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이 궁금하면 국어원에 물어보자
말글 생활의 도우미, <온라인 가나다>
우리 말글을 가르쳐 온 지 벌써 30년이 내일모레다. 우리 말글의 규칙들을 얼추 꿰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뜻밖에 복병들 앞에서는 손을 들 때도 적지 않다. 이럴 때 나는 국립국어원에서 운영하는 누리집의 ‘온라인 가나다’(☞ 바로 가기)의 도움을 받는다.
물론 실시간 서비스는 아니어서 답을 받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온라인 가나다’는 우리 말글에 대한 사람들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방금 확인해 보니 5월 24일과 5월 25일에 여기 오른 질문은 각각 36건, 39건이다. ‘온라인 가나다’는 얼추 하루에 마흔 건 가까운 질문을 받아 이를 소화하고 있는 셈이다.
내가 ‘온라인 가나다’와 연을 맺은 것은 2001년도쯤이다. 그때는 지금과 같은 게시판 형식이 아니라 개인 전자우편으로 답이 오는 체제였던 것 같다. 그때 한참 쓰이기 시작한 ‘좋은 하루 되세요.’란 문장의 비문(非文)적 성격을 물었는데 꽤 장문의, 내 의견과 다르지 않은 답을 받고 흡족해했던 기억이 아스라하다.
두 번째도 비슷한 형식으로 답을 받았다. 시내 어느 중학교 교훈 때문에 생긴 궁금증이었다. 지역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학굔데 어느 날, 이 학교에 근무하는 선배 교사가 내게 물었다.
“우리 학교 교훈이 ‘참되고 협동하는 주인이 되자’인데, 이 문장 좀 이상하지 않아요? 아무래도 뭔가 어색하거든…….”
그는 수학 교사다. 두벌식 자판을 쓰다가 세벌식의 뜻을 알고 난 뒤, 스스로 연습을 통해 세벌식으로 개종(?)할 정도로 한글에 대한 관심이 많은 사람이다. 그의 ‘문법적 직관’은 정확했던 것 같다. 나는 예의 교훈에서 ‘참되다’(형용사)와 ‘협동하다(동사)’가 서로 대등하게 연결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리면서 그게 틀림없는 비문(非文)이라고 알려주었다.
나름대로 모양을 갖춘 답을 보내주었지만 아쉬웠던 나는 바로 국어원에 질의했다. 물론 나는 이내 역시 내 의견과 다르지 않은, 그러나 정확한 문법 지식으로 짚은 답신을 받을 수 있었다. 그 이후, 나는 드문드문 ‘온라인 가나다’를 이용하곤 한다.
‘참되고 협동하는’은 틀렸다!
올해 새로 1학년을 맡으며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를 새로 가르치게 되었다. 경력이 늘면서부터 안 보이던 부분도 가끔 눈에 띄게 된 건 발전이라면 발전이다. 국어 교과서는 ‘국정’인데도 띄어쓰기가 좀 달라 보였다. ‘우리나라’를 ‘우리 나라’로 쓰거나, 관용구인 ‘아닌 게 아니라’를 ‘아닌게아니라’의 형식으로 쓰는 것이었다.
‘온라인 가나다’에 물었더니 답이 나왔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아닌 게 아니라’가 관용구로 분류되어 있으며 앞서와 같이 띄어 쓰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나라’의 경우 우리 한민족이 세운 나라를 우리 스스로 가리킬 때 한 단어로 굳어져 사용된 것으로 보아 합성어로 올라 있습니다.
그러나 교과서에서는 이러한 단어를 ‘우리 나라’처럼 띄어 쓰고 있습니다. 이처럼 표기가 일치하지 않는 이유는 띄어쓰기의 경우 이론적 입장에 차이가 있어 통일되지 않은 부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2006년 6월에 교육부와 국립국어원이 업무 협정을 맺으면서 교과서와 차이가 있었던 부분을 <표준국어대사전>을 기준으로 바꾸기로 협의하였습니다. 2008년 이후 이 작업이 초등학교 과정부터 시작되어 진행 중입니다. 따라서 앞으로는 표준국어대사전과 교과서의 표기에 나타나는 불일치는 점점 줄어들 것으로 보입니다.
나는 아이들에게도 이런 사실을 알려주면서 띄어쓰기에 대한 의문을 정리해 주었다. 두 번째 질문할 기회가 또 왔다. 교과서에 나오는 ‘유구하고 빛나는 전통문화’라는 구절 앞에서 나는 다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형용사(유구하다)’와 ‘동사(빛나다)’가 연결어미 ‘-고’로 이어졌다. ‘참되고 협동하는’에서 보았듯 동사와 형용사가 대등하게 이어지는 것은 어색하다.
‘유구하고 빛나는’은 가능하다
그런데 이 구절 앞에서 우리의 ‘문법적 직관’은 별로 작동하지 않는다. 어색하거나 문법에 어긋난다는 느낌이 전혀 없는 것이다. 나는 바로 ‘온라인 가나다’에 이 의문을 제기했다. 역시 전문가들은 달랐다. 국어원에서 제시한 답변이다.
품사 분류 기준에 따라 동사로 분류되더라도, 형용사적 의미가 강한 동사들은 형용사와 자연스럽게 연결되기도 합니다. ‘빛나다’가 동사로 분류되지만, 그 뜻은 ‘영광스럽고 훌륭하여 돋보이다.’로, 형용사적 의미가 강합니다.
동사 ‘모자라다’와 형용사 ‘부족하다’가 ‘모자라고 부족한’과 같이, 형용사 ‘건전하다’와 동사 ‘성숙하다’가 ‘건전하고 성숙한’과 같이 ‘-고’로 연결되어 쓰이는 것도 참고할 수 있습니다.
이쯤 되면 사람들이 ‘정말 어렵다’라고 푸념해도 막상 반박이 마땅치 않다. 우리 말 어휘가 가진 뉘앙스가 워낙 구체적이고 민감(?)한 탓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동사와 형용사의 구별도 비슷하다. ‘젊다’와 ‘늙다’는 서로 반의 관계에 있는 낱말이지만 품사가 다르다. ‘젊다’는 ‘상태·성질’을 나타내는 형용사지만 ‘늙다’는 ‘사람이나 동물, 식물 따위가 나이를 많이 먹다.’라는 뜻이니 ‘동작’을 뜻하는 ‘동사’인 것이다.
동사지만 ‘형용사적 의미’를 가진 낱말이기 때문에 두 낱말이 이어질 수 있다는 ‘온라인 가나다’의 해석에 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우리 언어생활에 온전히 자리 잡지는 못했지만, 국립국어원의 역할에 대한 기대가 날로 새로워지는 이유가 여기 있는 것이다.
2010. 5. 26.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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