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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풀꽃 이야기

‘백구자쑥’을 아십니까?

by 낮달2018 2020. 10.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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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절초와 쑥부쟁이의 구별

▲ 도심 유휴지의 강아지풀. 10월 16일, 안동시 태화동

때로 우리가 가진 상식 가운데엔 그 실체와 벗어나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른바 ‘상식의 허실’이다. 뜻밖에 우리의 앎이란 아주 부실할 뿐 아니라, 더러는 허무맹랑하기까지 하다. 특히 자연에 대한 우리 지식의 깊이는 생각보다 훨씬 얕다.

 

들이나 숲으로 나가 보라. 우리가 알고 있는 풀꽃과 나무의 목록이 얼마나 되는가 말이다. 그 빈약한 목록은 ‘이름 모를 꽃’, ‘이름 모를 나무’ 따위와 같은 황당한 문학적 표현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또 여러 개체를 하나의 이름으로 뭉뚱그리는 것도 그런 가난한 앎의 결과라 할 수 있다.

 

들국화와 참나무는 그 좋은 예다. 편하게 쓰긴 하지만 정작 ‘들국화’라는 이름의 꽃은 없다. 그것은 국화과의 야생화를 통칭하는 말일 뿐이라는 것이다. 참나무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상수리나무, 굴참나무, 신갈나무 등을 아우르는 말이고, 이들 나무의 열매를 모두 도토리라고 한다는 것이다.

 

가을철에 들이나 산에 피는 꽃 가운데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게 쑥부쟁이와 구절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걸 굳이 구별하려 하지 않는다. 이런 태도 덕분에 ‘들국화’ 따위의 편리한 ‘통칭’이 생긴 건지도 모른다. 그게 그거 같다가 둘을 구분하기 시작한 때는 인근 산을 오르게 된 십여 년 전부터다. 그러나 ‘안다’는 느낌이 확신에 이르기 전에 내 눈썰미는 파탄을 맞았다. 뒤늦게 알게 된 개미취의 존재가 내 알량한 판단을 헝클어버린 것이다.

 

오래 잊고 있었는데 올가을에 다시 녀석들에 대한 호기심이 다시 생겼다. 정기적으로 산행을 하고 내게 산행기와 함께 거기서 찍은 사진을 보내주는 친구가 있다. 얼마 전 군위 응봉산에 다녀온 이 친구, 이번 산행기에선 구절초 이야기를 해 온 것이다.

 

“백구자쑥(백색은 구절초, 자색은 쑥부쟁이)으로 외워 버렸고 생각과 반대로 잎사귀가 쑥을 닮았으면 구절초이다.”

▲ 도심 유휴지의 쑥부쟁이(위, 바로 위 사진). 2011.10.16. 안동시 태화동.
▲ 산속의 쑥부쟁이 . 2011.10.17.  안동시 영남산.
▲ 구미 북봉산 인근의 쑥부쟁이들(3장). 2020.10.18.
▲ 쑥부쟁이보다 꽃잎이 작은 미국 쑥부쟁이. 북봉산 어귀, 2020.10.18.

‘백구자쑥’!

 

내가 알고 있었던 쑥부쟁이와 구절초 판별법에 그는 빛깔까지 더했다. 이제야 좀 머릿속이 환해지는 것 같았다. 마침 뒷산 어귀에 쑥부쟁이가 피어 있었다.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니 쑥부쟁이는 여기저기 무리 지어 피어 있다. 그런데 구절초는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뒷산 어디쯤 구절초가 있더란 동료의 귀띔을 듣고 찾아갔는데, 두어 포기가 옹색하게 피어 있었다.

 

지난 주말엔 봉정사가 있는 천등산엘 들렀다. 산 중턱에 있는 개목사 쪽으로 갔는데, 잘못 짚었다. 거기는 구절초는커녕 쑥부쟁이조차 잘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망해 하산하는 길에 길섶에서 간신히 꽃잎이 지고 있는 구절초 몇 포기를 찍는 데 성공했다.

 

돌아오다 보니 정작 쑥부쟁이는 집 주변의 밭에 무성했다. 아파트 터로 묵은 땅이긴 하지만 도심에 이런 밭뙈기가 있다는 것은 이 도시가 천생 시골이라는 걸 확인해 준다. 부지런한 주민들이 일구어 갈아 먹는 밭 주변은 온통 쑥부쟁이가 지천이었다. 바지에 도깨비바늘을 잔뜩 붙이고 다니며 쑥부쟁이를 찍어댔다. 고층 아파트를 배경으로 하늘대는 쑥부쟁이는 맑고 깨끗했다.

 

며칠 동안 찍은 사진을 정리하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그런데 막상 블로그에 글을 올리려 하니 스멀스멀 회의가 밀려오기 시작한다. ‘백구자쑥’에 몰두하느라, 개미취를 잊고 있었던 까닭이다. 개미취를 떠올리는 순간, 나는 다시 흔들렸다. 구절초라 여긴 꽃이 과연 구절초인지 헷갈리기 시작한 것이다.

▲ 개목사 가는 길목에서 찍은 구절초. 잎이 성기게 달렸다. 2011.10.16. 천등산 .
▲ 산속에 핀 구절초(위/바로 위). 꽃 모양은 감국을 닮았다 . 2011.10.17. 안동시 영남산 .
▲ 다시 찾은 영남산에서 만난 구절초 ( 맨 위 / 위 / 바로 위 ) 저 위의 것보다 훨씬 구절초답다 .
▲ 구미 북봉산 어귀에서 찍은 구절초들(위 2장). 2020.10.18.

인터넷을 검색해 봐도 답은 쉬 나오지 않는다. 쑥부쟁이와 구절초, 개미취 등은 종류가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웹에 이리저리 떠 있는 이미지와 내가 찍은 사진을 비교해 보지만 알쏭달쏭한 경우가 더 많다. 좋다. 이웃들에게 자문을 구하기로 하고 한갓진 회의는 접기로 한다.

 

쑥부쟁이라 여긴 꽃이 개미취일 수도 있고, 구절초로 여긴 꽃이 다른 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내 짧은 밑천은 그걸 전혀 구별하지 못한다. 눈 밝은 이웃들의 가르침을 기다린다.

 

2011. 10. 19. 낮달


위의 글을 쓴 지 9년이 지났다. 위 글에 이웃의 가르침을 구했지만, 아무도 나서는 이가 없었다. 결국, 이거나 저거나 굳이 구분할 필요가 없다고 여기는 게 사람들의 보편적 정서다. 꼭 그래서는 아니지만, 그동안 나는 이 문제로 머리를 전혀 썩히지 않았다.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오늘 북봉산 어귀에서 찍은 사진 몇 장을 덧붙였다. 

 

2020. 10.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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