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장나다’의 뜻으로 쓰이는 ‘절단나다’, ‘결딴나다’로 써야
“기소당하면 인생이 절단난다”
“윤 대통령 내외부터 쇄신해야…아님 절단난다”
일간지에서 뽑은 기사 제목들이다. 앞엣것은 지난해 11월 <한겨레> 박용현 논설위원의 칼럼 제목, 뒤엣것은 최재성 전 청와대 정무수석의 발언을 다룬 <뉴시스>의 기사 제목이다.
<한겨레> 칼럼은 지난해 11월, 당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대학생들과 대화하며 한 말 가운데 일부다. 그는 “여러분이 만약 기소를 당해 법정에서 상당히 법률적으로 숙련된 검사를 만나서 몇 년 동안 재판을 받고 결국 대법원에 가서 무죄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여러분의 인생이 절단난다.”라고 말했다.
<뉴시스> 기사는 지난 8월 1일 윤석열 대통령 국정 지지율이 20%대로 추락한 것과 관련하여 최 전 정무수석이 대통령 내외의 책임인 만큼 ‘쇄신이 필요하다’라고 한 의견을 제목으로 삼았다. 둘 다 윤석열 대통령 관련 기사인 것은 전적으로 우연이다.
여기 쓰인 ‘절단난다(절딴난다)’는 ‘망가진다’, ‘끝장난다’라는 정도의 뜻을 가진 경상북도 방언이다. 표준어는 ‘결딴난다’이다. 뜻은 두 가지로 “①어떤 일이나 물건 따위가 아주 망가져서 도무지 손을 쓸 수 없는 상태가 되다, ②살림이 망하여 거덜 나다”이다.
‘결딴나다’가 ‘절단(딴)난다’로 쓰이는 것은 방언의 구개음화 현상으로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우리말의 음운 현상 가운데 구개음화는 ‘굳이→구지’, ‘같이→가치’로 되는 현상 즉, ‘디, 티’가 ‘지, 치’로 발음이 되는 현상이다. 이는 입천장소리인 모음 ‘ㅣ’로 말미암아 경구개음(센입천장소리)이 아닌 자음들이 ‘ㅣ’와 가까운 자리에서 나는 경구개음‘ㅈ, ㅊ, ㅅ’ 등으로 바뀌는 것이다.
앞에서 든 예는 표준어에서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실제 구개음화는 방언에서 훨씬 다양한 형태로 구현된다.
① ‘히’가 ‘시’로 발음되는 현상 예) 힘>심, 형님>성님, 혓바닥>셋바닥 등
② ‘기’가 ‘지’로 바뀌는 현상 예) 기름>지름, 길>질, 겨드랑>저드랑 등
③ ‘키’가 ‘치’로 바뀌는 현상 예) 키>치
‘결딴’을 ‘절단(딴)’으로 발음하는 것은 ‘ㅣ’ 모음 앞에 오는 ‘ㄱ’을 ‘ㅈ’으로 바꿔서 발음하는 ㉠ 구개음화 현상에다 ㉡ 이중모음(‘ㅕ’)을 단모음(‘ㅓ’)으로 발음한 현상이 겹친 것으로 볼 수도 있을 듯하다. ‘겨드랑>저드랑’처럼 말이다.
‘결단’이 ‘절단’으로 바뀐 데는 낱말의 뜻도 일정한 영향을 미친 듯 보인다. ‘결단’이라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決斷(결단)’이다. “결정적인 판단을 하거나 단정을 내림”이란 뜻인데 이보다는 “자르거나 베어서 끊음”이라는 ‘切斷(절단)’이 본래의 뜻에 가깝게 느껴지지 않는가 말이다.
‘끝장나다’는 의미의 경상도 방언이 내로라하는 신문사 기자들까지도 스스럼없이 쓰게 된 데는 이러한 사정이 있었지 않나 싶다. 이들은 ‘절딴’ 대신 ‘절단’으로 쓴 것은 표준어를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절딴’은 ‘절단’을 소리 나는 대로 적은 것으로 사전에도 없는 말이다.
정리해 보자. ‘결정적인 판단’은 ‘결단’, ‘자르거나 베어서 끊음’은 ‘절단’, ‘망가지고 끝장난다’는 ‘결딴’이다.
2022. 9. 5.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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