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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가겨 찻집

“적절하지 않다고 보여집니다”?

by 낮달2018 2024. 5.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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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겨 찻집] ‘이중피동’의 끝판왕? ‘보여지다’는 거의 ‘범람’ 수준

▲ '보다'는 목적어가 필요한 타동사, '보이다'는 피동사지만, '보여지다'는 이중피동으로 잘못된 표현이다.

이중피동(피동 접미사에다 보조 동사 ‘-어지다’를 붙여서 ‘피동’이 ‘이중’으로 쓰이는 것) 이야기를 여러 차례 했다. 일개 블로거의 지적 따위가 언중(言衆)들의 언어를 바꾸어 내긴 어렵다. 그래도 잊을 만하면 이야기를 계속하는 것은 단 한 사람일지라도 그 지적을 받아들이는 이를 기대하는 까닭이다. [관련 글 : 보여지다는 없다, 모두 보이다로 쓰자 / 제발 보여지는야구 중계는 그만!]

 

오늘 아침 라디오 방송에서 어떤 국회의원의 인터뷰를 듣다가 요샛말로 좀 ‘빡치고’ 말았다. 그는 진행자의 질문에 대해 비교적 정확한 문장으로 답을 하다가 “저는 적절하지 않다고 보여집니다.”라고 말했는데, 그것은 물론 비문(非文: 비문법적인 문장)이었다.

 

7. 저는 적절하지 않다고 보여집니다.

 

주어(그것이)가 생략된 이 문장이 올바른 문장이 되려면 당장 ‘보여지다’부터 손대야 한다. 이중피동인 보여지다를 피동인 ‘보이다’로 바꾸어 보자.

 

저는 (그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보입니다.

 

뭔가 좀 어색한 느낌이 드는가. 맞다, 서술어 ‘보입니다’의 주어는 생략된 ‘그것이(은)’니까, 또 다른 주어 ‘저는’은 서술어는 모호하다. 제대로 된 문장이 되려면 앞의 ‘저는’을 빼거나, ‘보입니다’를 서술어인 ‘봅니다’로 바꾸면 된다.

 

7-(1). 그것은 (무엇에) 적절하지 않다고 보입니다.

7-(2). 저는 (그것을) 적절하지 않다고 봅니다.

 

피동 표현에 익숙해진 나머지, 주동 표현을 잊어버린 이들이 많다. 어떤 의견을 진술할 때, 다소 모호한 형식의 ‘보이다’라고 말하기보다는 주체의 의지가 실린 ‘본다’를 쓰는 게 좋다는 얘기다. 대체로 피동 표현을 즐겨 쓰게 된 것은 영어 등 번역 투 문장에 익숙해진 데다가 피동형으로 쓰는 게 객관성을 높이는 거라고 오해하면서다.

▲ '보여지다'라고 써서 안 된다고 해도 오늘날 '이중피동'은 거의 범람 수준이다. 지식인이라고 할 이들이 이를 즐겨 쓰고 있다.

이 글을 쓰기 전에 인터넷에서 ‘보여집니다’로 검색한 결과가 그림 “‘보여집니다’로 쓴 문장 교정”이다. 앞의 4문장(1~4)은 모두 ‘보입니다’로 바꾸면 된다. 물론 4번 문장은 조금 모호하다. 이 문장은 ‘보입니다’나, ‘보이는 듯합니다’로 바꿀 수 있는데, 그것도 어쩐지 어색하다. 보다 뜻을 정확히 하려면 “(……) 정치권 전체로 봤을 때는 굉장히 젊은 나이라고 볼 수 있다.”로 쓰는 게 맞기 때문이다.

 

그러나 뒤의 3문장(5~7)은 성격이 조금 다르다. 모두 ‘보입니다’로 바꿀 수 있긴 한데, 그보다는 ‘봅니다’로 쓰는 게 훨씬 뜻을 명확히 할 수 있다. ‘보입니다’보다 ‘봅니다’가 훨씬 의견을 분명하게 밝히는 형식이기 때문이다. 피동형 ‘보이다’는 객관적 상황이 그런 판단을 가능하게 해 준다는 뜻이 강하지만, ‘보다’는 자신의 주관적인 판단을 드러낸 표현이다.

 

자꾸 들여다보면 이래저래 모호해져서 헛갈릴 수도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보여지다’는 절대 써서 안 되는 표현이라는 점이다. 생각보다 우리 생활에서 훨씬 자주 쓰이는 이중피동을 의식적으로 피하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한 이유다. [관련 글 : 길들여지다길들다, ‘잊혀진도 이제 그만]

 

 

2024. 5. 28.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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