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박태균 지음, 『한국전쟁』
박태균 교수가 쓴 <한국전쟁-끝나지 않은 전쟁, 끝나야 할 전쟁>을 읽은 것은 지난해 이맘때다.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을 날림으로 읽은 이래 십수 년 만에 나는 한국전쟁을 새롭게 들여다볼 수 있었다. 이 책은 지은이의 말처럼 ‘한국전쟁을 쉽게, 그리고 객관적으로 설명’하면서 전체적으로 그것의 전모를 정리해 준다.
이데올로기와 편견을 넘어 사실적으로 바라본 한국전쟁
이 책은 놀랍게도 한국 현대사 전공자가 일반인을 위해 정리한 최초(!)의 한국전쟁 관련서다. 이는 거꾸로 말하면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사건일 뿐만 아니라, 여전히 민족적 삶의 질곡으로 온존해 온 한국전쟁에 대한 일반인의 이해와 접근이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한국전쟁은 전쟁을 몸소 겪었던 체험 세대는 물론이거니와 전쟁을 겪지 못했던 미체험 세대 모두에게 그 전모를 설명하기 어려운 복잡한 전쟁이 아니었나 싶다. [관련 글 : 70년 전 우리가 치른 전쟁이 가르쳐 준 것들]
체험 세대에게 그것이 죽음과 파괴, 이데올로기의 잔혹성 등 자기 경험치를 중심으로 한 일종의 도그마일 수도 있었던 반면, 미체험 세대에게도 그것은 난삽한 이론과 이념의 편향에서 벗어날 수 없는 오리무중의 의제였으니 말이다.
이 책은 저자가 수년간 한국전쟁을 주제로 강의하면서 학생들과 나눈 토론의 결과물이다. 지은이는 머리말에서 “한국전쟁을 이데올로기와 편견을 넘어 사실적으로 바라보고자 했다.”라고 고백한다. ‘6·25사변’부터 ‘6·25전쟁’, ‘민족해방전쟁’ 등으로 두루 불려온 이 전쟁의 명칭을 ‘한국전쟁’(Korean War)이란 가치 중립적인 이름으로 부르는 것은 바로 그 의도의 출발점이다.
저자는 한국전쟁이 ‘시작되어서는 아니 될 전쟁’이었고, ‘끝나야 했는데도 끝나지 않은, 그러나 반드시 끝나야만 하는 전쟁’이라고 믿는다. 아울러 더는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을 한국전쟁의 가장 큰 교훈으로 바라보면서 한국전쟁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책은 ‘정전협정’문을 비롯해 모두 68건의 사료와 60여 장의 사진, 지도, 일지 등을 통해 한국전쟁의 이해를 실증적으로 돕는다. 그것은 늘 어느 한쪽에 치우친 해석 때문에 헛갈렸던 독자들에게는 상당한 강점으로 다가온다.
이 책에서는 한국전쟁에 관한 한 고전적 명제인 ‘북침인가? 남침인가?’부터 시작하여 ‘하필 왜 1950년 6월 25일에 전쟁이 시작되었는가?’, ‘북한군이 서울에서 3일을 머문 이유는?’ 등 모두 열두 개의 쟁점을 다룬다. 쟁점을 중심으로 한국전쟁과 관련한 기왕의 논의들을 냉정하게 분석하면서 실체적 진실에 접근해 가는 방식인 것이다.
전쟁의 시작이 어디서부터인가 하는, 개전에 관련된 주장은 극과 극으로 엇갈려 왔다. 대체로 남침설과 북침설, 그리고 남침 유도설이 그것인데 저자는 남침 유도설과 관련해 주변 상황 변수를 일일이 점검한다. 지은이는 마오쩌둥과 북한 지도부가 스탈린의 지령을 받고 전쟁을 일으켰다는, 이른바 ‘전통주의적 관점’에서 소련과 중국에 지나친 역할을 부여하는 것은 오류라는 입장 아래서 남침 유도설을 검증한다.
미군 철수를 가장 강력한 근거로 제시하는 남침 유도설은 잘못된 가설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비판하면서도 저자는 그 이론이 폐기될 수는 없다고 유보한다. 증거는 전혀 없으면서도 방위선에서 제외한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나자마자 1주일도 안 되어 군대를 파견하고, 전쟁 발발의 정보를 갖고 있으면서도 적절히 대처하지 않은 미국의 태도 때문이다.
‘하필 왜 1950년 6월 25일에 전쟁이 시작되었는가?’도 주요한 쟁점의 하나이다. 저자는 여러 상황 요인과 함께 ‘공격은 최선의 방어’라는 현재도 북미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른바 안보 딜레마(security dilemma)에 주목하고 있는 듯하다.
전쟁은 ‘실패의 연속 과정’
저자는 전쟁이 실패의 연속과정이었다고 판단한다. 북한군이 서울에서 3일을 머문 이유를 북한의 전쟁 계획이 남한 전역을 점령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이른바 ‘제한 전쟁설’과 함께 작전 실패(춘천 지역 전선의 완강한 저항 등)로 인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보고 있는 저자는 일찌감치 방어선이 무너져 버린 미군의 실패를 두 번째 실패로 꼽는다. 이 실패는 미군 내부에서의 인종 문제와 깊은 관련(흑인부대의 전투력 문제 등)을 맺고 있었다.
저자는 한국전쟁의 전기를 마련한 인천상륙작전도 북과 미국의 실패로 규정한다. 북의 경우 낙동강 전선에 두 달째 매여 있으면서 허를 뚫렸고, 미국은 13일 만에야 서울 탈환하는 결정적인 실패를 저질렀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이때 UN군이 벌어 준 시간은 고스란히 북이 전열을 가다듬게 해 주었고, 결국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는 것이다.
38선 이북으로의 북진도 미국의 네 번째 실패로 저자는 짚는다. 그것은 중국의 참전을 가져왔고 UN군의 치명적인 피해를 수반했기 때문이다. 빠른 북진으로 보급선이 멀어지고, 전선이 고립되는 데다, 추워지는 날씨는 미군을 괴롭혔다.
이 시기 미군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준 것이 중국군의 ‘인해전술’로 알려지지만, 실상 인해전술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것은 장진호 전투와 같은 특수한 상황에서 구사된 전술이었을 뿐, 중국군의 일반적 전술은 결코 아니었다. 이는 ‘중국군’을 ‘짱꼴라’라고 비하한, 인구가 많으니 사람 죽이는 일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할 거라는 서양인들의 태도에서 비롯한 오해였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
놀라운 것은 중국의 참전과 함께 맥아더가 제기했던 핵무기의 사용은 이후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전에 한 번 더 검토되었다는 사실이다. 북한에 좀 더 쉽게 미국의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입안되었던 이 계획은 결국 북한의 양보로 실행되지 않았지만, 이 땅에서의 전쟁 등의 결정이 민족의 생존과는 무관하게 강대국의 이해에 따라 결정될 수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예이다.
이밖에 이 책은 전쟁이 2년이나 계속된 이유, 포로 송환 협상, 남북 모두에게서 버려진 빨치산, 미국이 두 번이나 이승만 제거 계획을 세웠던 일, 민간인 학살 등과 관련해 정확한 자료를 인용해서 알려지지 않은 사실을 알려 준다. 하나씩 진실을 들여다볼 때마다 느끼는 것은 전쟁의 가장 기초적인 이해조차도 쉽지 않게 만드는 것이 이데올로기의 허구성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저자가 모두에게 던지는 세 가지 질문
1953년에 체결된 협정의 정식 명칭은 ‘정전협정’이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남한에서는 ‘정전’ 대신에 ‘휴전’이란 낱말이 쓰이고 있는데 ‘휴전’은 물론 훨씬 ‘호전적’인 용어라고 저자는 진단한다. 그것은 말 그대로 쉬고 있으니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뜻이다. 전쟁은 끝나지 않았는가.
저자는 그렇다고 말한다. 제2연평해전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정전협정의 불완전성뿐만 아니라, 전쟁이 시퍼렇게 살아 있는 증거로 저자는 국가보안법의 존재를 든다. 그리고 그는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라도 정전협정의 개정, 한미상호방위조약의 개정, 그리고 국가보안법이 개폐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은이는 맺음말에서 다음 세 가지 질문을 던진다. 이 질문들은 분단과 전쟁 연구를 통해서 민족의 삶과 현실을 들여다본 한 역사가가 자신에게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지금, 그리고 여기에 대한 질문이다.
“한국전쟁 : 한반도는 외세의 힘에 의해서만 분단되었는가? 우리에게는 아무 책임도 없는가?”
“한국 현대사 : 한국군 전체의 5%를 동원한 5·16 쿠데타의 성공은 미국의 방조 때문인가, 아니면 우리의 잘못 때문인가?”
“현재의 한국 사회 : 한국의 대외관계를 앞으로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 것인가? 외세에 의해 분단되고 세계 냉전이 한국전쟁의 한 요인이 되었다고 해서 가만히 앉아 외세를 비난하고만 있으면 대외관계 문제가 모두 풀리는가?”
2007. 6. 26.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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