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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풍진 세상에 /행복한 책 읽기

박기정의 만화 <도전자>, 그 서사의 미학

by 낮달2018 2019. 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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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이야기-박기정의 <도전자>

▲ 2006년 복간된 <도전자>
▲ 만화시리즈 우표 박기정의 <도전자>(1998)

만화라면 할 말이 적지 않다. 시골에서 자랐으니 당연히 만화방은 구경도 하지 못했다. 그런데 대구에서 일하던 작은누나가 어느 날 누군가의 가게를 인수했다면서 수천 권의 만화책을 싣고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였던 것 같다.

 

시골 초등학교의 가난한 도서실 책들을 거지반 읽어치운 책벌레였던 나는 그러고 한 몇 달을 만화책에 푹 파묻혀 지냈다. 시골 아이를 만화의 세계로 안내해 준 빛나는 작가들의 이름은 박기정, 김종래, 이근철, 산호, 손의성 등이었다.

 

특히 박기정의 만화 <도전자>와 <레슬러>의 감동을 잊을 수 없는데 나는 박기정의 만화가 기본적으로 소설의 미학을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만화와 멀어지게 된 것은 중학교부터 무협 소설에 빠지게 되면서부터다. 내 상상력은 그림을 제거한 텍스트와 더 가까웠는지 모르겠다. 가끔 만화를 보지 않은 건 아니지만, 나는 자라며 점점 만화와 멀어졌다. 고우영과 강철수의 극화는 드문드문 읽었지만, 이현세나 허영만의 만화는 읽지 않았다.

 

지금도 여전히 도서대여점에서 만화를 빌려다 보는 친구를 보면서 나는 내가 어느 날 그 허구의 세계를 졸업한 것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나는 한겨레에서 매주 목요일 발행하는 <ESC>의 한 면에 실리는 오영진의 만화 ‘사루비아’를 읽지 않는다. 방심하고 읽어서 그런가, 때로 그 뜻이 제대로 짚이지 않는가 하면, 그걸 재미있다고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홍승우의 ‘비빔툰’은 재미있게 읽고 있는데 이 역시 뜻을 새기는데 애로가 있을 때는 딸아이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수준이다. 글을 읽고 가르치는 걸 업으로 사는 사람으로서는 좀 부끄럽다면 부끄러운 일이다. 그런데 젊은 감각을 제대로 새기지 못하는 까닭이 내 마음이 낡은 탓이라면 어쩌겠는가.

 

얼마 전에 젊은 만화가 최규석의 <대한민국 원주민>을 읽고서 나는 새롭게 만화를 바라보아야 한다는 걸 느꼈던 것 같다. 만화는 단지 그림이라는 형식을 빌렸달 뿐이지 기본적 서사는 소설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특히 나는 박기정의 만화에서 만난 서사의 미학에 오래 경도되어 있었다.

 

그 박기정 화백(73)의 만화 <도전자>가 2006년 1월, 40여 년 만에 복간되어 나왔다는 걸 나는 최근에야 알았다. 그 소식을 전한 한겨레의 기사에 따르면 <도전자>는 1964년 8월부터 이듬해 11월까지 15개월 동안 45권으로 나왔단다.

 

내가 시골에서 <도전자>를 읽은 때는 아마 1967년도쯤이라 여겨지니 그때 이미 한 차례 <도전자> 선풍이 지나간 뒤였던 모양이다. <도전자>에 고교생들은 팬클럽까지 만들며 열광했다고 하는데, 나는 좀 뒤늦게 그 작품에 흠뻑 빠져 있었을 뿐이었다.

 

부모를 잃고 일본으로 건너간 훈이는 식당에서 일하며 복싱을 배운다. 학교에서도 쫓겨난 그가 일본 사회의 갖은 핍박과 수모에 정당하게 맞서는 방법은 권투선수가 되어 링 위에서 그들을 무너뜨리는 것. 그야말로 적의와 분노를 먹고 자라는 훈이는, 더 큰 파괴력과 분노로 더 많은 이를 허물수록 자신은 고립되고 더 깊은 허무감에 눌린다. 자신이 극복해야할 대상이 비단 일본이 아닌, 스스로 상처 입힌 제 자신이었던 탓이다.

   - <한겨레> 기사 중에서

 

이야기의 얼개만으로도 이 작품이 가진 서사적 미학의 깊이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 <도전자>를 읽으면서 시골 소년이 느꼈을 감동의 깊이도 만만하지는 않았다. 주로 미국과 일본 만화를 베끼던 때였는데, 제대로 된 서사 구조를 갖춘 박기정의 만화는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고 한다.

▲ 반항아 계보를 잇는 캐릭터 . 독고탁 (이상무), 훈이 , 이강토 (허영만), 오혜성 (이현세).

작가는 ‘당대의 시대정신’을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았고, “서사 만화(극화)는 박기정의 뿌리에서 피어난 나무”(만화평론가 박인하)라는 찬사로 기려진다. 그가 창조해 낸 ‘반항의 캐릭터’ ‘훈이’는 70년대의 ‘독고탁’(이상무), 80~90년대 오혜성(이현세), 이강토(허영만)로 이어지며 발전했다. 80년대 잠깐 내가 이상무의 독고탁에게 빠져 있었던 이유가 이제야 짚어지는가 싶다.

 

박기정은 한국 만화계의 1세대 원로 작가다. 이두호, 이상무도 그의 제자들이라고 한다. 그러면 그렇지! 그가 한국만화 100주년(2009)에 벌어지는 주 전시의 주인공이 된 것이나 2008년 서울 국제만화 애니메이션 페스티벌(SICAF) 코믹 어워드의 수상자라는 사실은 그리 놀랄 일은 아닌 셈이다.

 

박기정은 만화계에서 유일하게 극화와 시사만화 양쪽에서 성공한 만화가로 꼽힌다. 그는 중앙일보에서 오랫동안 시사만평을 담당했다. 내 기억에 아마 80년대까지 그는 시사만평을 그린 듯한데, 그 시기의 그의 만평이 내게는 별로 인상적으로 남아 있지는 않다. 그 시기 <동아일보>의 백인수 만평이 그랬듯이.

▲ 박기준의 작품과 최규석 단편집

알고 보니 만화가 박기준이 그의 동생이다. 형에 못지않게 박기준이 창조한 어린이 만화 캐릭터 ‘두통이’도 오래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박기준은 부천 만화정보센터의 이사로, 경기도 이천의 청강문화산업대학 겸임교수와 만화박물관장으로 재직, 후배를 양성하고 있다고 한다.

 

고희를 넘기고도 박기정 화백의 창작 의욕은 꺾이지 않는 모양이다. 그는 아마추어 야구에서 시작해 국내 프로 야구와 미국의 메이저리그까지 도전하는 젊은이들의 야망을 그린 대하 극화를 준비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 귀추가 주목되지 않을 수 없다.

 

2006년 복간된 <도전자>를 나는 새로 읽지 못했다. 시내의 도서 대여점에 모두 알아봤지만 <도전자>를 비치해 둔 가게는 없었다. 복간본 5권의 할인 가격은 6만원이다. 잠시 갈등하고 있는데, 미리 주문했던 도서가 도착했다. 아쉬운 대로 최규석의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를 꺼내 읽으면서 마음을 다스리기로 한다.

 

 

2008. 12. 7.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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