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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행복한 책 읽기

‘(책) 읽기’의 괴로움

by 낮달2018 2025. 8. 24.

책은커녕, 종이신문조차 제대로 읽지 못하고 미루기만 하는 시간 앞에서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 내가 미루어둔 한겨레 신문의 주말판인 '.txt'. 타블로이드에 24면에 불과한 이 별지를 다 못 읽고 미루는 일이 잦다.

‘활자에 대한 갈증’도 ‘옛말’

읽기가 괴로워지게 된 것은 근년이다. 틈만 나면 나는 습관적으로 무엇이든 읽을거리를 찾는 편이었다. 논산 육군훈련소에서 신병 훈련을 받을 때 가장 견딜 수 없었던 게 ‘활자에 대한 갈증’이었다. ‘초전 박살’, ‘일기당천(一騎當千)’ 따위의 전투적인 구호로 뒤덮인 살벌한 병영에서 드문 것은 개인적 자유만이 아니라, 활자로 이루어진 ‘읽을거리’였다.

 

훈련병에게 주어진 인쇄물은 고작, ‘군인의 길’과 ‘야간 경계 요령’ 따위가 깨알같이 박힌 군인수첩 정도였고, 훈련장과 병영 곳곳을 채운 것은 ‘야간 전투 수칙’이나 ‘안 되면 되게 하라!’는 구호가 쓰인 거대한 입간판이었다. 그 질식할 것 같은 병영과 훈련 교장에서 나를 구원해 준 것은 교장을 굴러다니는 빛바랜 상품 포장지였다.

 

연무대의 각개전투 교장에서 진흙땅을 기다가, 꿀처럼 달디단 10분간의 휴식 시간에 나는 발밑에서 주워 든 라면이나 과자 봉지를 무슨 주문처럼 천천히 읽곤 하였다. “조리법. 물 500㏄를 붓고 약 5분 정도 끊인다. 라면과 수프를 넣고 약 3~4분 더 끊인다. 이때 파, 김치와 계란을 곁들이면 더욱 맛이 좋다…….”

     - 문학 교사의 책 읽기 중에서

 

막 사회에 진출했을 때는 작정만 하면, 꽤 난삽한 인문 사회과학 도서도 단숨에 읽어낼 수 있었다. 50여 년간 수천 권의 책을 사서 읽었고 그걸 비좁은 서가에 쟁여온 이력도 책 읽기를 즐겼기 때문이었다. 특히 한동안, 신문은 광고까지 포함해 이 잡듯이 섭렵했고, 그걸 스크랩하기도 했었다.

 

<동아일보>를 보다가 이른바 ‘새 신문’ 창간 운동을 거쳐 <한겨레>가 창간(1988.5.15.)될 때 소액 주주로 참여한 이후 나는 지금까지 <한겨레>를 구독하고 있다. 사는 곳에 한겨레 지국이 없어서 이웃 시군에서 우편으로 보내, 하루 늦게 배달되는 ‘구문(舊聞)’을 받으면서까지 고집스레 <한겨레>를 읽었다. 2020년 5월, <한겨레>가 지령 1만 호를 냈을 때 제 일처럼 함께 기뻐한 것은 그래서였다. [관련 글 : <한겨레> 지령 1만호그는 우리의 위로와 자부였다]

▲한겨레신문 창간 시에 소액의 창간 주주로 참여하여 받은 한겨레신문 주주 메달.

스마트폰의 출현과 종이신문의 쇠락

쉴 때도 신문이나 잡지 등 무언가 읽을 수 있는 인쇄물을 뒤적이는 습관은 지금도 다르지는 않다. 그러나 세월이 적잖이 흘렀고, 매체 환경에도 급격한 변화가 있었다. 무엇보다도 스마트폰의 출현은 기존의 매체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었다. 손바닥 안에 들어오는 스마트폰으로 온갖 뉴스를 제한 없이 읽을 수 있게 되면서 종이신문은 적잖은 독자를 잃을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 대판 판형의 신문을 접어가면서 읽었던 독자들은 손바닥 안에 들어오는 액정 화면으로 신문과 방송의 뉴스를 읽게 되었고, 나도 이 흐름을 비켜 갈 수 없었다. 다행히 노화에 따른 노안 대신 여전히 내 눈은 근시여서 안경 없이 화면에서 뉴스를 읽는 데 아무 지장이 없었다. <인터넷 한겨레>도 마찬가지였으니, 나는 종이 신문은 모셔 놓고, 기사는 틈나는 대로 스마트폰으로 대신 읽기 시작했었다.

 

첫 장도 넘기지 않은 신문이 얌전히 베란다에 차곡차곡 쌓이자, 아내는 칼을 빼어 들었다. 신문, 안 읽지요? 인제 그만 끊으시우. 수십 년간 볼 만큼 봤잖우? 물론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건 내가 <한겨레>의 창간 주주여서만은 아니었다. 구독을 중지하면 신문의 월정 구독료 2만 원이 절약되겠지만, 그것은 유일하게 세상 읽기의 창 노릇을 해 준 매체와의 모든 관계를 종료한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인터넷 한겨레>로 보는 기사의 분량은 어차피 한정적이었다. 눈에 띄는 기사는 읽고 나머지 기사는 시간이 지나면 묻히고 마는 과정을 되풀이하기 마련이었다. 이래선 안 되겠다, 가능하면 종이신문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한 나는 매일 가능하면 종이신문을 뒤적거리는 버릇부터 들이려 애썼는데 그게 2014년의 이야기다. [관련 글 : 그래도 종이신문을 포기할 수 없는 까닭]

 

그러나, 여전히 신문은 쌓이기 마련이었고, 나는 며칠 치의 신문을 수박 겉핥듯 훑어보고 그걸 베란다로 던져버리곤 했다. 대부분의 정치 기사는 이미 읽거나 방송으로 들은 거여서 제목만 읽고 넘어가고, 읽지 못한 칼럼이나 특집, 르포 같은 기사를 찾아서 읽는 거로 종이신문을 읽어치우곤 한다.

 

종이신문을 포기할 수 없다고 고백한 때로부터 10년이 훌쩍 지난 2025년, 상황은 별로 바뀌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스마트폰으로 뉴스나 영상을 소비하는 한편, 매일 말미를 내어서 그날 치 종이신문을 속성으로 읽어치운다. ‘읽어치운다’라는 표현은 내 ‘신문 읽기’의 성격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종이신문을 포기할 수 없다면서도 읽지 못하고 쌓이는 신문

그러나, 여전히 읽지 못한 신문이 이틀이나 사흘 치 이상 쌓이고, 그걸 해치우기 위해서 나는 하루치 신문을 10여 분 정도에 읽어내는 묘기를 연출해야 한다. 이는 오늘내일이나, 한두 해 이야기가 아니고 십 년 넘게 이어져 온 상황이다. 그나마 요즘엔 밀리는 게 며칠 치가 아니라, 금요일에 본지와 함께 배달되는 주말판 ‘.txt’다.

 

‘세상의 모든 텍스트’란 부제에서 알 수 있듯 ‘.txt’는 ‘독자들에게 다양한 읽을거리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삼은 타블로이드판 섹션(Section : 같은 주제의 콘텐츠를 그룹화하기 위해 구획을 나누는 영역)이다. 주로 책·출판, 문학, 일하는 사람의 초상 등의 기사가 실리는데, 이 섹션은 기성세대는 물론, 젊은이들의 감각에도 맞추고 있는 듯 보인다.

▲ 한겨레 주말판 '.txt'는 늘 읽기에 대한 갈증이 있었던 젊은 시절이라면 혹해서 금방 읽을 치울 만한 주제로 빵빵한 읽을거리다.

본지는 그럭저럭 당일에 읽어냈지만, 문제는 이 주말판이었다. 타블로이드판 24면에 불과한 이 주말판이 주마다 밀린 결과 무려 4주간의 주말판이 밀리는 일까지 일어났다. 사진은 그중 3주의 주말판이다. 지난주(8월15·16일) 주말판은 이 사진을 찍고 난 다음에 찾았고, 그러고 보니 이번 주(8월 22·23일) 주말판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오늘 잠깐 짬을 내어 가장 앞의 주(7월 11·12일) 주말판을 읽었다. 커버스토리 <‘자본론 굽던 시골 빵집’ 문 닫은 이유>는 읽다 그만두었고, 문학 기사 <황정은, 등단 20돌에 내노ᇹ은 의외의 ‘시대 장르물’>은 통과했다. 소설가 황정은은 상당한 역량의 중견 작가지만, 나는 그의 작품을 한 편도 읽지 않았고, 새로 읽어볼 의사도 없기 때문이다.

 

서평 <음악의 역사>(로버트 필립) 2010년대 대규모 저항운동을 취재한 <광장의 역설>(빈센트 베빈스), ‘기후 비용’을 다룬 <1도의 가격>(박지성) 등도 통과. ‘연애시’를 다룬 <작정하고 연애시>도 잠깐 흥미가 일었지만, 다시 패스. 라디오 피디 이야기인 ‘일하는 사람의 초상’도 통과해 버렸다.

 

단면의 기사 ‘장혜영의 읽고사니즘’ 꼭지의 <하늘에서 깨달은 ‘내가 정치하는 이유’>는 읽었다. 장혜영은 21대 국회의원(당시 정의당)이었던 ‘영화감독, 싱어송라이터, 작가, 유튜버, 여성인권운동가, 페미니스트, 정치인’(<위키백과> 소개 글)이다. 나는 그가 국회에 입성한 1920년에 <오마이뉴스> 기사를 통해 그를 응원한 적이 있다.[관련 글 : 류호정·장혜영 의원에게 보내는 꼰대의 당부]

 

아시다시피 21대 국회 끝 무렵에 당시 20대였던 류호정 의원은 정의당을 탈당하여 개혁신당으로 갈아탄 전력이 있는지라 나는 위 기사의 밑에다가 사후봉사(A/S)를 해야 했다. 거기서 완곡하게 그에 대한 실망감과 회의를 표명하면서 장혜영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썼었다.

 

장혜영은 그와 같이 거론하기에는 아까운 사람이다. 그는 정말 단단한 사람같이 보인다. 요즘 그는 한겨레에 주말 섹션 ‘.txt’ 책과 생각에 ‘장혜영의 읽고사니즘’ 을 연재하고 있다. 

 

그래 놓고도 나는 주말판에 연재되는 그의 글을 통 읽지 않았다. 처음으로 그의 글을 읽었는데, 글은 나쁘지 않았다. 그가 정치하는 이유를 내가 다시 확인할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의 삐딱한 태도가 어쩐지 ‘위악’처럼 느껴져서 멀리했던 ‘김도훈의 삐딱’ 꼭지에 실린 <뉴욕의 진보 스타 맘다니가 금수저라니>도 읽었다. 단면 기사지만, 문화·학술계 명사 부모를 둔 좌파 정치인을 바라보는 그의 스탠스에 나는 동의하면서, 역시 쓸데없는 선입견이 문제라는 걸 거듭 확인했다.

 

그다음에 읽은 기사가 ‘요조의 요즘 무사한가요?’ 꼭지의 <“어떻게 이런 일이 다?”…멈춰 선 당신에게>다. 독자가 사연을 고백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묻고 이에 조언하는 형식의 문답 꼭지다. ‘요조’는 ‘뮤지션·작가’라는 여성인데, 눈이 침침하여 나는 ‘뮤지션’을 ‘유지선’으로 읽고 아, ‘요조’라는 사람의 본명이 유지선이구나 하다가 실소했다.

 

요조를 나는 전혀 모른다. 뮤지션(음악가와 어떻게 다른가?)이자 작가라는 그의 작품을 들은 적도 읽은 적도 없으니, 그의 이력을 알지 못한다. 사연자의 꽤 심각한 고백에 대한 요조의 답에 대한 내 평가는 ‘글쎄다’다. 꽤 그럴듯하게 그는 사연자에 감정적으로 동조하면서 한 권의 책을 추천하고 있었지만, 그 책도 읽은 바 없어서 그의 조언이 얼마나 객관적으로 합당한지에 대해 판단하기도 어려웠다. 

‘집중력의 쇠퇴’와 ‘바닥난 인내력’ 때문일까

24면인 주말판에서 나는 고작 단면의 기사 세 편을 읽는 데 그쳤다. 읽지 않고 통과한 기사가 ‘별로’였거나, 재미없는 기사였거나 해서가 아니다. 나는 가능하면 빨리 이 토요판을 읽어치우고자 했을 뿐이다. 눈이 침침해질 때가 적지 않다는 기능적인 문제를 제외하면, 내가 글들을 패스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 글을 집중해서 읽어내는 게 힘들어서다. 긴 글을 싫증내지 않고 읽어낼 수 있는 인내력이 바닥난 것도 주요한 이유다.

 

2021년에 나는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는 문학평론가 임헌영 선생의 대화록 <문학의 길, 역사의 광장> 서평을 쓰고자 732쪽의 양장본을 정독해야 했다. 4일이나 걸려 책은 읽었지만, 나는 너무 힘들어서 몇 번이나 포기하고 싶은 욕망에 시달렸다. 문학과 역사를 아우르는 선생의 묵직한 관점이 실린 글은 간단히 이해할 수 있는 글이 아니었고, 나는 일일이 주요한 문단에 줄을 치면서 책을 읽었다. [관련 글 : 진보의 희망으로 살아온 문학의 길, 역사의 광장]

▲ 주말판 가운데, 2부는 읽어냈지만, 찾아보니 여기에 다시 2부가 더해진다. 그걸 이 주말 안에 다 읽어치울 수 있을까.

그 이후, 나는 더는 서평 따위를 쓰지 않는다. 한때는 ‘즐거운 노동’이었던 책 읽기가 ‘고통스러운 노동’이 된 이 노화의 일부를 나는 기꺼이 받아들인 것이다. 물론, 아무도 내게 책 읽기를 요구하지 않는다. 책 읽기는 오직 자발적 선택일 뿐이다. 내가 신문을 읽고, 주말판을 읽으면서 적지 않은 기사를 통과하고 몇 편의 기사를 읽는 것으로 읽기를 끝내는 이유다.

 

주말판 1부를 읽어치웠으니 아직 4부가 남았다. 8월22일(금) 자 본지도 아직 읽지 못했다. 시한은 내일(24일)까지다. 25일 월요일 자 신문이 오기 전까지 미루어둔 신문과 주말판을 모두 다 읽어치울 수 있을지는 장담하지 못한다. 좀 가볍게, 반드시 읽어야 한다는 강박 따위에 빠지지 않는다면 불가능할 일도 없다. 읽기는 어쨌든 자신의 자주적 선택일 뿐이니 말이다. 나는 우울하게 쌓아둔 주말판을 뒤적거리고 있다. 

 

 

2025. 8. 23.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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