시장을 70% 이상 점유하고 있어 이 공장을 가동하면 할수록 적자만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OB맥주 구미공장 설비가 전남 광주로 옮겨간다는 루머를 알아보니 낭설이더라.”
[한국경제]1999-01-26 02면
박태영 산업자원부 장관이 25일 간부회의에서 OB맥주 구미공장의 광주 이전설과 관련, 진상을 제대로 알릴 것을 간부들에게 당부했다. 산자부는 영남지역의 맥주소비 급감으로 구미공장이 작년 8월부터 가동을 중단한 건 사실이지만 구미공장 설비를 광주로 옮긴다는 건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작년 8월 벨기에의 인터브루사와 50대 50으로 합작한 두산계열 OB맥주측도 “최신 생산설비를 갖춘 광주공장에 구미공장의 설비를 옮겨 추가 설치할 필요는 없다”고 설명했다.
현재 OB맥주 공장은 구미 광주 이천 등 세곳에 있다. 두산측은 한때 40%에 이르던 영남지역의 시장점유율이 경쟁사 약진과 IMF(국제통화기금) 사태로 지난해 30%대로 떨어지자 구미공장을 폐쇄했다. 두산측은 구미공장을 영구 폐쇄할 방침이라며 재가동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말했다. 두산측은 구미공장 근로자를 본인 희망에 따라 이천 또는 광주공장으로 옮겨주거나 퇴직시키고 있다고 덧붙였다.
결국 오비맥주는 인터브루의 요구를 받아들여 구미공장을 영구 폐쇄했다. 감산을 위한 공장 폐쇄였기 때문에 당연히 설비는 물론, 공장 이전도 필요 없는 일이었다. 난데없이 공장 하나가 문을 닫아버린 구미 지역에는 적잖은 박탈감을 안겼지만 이 일련의 조치에 ‘영호남’이 개재된 어떤 정치적 고려도 담겨 있지 않았다.
이러한 전말을 참고하여 ‘오비맥주 광주 이전설’은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겠다.
- 오비맥주 구미공장은 폐쇄되었을 뿐 광주로 이전하지 않았다. 광주에도 오비맥주의 공장이 가동 중이었다. 당연히 ‘물 문제’로 맥주공장이 가동되지 못했다는 것은 낭설이다.
- 오비맥주 구미공장의 폐쇄는 광주공장과 어떤 상관관계도 없다. 애당초 두산 측은 상대적으로 최신 설비였던 구미공장을 살리고 광주공장을 폐쇄하길 원했으나 자본을 투자할 인터브루의 요구대로 구미공장을 폐쇄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 두산 측은 구미공장 근로자를 본인 희망에 따라 이천 또는 광주공장으로 옮겨주거나 퇴직시켰다. 아내가 근황을 전했던 친구는 결국 본인 희망에 따라 광주로 가서 일하고 있는 경우인 셈이다.
‘낭설’도 믿고 싶어 하는 이들에겐 ‘진실’이다
그러나 당시에 이 루머에 불을 지른 이들은 지역의 야당 정치인들이었다. 영남에 있던 기업이 집권 여당의 근거지인 호남으로 이전한다는 형식은 설사 그게 루머에 그칠지라도 상당히 민감한 사안이었던 것이다.
당시 지역 일간지 기사를 들여다보면 ‘수도권 첨단공장 신·증설 허용에 대한 지역 시도민 규탄대회’‘’ 등에서 지역 출신의 정치인들은 낭설에 불과했던 ‘오비맥주 광주이전설’을 아주 생광스레 써먹고 있는 것로 확인된다.
낭설에 불과했던 이 ‘맥주공장 광주이전설’은 10년이 훌쩍 지난 현재까지도 여전히 구미 지역에서는 ‘사실’로 유통되고 있다. 설사 그게 낭설이라 한들, 그렇게 믿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그것은 어디까지나 ‘진실’일 뿐이다. 그리고 그 ‘진실’에 근거한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의 영남 홀대론은 힘을 받는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영남 사람들의 경직되고 왜곡된 반(反)호남의식, 차별적 지역감정으로 다시 되풀이되는 악순환을 거듭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악순환에 지역 사람들이 흥겨이 몸을 내맡기고 있는 이상, 지역주의 정당의 발호와 망국적 지역감정은 연면히 이어질 것이다.
구미는 젊다. “평균 연령 34세, 30대 이하가 도시 전체 인구의 62%이상을 차지하는 젊은 도시, 한국 디지털·IT 산업의 중심, 사통팔달의 교통·물류망을 갖춘 첨단 산업도시”(구미시 누리집)이지만 그 외형적 젊음만큼이나 시민들의 의식도 젊은 것 같지는 않다.
42만에 이르는 구미시민 가운데에는 구미 토박이보다는 유입인구가 더 많을 터이다. 그러나 다른 지역에서 들어온 이들이 더 합리적이고 진취적인 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구미에서는 ‘구미에 들어온 사람들은 이내 구미사람이 되어 버린다.’는 우스개가 통하는 것이다.
오비맥주 구미공장이 떠난 자리는 어떨까. 확인해 보니 2001년 그 부지 7만 평 가운데 4만 평을 엘지(LG)실트론이 인수했고, 거기 300mm 웨이퍼 공장을 지어 가동 중이라 했다. 처음 ‘광주이전설’을 듣고 내 머리에 떠오른 것은 문 닫은 공장의 을씨년스런 살풍경이었는데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그런데 아직도 ‘광주이전설’을 주워 섬기며 지역감정을 은근히 되살리는 사람들 가운데 그 맥주공장 자리에 대기업이 들어섰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을까. 얼마 전 십수 년 만에 찾아온 옛 제자는 바로 그 회사에 16년째 근속 중이라고 했다. 그 친구가 중국 연수에서 돌아오면 이 황당한 루머를 안주 삼아 소주라도 한 잔 나누어야겠다.
2012. 5. 16.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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