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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풍진 세상에 /다시 읽기

2014년 4월(3) 세월호, 돌아오지 않는 교사들을 생각한다

by 낮달2018 2019. 4.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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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아이들과 함께하여 돌아오지 않는 교사들

▲ ‘세월호 참사 희생자 추모 및 참교육 사수 전국교사대회’에서 교사들이 추모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가끔 한 학교를 생각해 본다. 경기도 안산의 단원고다. 나는 그 도시에 가 본 적도 없으며, 거기 사는 어떤 사람도 알지 못한다. 당연히 단원고도, 거기 다니는 학생과 교사들에 대해서도 알지 못한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 나는 단원고의 아이들은 물론, 그 아이들과 함께 수학 여행길에 나섰던 열몇 분의 교사들을 아주 오랫동안 알아 온 사이처럼 느끼게 되었다.

 

단원고, 안산의 그 학교를 생각한다

 

그들을 만나게 된 것은 한 달도 전에 일어난 여객선 침몰 사고 때였다. 나는 뒤에 오보임이 판명된 보도를 통해 제주도로 가던 배가 가라앉았지만, 학생들은 전원 구출되었다는 뉴스를 들었다. 나는 단원고 아이들과 같은, 열여덟 살짜리 고2 아이들 수업에서 그 소식을 전하며 우정 그렇게 말했다.

 

……하여간에 전원 구조되었다니까 정말 다행이야. 그 애들에겐 아마 평생 잊을 수 없는 수학여행이 될 거야, 그지?”

 

배만 가라앉고 아무도 희생되지 않은 사고였다면 충격적인 체험이었겠지만 아이들에게 그것은 잊을 수 없는 수학여행이 되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배 안에 남아 있던 아이들과 교사들은 아무도 살아서 돌아오지 못했다. 최초로 구조된 174명 외에 한 명도 구조하지 못한 채 피를 말리는 한 달이 흘렀다. 그러는 사이에 실종은 하나둘씩 사망으로 확인되면서 절망은 깊어졌다.

 

사고의 전모가 마치 양파 껍질 벗겨지듯 나날이 하나씩 밝혀질 때마다 확인된 것은 우리 사회가 모래 위 다락집처럼 위태롭게 서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것은 엄청난 희생을 초래한 이 대형 사고가 우연이 아니라는 사실과 함께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 우리 사회가 기실은 곳곳에 구멍이 뚫려 있는 허구적 얼개라는 걸 고통스럽게 깨우쳐 주었기 때문이다.

 

이 참사를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살인이고 학살이라고 부르는 것은 구명이 가능했던 사고인데도 한 명도 구조하지 못한 부실로 끝난 데 대한 분노의 다른 표현이었다. 사고가 일어나고 그것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무책임과 혼선, 그에 따른 구조 실패 등은 우리 사회가 용인해 왔던 총체적 부실의 움직일 수 없는 증거이기도 했다.

 

분노와 슬픔이 가라앉으면서 슬퍼하거나 분노하는 대신 행동하겠다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은 한갓진 슬픔과 분노로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할 것이라는 깨달음 때문이다. 여전히 열여섯 명의 실종자가 가족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데도 대통령이 뒤늦게 밝힌 수습방안은 희생자 유족들은 물론이거니와 일반 국민조차 이해시키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사람들은 가끔 대형 사고 앞에서 자신을 희생자로 상상하면서 전율하기도 한다. 세월호 참사가 수학 여행길에서 일어난 사고였다는 점에서 주변 동료들이 느끼는 충격의 강도는 남달랐던 것 같다. 우리는 그게 운수 나쁜 사람들운수 나쁘게 당한 사고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문제일 수 있다는 걸 단박에 깨달았다.

 

아이들과 함께 운명을 같이했던 교사들이 열 명이 넘는다는 사실 앞에서 교사들은 자신들에게 묻기 시작했다. “만약 우리가 세월호에 있었다면 우리는 어떻게 행동했을까?” 동료들과 나눈 대화에서 우리는 세월호에 탄 교사가 누구였든 결과는 다르지 않았으리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우린 어땠을까. 방송을 통한 통제에 따랐을까. 아니면 못 미더워 선실 밖으로 나와서 상황을 살펴보았을까.”

난 아무래도 거기 선생님들처럼 아이들을 통제하면서 얌전히 선실을 지켰을 거야.”

전 어쩌면 상황이 어떻게 되었나 싶어 선실 안팎을 드나들었을 거 같습니다.”

설사 그랬다 한들 선박 침몰 사고 앞에서 우리 교사들이 상황에 맞는 판단을 할 수 있었을까?”

아무리 그래도 배가 기울어져 가라앉는 상황이라면 탈출하는 게 낫다고 여길 수 있지 않을까요?”

글쎄, 말이야…….”

그러고 보면, 이미 우리 가운데서도 생사가 갈리는구먼.”

…….”

 

갑갑해 통제를 따를 수만은 없었을 것 같다는 축은 젊은 친구들이고, 얌전히 통제에 따랐을 거라고 말한 이들은 나이 든 축이거나 여교사들이었다. 글쎄, 아이들에게 교과를 가르치고, 생활지도를 하는 거 말고 교사들이 침몰하는 선박에서의 대응요령 따위를 알 리는 없었을 것이었다.

 

나라면 과연 어떻게 행동했을까?"

 

11명의 교사가 아이들과 운명을 같이했다. 구조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다 그들은 아이들과 함께 물이 차오르는 선실에서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죽음을 지켜봐야 했을 것이다. 그 마지막 순간에 그들은 무엇을 생각하고 그들이 제각각 교사로서의 자신의 의무와 역할을 다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같은 교사로서 이 참사의 현장에 자신을 세워 보면서 교사들은 실존적 고민에 빠졌을지도 모르겠다. 과연 나는 위기의 순간에 아이들 앞에 어떤 태도를 보였을까. 두려움에 사로잡혀 평정심을 잃지는 않았을까.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 앞에서 넋을 놓아 버리지는 않았을까.

 

아이들의 스승이기에 앞서 교사도 연약한 인간에 불과하지 않은가. 죽을지도 모르는 위기와 공포의 순간에 애써 침착함을 잃지 않고 아이들을 보살피려는 초인적 태도를 견지하는 것은 가능한 일인가, 아닌가. 자신을 그런 한갓진 상상에 세워 보면서 우리는 우리가 스승교사사이의 경계에 어정쩡하게 서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 교사대회를 마치고 서울광장으로 이동한 교사들이 세월호 희생자 합동분향소에서 분향하고 있다.

지난 주말 서대문 독립공원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희생자 추모 및 참교육 사수 전국교사대회에서 경기도 안산지회장의 추모사를 들으며 우리는 눈시울을 적셨다. 띄엄띄엄 전해진 뉴스를 통해 부분적으로 확인한 것이긴 했지만 그것은 단원고의 교사들이 위기의 순간에 아무도 스승으로서의 모습을 잃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세월호 사고로 단원고등학교에서 전교조(조합원)인 이해봉 선생님뿐 아니라 12명의 교사가 희생 또는 실종됐습니다. 살아남은 학생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 선생님들은 자신이 구명조끼를 입는 시간조차 아까워했고 학생들을 버리려 했던 비겁한 교사는 한 명도 없었다고 합니다.”

 

    (김명하 안산고등학교 교사) [기사 보기]

 

이해봉(33·역사남윤철(36·영어김응현(44·화학박육근(52·미술)

이지혜(31·국어))·김초원(26·화학최혜정(25·영어강민규(52·도덕)

전수영(25·국어)

 

고창석(43·체육유니나(28·일본어양승진(57·일반사회·인성생활부장)

그가 전한 희생, 실종 교사들의 모습은 일간지 보도가 전하는 그것과 다르지 않다. 20대에서 50대까지 청장년을 불문하고 이 교사들은 자신을 돌보지 않고 아이들의 구조에 힘썼다. 자기 몫의 구명조끼를 아이들에게 입혔고 배를 빠져나오는 대신 아이들이 있는 배 안쪽으로 내려갔다.

 

“걱정하지 마. 너희부터 나가고 선생님 나갈게.”

아이들에게 구명조끼를 입혀야 한다.”

 

아이들에게 남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메시지와 모친과 통화 끝에 서둘러 전화를 끊은 교사의 마지막 말은 긴 여운으로 세상에 남았다. 생사를 다투는 그 위기의 순간에 그들은 아이들을 염려한 것이다. 그들은 각각 20대 중반의 젊은 여교사들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사람들은 말을 잃었다.

 

그들은 스승의 자리를 지켜냈다

 

어쩌다 보니 교사들이 동네북이 되는 시대다. 더러는 체벌과 촌지 때문에 비난받기도 하지만, ‘철밥통이라고 손가락질당하고, 교원노조 가입 교사라는 이유로 학부모로부터, 언론과 정치인으로부터 두들겨 맞는 일이 드물지 않다. 부당한 교육 정책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쫓겨나기도 한다.

 

아이들의 시선도 곱지 않다. ‘스승대신 교사만 있고 제자대신 학생밖에 없다는 이야기는 우리 시대 학교와 사제관계의 한 단면일지 모른다. 인간적, 정서적 교감 대신 형식적, 사무적 관계로 떨어진 사제 사이는 더러는 교실 붕괴의 한 조짐으로 불리기도 하니 말이다.

 

그러나 세월호에서, 아이들과 함께 가라앉은 이 스승들은 아이들 앞에서, 개인적 안위를 떠나 스승의 자리를 굳건히 지켜주었다. 삶과 죽음을 다투는 그 숨 가쁜 시간에 이 스승들은 아이들에게 자신의 구명조끼를 벗어주고 올 수도 있었던 기회를 포기한 것이다.

 

그 희생은 거룩하고 아름답지만 한갓진 찬사로 그것을 미화할 수만은 없다. 분노와 슬픔을 넘어서 행동으로, 그 희생에 값하는 세상의 변화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사람들의 절규가 말하고자 하는 바도 같다. 학생과 시민들이 거리에 나와 촛불을 켜고, 침묵의 행진을 벌이고 교사와 공무원들이 정권의 책임을 묻는 선언에 동참하는 이유도 다르지 않은 것이다.

▲ 안산의 중고생들이 안산문화광장에서 단원고 학생을 추모하는 촛불집회를 열고 있다. ⓒ 민중의 소리

 

5·17 전국교사대회에서 채택한 교사선언은 그렇게 말한다.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겠다, 진상이 규명되고 책임자가 처벌될 때까지 싸우고 또 싸우겠다고’, ‘그것만이 학생 앞에 떳떳이 설 수 있는 길이라고. 그렇다.

 

그것만이 학교와 어른들이 경거망동하지 말라고 해서 기다렸다. 그러나 살아온 친구는 한 명도 없다.”고 울먹였던 안산지역 학생들의 분노와 슬픔 앞에 갈음하는 길이다. 무엇보다도 마지막 순간까지 천진하게 엄마, 아빠 사랑해요.”를 되뇌었지만 끝내는 살아서 돌아오지 못한 단원고등학교 아이들 앞에 떳떳이 서는 길이다.

 

 

2014. 5. 21.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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