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희생을 기리는 노란 리본, 그 공감과 분노
어제 역전 광장에서 세월호 희생자 추모 촛불문화제가 열렸다. 지역에선 처음으로 열리는 행사다. 오후 여섯 시, 퇴근 무렵이어서 역사를 등진 채 거리를 바라보며 앉은 참가자들 주변은 역사를 오가는 행인으로 붐볐다.
세월호 희생자 추모 촛불문화제
추모의 성격에 걸맞게 행사는 차분하고 엄숙하게 진행되었다. 주최 쪽에서 참가자는 물론이고 행인 가운데 관심을 보이는 이들에게도 노란 리본을 나누어 주었다. 행인들은 가끔 걸음을 멈추고 행사에 귀 기울이다 고개를 끄덕이며 걸음을 옮기곤 했다. 스무 살도 안 된 재벌 3세에게서 ‘미개하다’고 비난받았지만 국민들은, 이 끔찍한 재난 앞에서 ‘내남’을 구분하지 않는 따뜻한 사람들인 것이다.
교사 한 분이 나와 소회를 밝히면서 아이들의 반응을 전했고, 여성 노동자, 청년 등이 나와서 실종자 가족이 쓴 글을 대신 읽거나 추모의 말씀을 전하며 울먹이기도 했다. 초저녁, 어둠 살이 내리긴 일러 참가자 4, 50여 명이 밝혀 놓은 촛불이 어쩐지 쓸쓸해 보였다.
무대로 쓰는 천막 왼쪽에 걸린 조기(弔旗)가 눈에 띄었다. 검정 바탕에 이제 어느샌가 전 국민의 마음을 모으는 상징이 되어 버린 노란 리본, 그 아래 쓰인 문구가 예사롭지 않았다. 그건 노란 리본에 담긴 사람들의 기대만큼이나 강렬한 분노와 슬픔이다.
대한민국호의 침몰을 고합니다
많은 이들을 잃었습니다.
깊은 애도와 함께 우리 사회의 현재를 묻습니다.
울고만 있진 않겠습니다.
새로운 미래를 꿈꾸며
세월호 참사로 죽어간 많은 이들의 명복을 빕니다.
지난 16일 처음, 내가 확인한 사고 소식은 수학여행단을 싣고 가던 배가 침몰했는데 학생과 승객은 전원 구조되었다는 것이었다. 그게 오보일 거라곤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어서 나는 수업 중에 아이들에게 그걸 짤막하게 일러주며 그렇게 더붙였다.
“……하여간에 전원 구조되었다니까 정말 다행이야. 그 애들에겐 아마 평생 잊을 수 없는 수학여행이 될 거야, 그지?”
지리멸렬…, 사고 수습과정에서 증폭된 분노
한나절을 지나지 않아 내가 들은 뉴스가 오보였다는 걸 알았다. 정정된 소식은 승객의 절반도 미처 구조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는데 그것도 숫자가 여러 번 섞갈렸다.
나는 망연자실, 말을 잃었다. ‘잊을 수 없는 수학여행’이 아니라, 배와 함께 가라앉은 아이들에게 그것은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는 여행'이 되어버린 것이다. 나는 오보에 앞서 방정을 떤 자신을 나무랐다.
아이들이 맞이할 수밖에 없었던 고통과 죽음의 시간을 조금씩 그려보면서 나는 무겁고 답답해졌다. 배는 천천히 시간을 두고 침몰했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와 구조의 손길이 올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희망 사이에서 아이들이 겪어야 했던 절망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아프고 끔찍한 일이었다.
열여덟 살, 풋풋한 사춘기의 소년 소녀들이 낯선 고장에 대한 기대와 설렘으로 떠난 수학여행 길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정작 목적지에 닿지도 못했다. 심해에 가라앉은 여객선에서 돌아올 수 없는 아이들이 열 개 학급 가운데 8개 반이라니. 단 한 명도 목숨을 잃어서는 안 되는 우리 아이들이 아닌가…….
침몰 전에 구조한 174명에서 단 한 명도 더하지 못한 채 열흘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늑장에다 우왕좌왕한 실종자 구조 등 사고 수습과정에서 보여준 당국의 모습은 가히 절망적이었던 모양이다. 그런 상황에서 실종자 가족들의 분노와 통한에 사람들은 공감하고 공명했다.
공감하지 못하는 이들이란 소수다. 이 끔찍한 재난을 행정 절차의 일부로나 이해하는 안전행정부와 해양수산부 등 당국과 고위 관료, 사고 상황에다 ‘종북’을 끌어대는 정치인, 재난 보도에서 최소한의 취재 윤리마저도 포기해 버린 언론, 자기 책임을 회피하고 부인하는 것으로 일관하는, ‘국가 재난’을 책임져야 할 이들이 바로 그들이다.
문제는 희생자 가족의 아픔과 슬픔, 그리고 분노를 공감하지 못하는 이 사람들이 이 사고의 수습을 책임지고 있다는 점이다. 사고 이후 수습과정에서 정부 당국에 대한 가족들의 불신이 나날이 팽배해 가는 것은 그런 점에서 피할 수 없었던 일일지도 모른다. 당국에 대한 불신은 나라에 대한 불신으로 옮겨졌다.
“언니, 그리고 오빠. 두 번 다시 이런 나라에 태어나지 마세요.”
“그만 버티고 가거라. 살아 있어도 구해줄 것 같지 않아. 그만 가서 쉬어. 깜깜한 데서 춥고 배고프잖아. 엄마가 곧 따라가서 안아줄게.”
선배를 보내는 단원고 후배 학생들의 고별사와 어두운 밤바다를 향한, 한 실종 학생 어머니의 독백 앞에서 우리는 몸 둘 바를 잊는다. 걸핏하면 ‘어느 나라 국민이냐’는 저주의 언사를 서슴지 않던 사람들은 정작 자신이 져야 할 책임 앞에선 꼬리를 내리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세월호 침몰 사고는 자기 조국을 자랑스럽게 여기던 평범한 시민들마저 돌려놓았다. 사람들은 그래도 자신과 가족을 지켜 줄 것이라는 나라에 대한 믿음을 송두리째 내려놓아야 했다. 세월호의 선장과 선원들이 가장 먼저 배를 버렸듯, 어느 누리꾼은 관련 공무원들을 문책하겠다며 “침몰하는 시스템에서 대통령은 가장 먼저 ‘탈출’했다.”고 꼬집기도 했다.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의 TV 광고는 공교롭게도 이 나라를 ‘폭풍우 속의 배’로, 자신을 그 위기에서 나라를 구할 선장으로 비유하고 있다. 그것이 <국민 TV>의 ‘뉴스 K’의 말마따나 ‘등골이 오싹’하는 묘한 기시감으로 다가오는 이유가 거기 있다.
“앞으로 5년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좌우합니다.”
가라앉고 있는 나라도, 믿음도 희망도 건져야 한다
광고는 “‘파도를 피해 가는 경험 없는 선장’과 달리 ‘경험 많은 선장’은 그것만이 파도를 이기는 방법임을 알기에 파도 속으로 들어간다.”고 힘주어 말한다. 그러나 지금 어디에도 ‘위기에 강한 대통령’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앞으로 5년’은 여전히 지난 시간보다 훨씬 많이 남아 있다. 이 지리멸렬한 상황에서 출구가 보이지 않는 이유다.
행사는 한 시간 만에 끝났다. 사람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촛불을 끄고 하나둘씩 인파 속으로 사라져갔다. 귀가하는 버스에서 세월호 침몰 관련 뉴스를 읽으며 나는 이 쳇바퀴 돌듯 이어지는 무능과 불신의 악순환 속에서 먼저 다독여야 할 것은 무엇일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여전히 백 명도 넘는 사람들이 실종 상태인데 다시 불거지고 있는 것은 해경과 민간 인양업체의 유착 의혹이다. “정부가 일부러 구조를 지연시키는 게 아닌가.”하는 의심이 가족들의 마음을 찢어놓는다. 범대본과 관련 공무원들의 말 바꾸기는 계속되고, 언론에 대한 실종자 가족들의 불신은 하늘에 닿을 지경이다.
대한민국의 침몰을 고한다는 조기 속 문구가 다시 떠오른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현재’를 엄숙하게 묻고 있다.
지금 구조해야 할 대상은 세월호의 승객뿐만이 아니다. 지금 구해야 할 것은 책임과 권한의 혼돈 속에 가라앉고 있는 대한민국과 그 시스템이고, 지리멸렬한 조국에 대한 국민의 믿음이며 새로운 미래에 대한 희망이기도 한 것이다.
2014. 4. 26.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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