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칠곡 다부동전적기념관에 세워진 백선엽과 이승만·트루먼의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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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경상북도 칠곡군은 이른바 ‘보수 꿈동산’(경향신문)으로 바뀌는 듯하다. 칠곡군 가산면 다부리의 전적기념관에 ‘다부동 전투’의 영웅이라는 백선엽 전 대장의 동상이 세워지더니, 뒤이어 이승만과 미국 대통령 트루먼의 동상까지 세워졌으니 하는 말이다.
다부동은 ‘보수 꿈동산’이 되는가
다부동 전투는 국군 제1사단이 다부동 일대에서 북한군의 공세에 맞서 1950년 8월 1일부터 9월 24일까지 55일 동안 벌인 전투로 낙동강 방어선을 지켜낸 전투다. 개전 1개월을 넘기면서 북한군은 임시수도가 있던 대구로 가는 길목인 왜관과 다부동을 집중 공격하기 시작했다.
왜관 일대는 미 제1기병사단이, 다부동 일대에는 국군 제1사단(사단장 백선엽 준장)이 배치되어 적의 남진을 저지하였다. 북한군은 8월과 9월 두 차례의 공세로 낙동강 방어선을 돌파하려고 하였으나 국군과 유엔군의 연합작전과 미 극동 공군사령부가 단행한 낙동강 강변 융단폭격(8.16.) 등으로 막대한 병력을 잃었다.
이어서 북한군의 허를 찌른 국군과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9.15.)이 단행되었고, 이튿날 오전 9시 낙동강 방어선 전역에서 아군의 총반격이 펼쳐졌다. 후방 차단으로 혼란에 빠진 북한군은 결국 전 부대에 퇴각 명령을 내려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다부동 전승의 주역 국군 제1사단장 백선엽 ‘6.25 영웅’으로
다부동 전투에서 백선엽의 제1사단은 북한군 3개 사단의 집요한 공격에도 328고지~수암산~유학산~741고지의 방어선을 확보하고 다부동~대구 접근로를 방어해 대구 고수에 결정적으로 이바지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해 6·25 참전 장성 박경석 예비역 준장은 “낙동강 전선은 월턴 워커 중장이 한국군 5개 사단과 미군 3개 사단 등 8개 사단을 지휘해 워커 라인으로 불렸다. 백선엽의 제1사단은 8개 사단 가운데 하나였는데 공적이 부풀려졌다”라고 증언한다. [관련 기사 : “백선엽은 조작된 영웅” 참전군인이 말한다]
박 예비역 준장은 2010년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백선엽 명예 원수(5성 장군) 추대를 막아낸 이다. 그는 자신이 평생 모은 자료를 바탕으로 ‘일제 앞잡이였던 백씨가 한국군 최초의 명예 원수가 될 순 없다’라며 앞장서 반대했다. 이에 채명신, 박정인, 이대용 장군 등 참전한 군 원로들도 힘을 보태, 이 시도는 무산됐다.
백선엽의 1사단이 다부동 전투의 주역이란 사실은 사실(fact)이긴 하지만, 다부동의 전승은 미8군의 예비대 투입을 비롯한 나머지 한미의 7개 사단의 역할도 배제할 수 없다. 물론 미 공군의 낙동강 주변 융단폭격도 무시할 수 없다. (아래 국방연구소 자료 참조)
박 예비역 준장은 진짜 한국전쟁의 영웅으로 한강 방어에 성공하여 조국을 위기에서 구한 김홍일 장군[관련 글 : 독립군과 국민혁명군으로 일본과 싸웠던 김홍일 장군 떠나다], 6·25 한국전쟁 초기에 춘천 전선에서 일시적 저지에 성공한 6사단장 김종오 대령(그 후 진급하여 백마고지 전투에서도 공을 세웠다), 그리고 미군 측의 인천상륙작전을 지휘한 맥아더 장군과 낙동강 전선의 영웅 워커 장군을 꼽는다. [관련 자료 : 한국전쟁 4대 영웅 선정의 진실] 이들은 1983년 국방부와 육군본부에서 발간한 ‘6·25전쟁 4대 영웅’이다.
1983년 국방부와 육군본부에서 선정한 ‘6·25전쟁 4대 영웅’에 백선엽은 없다
최후의 방어선인 낙동강 전선을 이른바 ‘워커 라인’으로 사수해 인천상륙작전을 가능하게 만들고 ‘전세를 역전’시킨 이는 미8군 사령관 월턴 해리스 워커(W0alton Harris Walker, 1889~1950) 중장이었다. 낙동강 전선이 위태해지자, 정부도 육군본부도 부산으로 내려갔으나 워커 장군은 미8군 사령부를 대구에 그대로 두면서 “내가 여기서 죽더라도 한국을 끝까지 지키겠다”라고 했다. “사수하느냐 죽느냐(Stand or Die)”뿐이었다.
워커 중장을 이승만 대통령은 ‘낙동강의 영웅’이라고 기렸지만, 워커는 그해 12월 23일 불의의 교통사고로 숨졌다. 뒷날, 워커힐 호텔, 워커 전투화, 대구의 캠프 워커 등이 그를 기리고자 명명되었다. 보병 중대장으로 복무하며 은성무공훈장을 받은 그의 아들 샘 워커 대위도 뒷날 최연소 대장으로 승진하여 부친의 뒤를 이었다.
그런데도 백선엽이 6·25전쟁의 영웅으로 등극한 것은 박 준장은 “백 장군이 예편 뒤 자청해 30여 년 동안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자문위원장으로 있으면서 자신과 채병덕 총참모장 등 일본군 출신 군인들 중심으로 한국 전쟁사를 미화했다”고 주장한다.
2009년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는 1930년대 일제가 편제·운영한 ‘독립군 토벌부대’인 ‘간도특설대’ 장교로 복무한 백선엽을 ‘국가 공인 친일파’로 규정하는 결정을 했다. 그러나 정부가 후속 조처를 하지 않음으로써 백선엽은 논란 끝에 대전현충원에 안장될 수 있었다. [관련 글 : 독립군 토벌부대 출신 군인은 어떻게 창군 주역이 됐나 / 백선엽과 필리프 페탱, ‘구국’과 ‘반역’ 사이]
친일반민족행위자 백선엽, 현충원 안장 이어 동상까지 세워지다
그리고 윤석열 정부 출범 뒤, 극우적 퇴행이 이어지면서 지난 7월 5일, 다부동 전적기념관에 백선엽의 동상이 세워졌다. 현충원 안장에 이어 국가보훈부와 경상북도에서 국민의 세금으로 동상을 세움으로써 친일 부역자를 영웅으로 떠받드는 몰역사적인 상황까지 연출되기에 이른 것이다.
그리고 지난 24일, 국가보훈부는 국립대전현충원 누리집의 백선엽 예비역 대장 안장 기록에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에서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결정(2009년)’이라고 적은 문구를 일방적으로 삭제했다. 이는 “백선엽 장군이 독립군을 토벌했다는 객관적 자료는 없다”라면서, 백 장군이 친일이 아니라는 데에 장관직까지 걸겠다는 박민식 보훈부 장관이 주도했다.
그러나 이는 “한국인이 독립을 위해 싸우고 있던 한국인을 토벌한 것”, “동포에게 총을 겨눈 것은 사실”이라고 언급한 백선엽의 회고록[(白善燁回顧錄)若き将軍の朝鮮戦争 The Korean War(젊은 장군의 조선전쟁)(2000)] 등을 근거로 ‘친일’ 행위자로 규정한 결정과, 3년 전, 누리집에 ‘친일’ 사실을 적시한 국가보훈부의 판단을 스스로 뒤집어 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22일 뒤인 7월 27일에는 다부동 전적기념관에 이승만 전 대통령과 트루먼 전 미국 대통령 동상까지 세우는 반역사적 퇴행을 연출했다. 한국전쟁 최대 격전지에 건립된 유일한 전쟁기념관이 보수정당의 정치적 장소로 활용될 것이란 여론의 우려를 아랑곳하지 않은 것이다.
떠돌던 이승만과 트루먼 동상까지 품은 다부동 전적기념관
2017년에 제작된 뒤 서울 전쟁기념관과 주한미군마저 영내 설치를 거부해 길을 잃었던 이승만·트루먼의 동상은 지난 6월 16일, 7년 만에 호국영령이 잠든 다부동에 기습적으로 설치되었다. 당시 다부동전적기념관을 관리하던 칠곡군은 지역 이장들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벌인 결과 찬반이 팽팽히 나뉘자 동상 설치를 포기했고 경상북도 역시 정치적 갈등을 우려해 동상의 공개를 미루었었다.
그런데 이번에 동상 설치를 결정하면서 이철우 지사가 밝힌 공개의 변은 “왜 이런 어른들이 갈 데가 없는 나라가 되었느냐. 아직도 자유 대한민국이 옳게 안 된 것”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지사가 말하는 ‘이런 어른들’을 바라보는 여론의 눈길은 차갑기만 하다.
이승만과 트루먼 전 대통령은 모두 ‘한국전쟁에 책임이 있는 인물’이라며 호국영령이 잠든 다부동 전적기념관에 올 자격이 없다는 일각의 논의는 허투루 듣고 넘길 수 없다. 트루먼은 1950년 1월 12일, 국무장관 애치슨이 발표한 ‘애치슨 라인’(극동방위선)에서 한국을 제외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남침을 감행한 김일성의 오판을 불렀다.
이승만은 또 어떤가. 1950년 6월 28일 새벽 2시 28분, 국군은 한강대교(인도교)를 폭파하였다. 서울을 빠져나가는 유일한 통로인 이 다리가 끊어지면서 500~800명에 이르는 무고한 인명의 희생에 이어 서울시민 100만 명의 발이 묶였다.
이승만은 그 전날인 6월 27일 밤 10시부터 11시까지 라디오로 3번 반복 방송된 담화를 통하여 서울시민에게 “안심하고 서울을 지키라. 적은 패주하고 있다. 정부는 여러분과 함께 서울에 머물 것이다”라고 알렸다. 그러나 대통령은 방송 전인 27일 새벽 4시에 이미 서울을 떠나 공식적인 ‘피난민 제1호’였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관련 글 : 한강 다리 폭파 - 전날 이미 대통령 이승만은 ‘서울을 탈출했다’]
6·25전쟁과 관련, 기념할 만하다고 하기 어려운 인물 두 사람의 동상을 세워 백선엽과 ‘트리오’를 만든다? 백번 양보하여 백선엽은 다부동 전투를 직접 치른 군인이니 다부동에 세워지는 게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그러나 이승만과 트루먼은 사실상 다부동과 아무 상관 없는 뜬금없는 인물 아닌가. 그들은 단지 그 비극적 역사에 재임하던 한미의 대통령이었을 뿐.
이는 윤석열 정부 들어서 이루어지고 있는 이승만의 소환, 백선엽 등 친일파 기록 삭제 등은 다만 맥락 없는 보수정권이 자행하는 거대한 퇴행의 일부이다. 거기다 경상북도는 다부동 전적기념관 일대에 3년간 450억 원을 투입해 백선엽 기념관, 다부동 전투 스포츠센터, 피란 땅굴, 호국 둘레길 등산로, 백선엽 장군 묘 이전지 조성 등 ‘호국 메모리얼 파크’를 조성한다고 한다.
이승만 기념관 예산 460억에 이어 다부동에다 450억, 모두 1천억 원에 이르는 세금은 쏟아붓겠다는 것이다. <경향신문>이 칠곡을 ‘보수 꿈동산’으로 꾸리려고 하느냐고 힐문하는 이유다. [관련 기사 : ‘칠곡’에서 만난 이승만·트루먼·백선엽…모여라 보수 꿈동산]근년에 인근 구미시에서 박정희 추모 사업으로 날을 새니 시민단체에서 ‘죽은 자의 제사상’보다 ‘산 자들의 삶’을 돌보라고 일갈한 일이 기시감으로 떠오른다. [관련 글 : 구미시, ‘죽은 자의 제사상’보다 ‘산 자들의 삶’을 돌보라]
지난 8월 11일, 텃밭에 다녀오는 길에 모처럼 유학산을 넘었다. 예전의 가파르고 꼬불꼬불한 길 대신에 시원한 왕복 4차로에 터널까지 뚫려 이내 다부동 전적기념관에 닿았다. 여러 차례 드나들었지만, 동상이 세워진 자리가 어디일까 궁금했는데 주차장을 등지고 선 동상 두 기는 이승만과 트루먼인 것 같았다.
세 사람의 동상은 맨 아래 전적기념관 사무실과 언덕 위의 전시관 사이에 쉼터로 쓰이던 곳에 세워져 있었다. 5억 원을 들여 세운, 2단으로 된 원형의 돌 기단 위에 철모를 쓰고 옆구리에 손을 올리고 선 백선엽의 동상은 위압적이었다. 그가 사무실을 등지고 서 있나 했는데, 나중에 확인하니 ‘동서남북 사방으로 대한민국을 지키고 수호한다’는 의미를 담아 360도 회전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한다.
이승만, 트루먼 동상 설치에 사회적, 지역적 합의는 없었다
사무실을 등지고 선 그는 10여 미터 건너편에 전시관을 향해 선 또 다른 동상, 트루먼과 이승만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땅한 설치 장소를 못 찾았던 6년간이나 떠돌던 이승만과 트루먼의 동상은 현재의 자리에 기습 설치되고도 한동안 베일에 싸여 있다가 간신히 공개되었다.
이장들을 대상으로 한 칠곡군의 여론조사에서도 찬반이 팽팽히 나뉠 만큼 이 두 사람의 동상은 지역사회는 물론 어떤 사회적 합의도 이루어지지 않은 채 뜬금없이 다부동에 자리를 잡은 것이었다. 무심히 스쳐 지나가겠지만, 사람들은 이들이 왜 이 자리에 서 있어야 하는지 의아해 할 것이다.
‘어른’들이 설 자리를 못 찾은 처지를 가슴 아파한 이철우 지사는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세 사람을 잇는 공통분모로 ‘호국 메모리얼 파크’라는 사업 아이템을 떠올리고 쾌재를 불렀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 우리가 70여 년 전에 치른 전쟁으로 얽힌 이 3인의 과거를 잇는 ‘호국’이나 ‘세계 평화’, 혹은 ‘메모리얼’ 같은 추상 명사 앞에서 동상 3기가 연출하는 풍경은 마치 우스꽝스러운 광대 놀음 같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러야, 분단의 땅을 나누고 찢는 이 삿된 이념의 미망으로부터 이 땅은 자유롭게 될까. 야외 여기저기 전시된 전쟁 때 쓰인 탱크과 항공기, 대포 등을 흘겨보면서 기념관을 떠나는데 웬일인지 가슴과 목이 답답해져 왔다.
2023. 8. 19.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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