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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풀꽃과 나무 이야기

유년의 ‘시장기’를 떠올리는 포도 닮은 ‘검은 열매’

by 낮달2018 2025. 8. 16.

[풀꽃가짓과의 한해살이풀 ‘까마중’, 우리는 그 열매를 먹으며 자랐다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 우리 동네 이웃 아파트 근처 물류창고 울타리에 난 까마중. 꽃이 피고 한쪽에는 열매를 맺고 있다.

베이비붐 세대의 유년, 그 시장기

전쟁 후에 태어난 우리는 이른바 ‘제1차 베이비붐 세대’(1955~1963 출생자)다. 비교적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나로서는 상상하기 힘들었지만, 가난한 집안의 올망졸망한 자식들이었던 우리 동무들은 배가 고팠을 것이다. 신작로 동네에 사는 나는 가끔 원래 살았던 안 동네로 놀러 갔다. 학교를 파하고 우리 집 마당에서 내가 밥을 먹을 동안 나를 기다렸던 동무들과 함께 집을 나서곤 했는데, 그때, 동무들은 내 밥상에서 풍기는 음식 냄새에 고픈 배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물론 이런 생각들을 하게 된 건 성년이 되어서였다. 비로소 나와 동무들이 선 자리가 조금씩 달랐고, 그게 성장기의 주림과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동무들에게 그 소년기의 기억을 캐묻지 못했다. 아무리 죽마고우라 하더라도 성장기의 가슴 아픈 이야기를 지나가듯 이야기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본인이 털어놓으면 모르되, 어찌 내 입으로 그 고통스러운 기억을 일깨울 수 있겠는가.

 

끼니를 제대로 잇지 못해서 늘 허기를 습관처럼 달고 살아서였을까. 우리는 집에서는 감꽃을 먹었고, 골담초를 먹었으며, 산에 가면 진달래를 따 먹었다. [관련 글 : 감 이야기(1)- 땡감에서 홍시, 곶감까지 / 골담초, 유년의 시장기를 달래주던 노란 꽃잎] 그뿐인가, 우리는 가을날에는 산을 헤매면서  ‘망개’라고 부른 청미래덩굴 열매를 씹으면서 몰려오는 시장기를 달래곤 했었다.[관련 글 : 유년의 시장기와 청미래덩굴 열매]

 

동무들이 그걸 먹으면서 허기를 달랬는지 어땠는지는 확인한 바 없다. 그러나 나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꽃잎을 입에 넣거나, 딱히 맛이라고 할 거도 없는 열매를 씹어대곤 했었다. 그걸 나는 ‘유년의 시장기’라고 했는데, 마땅히 군것질할 거리도 없던 헐벗은 시기, 그것들은 어쨌든 조그마한 입의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 까마중 (black nightshade)은 '까마종이', 한자로는 용규(龍葵)라는 이름의 가짓과 한해살이풀이다. ⓒ 위키백과 사진

우리가 ‘개물’이라고 부른 까마중

한여름쯤이면 우리는 또다른 풀의 열매에 눈독을 들이곤 했다. 나지막한 키의 풀꽃에 달린 마치 포도송이 같은 검고 둥근 열매, 그걸 우리는 ‘개물’이라고 불렀었다. 포도에 비기면 크기가 반의 반에 지나지 않는 이 열매는 적당히 단맛이 있어서 우리는 보는 족족 그걸 따 입안에 넣고 했다.

 

그게 ‘까마중(black nightshade)’ 또는 ‘까마종이’, 한자로는 용규(龍葵)라는 이름의 가짓과 한해살이풀이다. 까마중은 한국과 온대·열대 지역에 걸쳐 널리 분포한다. 높이는 20~90cm, 5~7월에 흰 꽃이 피고, 열매는 장과(漿果)로서 둥글며 검게 완전히 익으면 단맛이 있으나 약간 독성이 있는 솔라닌(Solanine)을 함유한다.

 

* 장과(漿果) : 다육과(多肉果)의 하나로 과육과 액즙이 많고 속에 씨가 들어 있는 과실. 감, 귤, 포도 따위가 있다. 물열매라고도 한다.

▲ 까마중의 꽃(왼쪽) 야생화를 사랑하는 모임 사진, 까마중의 열매는 그라디움 사진
▲ 왼쪽부터 까마중의 꽃. 푸른 열매, 그리고 익은 열매. 익은 열매는 단맛이 있다.

어린잎은 나물로 먹으며, 성숙한 식물은 열매와 더불어 약재로 쓰인다. 한방에서의 용규는 전초(全草 : 잎, 줄기, 꽃, 뿌리 따위를 가진 옹근 풀포기)를 말린 것이며, 줄기잎은 해열·산후복통에, 뿌리는 이뇨제로 사용한다고. 한방과 민간에서는 풀 전체를 학질, 신경통, 간장, 이뇨, 진통, 종기, 탈항, 부종, 대하증, 좌골 신경통 등에 약으로 쓴다.

 

‘개물’로만 알아 온 이 풀이 ‘까마중’이라는 걸 안 건 쉰이 넘어서다. 퇴직한 후에 들로 다니면서 새로 풀꽃들의 이름을 적잖이 익혔다. 생각보다 훨씬 많은 풀꽃이 들과 산을 수놓고 있는데, 그중 내가 아는 이름이라고 해 봐야 정말 보잘것없다는 것을 깨우치면서, 조금은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관련 글 : 반세기도 전의 그 풀, 일흔이 다 돼 다시 만났다]

이가림(1943~2015) 시인의 시 ‘그 여름의 미황사(美黃寺)’의 제2연은 “영문 모르고/여름 한문 외우기 공부에 붙들려온/땅강아지 같은 아이들/돌담 너머 뙤약볕에 익어가는 까마중에만/한눈 팔려/생각 사(思)자에 마음(心)이/하나같이 떨어져 나가고 없었네”라고 노래하고 있다.

 

한여름 미황사에 공부하러 온 아이들이 한문 외우기 공부는 잊고 돌담 너머, 뙤약볕에 익어가는 까마중에만 한눈을 판다는 얘기다. 예전에는 풀꽃 열매에도 마음을 빼앗겼지만, 요즘 아이들은 그런 것 따위는 아예 모르고 살아간다. 설사 지나다 까마중을 발견한다고 한들 아이들이 그 까만 열매에 마음을 뺏긴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 우리 동네 물류창고 철제 울타리 앞에 선 까마중. 꽃이 피고 일부는 열매를 맺었다.

어저께 동네 초등학교로 가는 이웃 아파트 앞 물류창고 울타리 아래서 까마중 몇 그루를 만났다. 풀을 사진 찍으면서 느끼는 것은 뜻밖에 그게 수월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피사체가 너무 가늘고 흐릿하여 초점이 맞아 떨어지는 게 쉽지 않아서다.

 

찍어온 사진 속에 까마중을 여러 차례 들여다보면서 여름이 절정에 와 있음을 깨닫는다. 널 뛰듯 하는 날씨로 적지 않은 고장에서 수해를 입은 이재민들의 시름이 깊어지는데, 우리 지역에는 제대로 된 비가 거의 내리지 않았다. 며칠간 온도가 좀 떨어지는 듯하더니, 다시 불볕더위가 이어지고 있다.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이번 여름은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가를 우울하게 가늠해 본다.

 

 

2025. 8. 16.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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