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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풍진 세상에 /풀꽃 이야기

‘고자화’, 메꽃은 그 이름이 억울하다

by 낮달2018 2020. 6.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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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 야생화 ‘메꽃’

▲ 버스 정류장 주변의 쓰레기더미에서 꽃을 피운 메꽃. 길쭉한 창 모양의 잎을 달고 있다.

나팔꽃 이야기를 하다가 메꽃 이야기를 곁들인 게 2009년 가을이다. 출근하는 길가 언덕에는 꽤 오랫동안 ‘아침의 영광’ 나팔꽃이 피어 있었다. 초등학교 때 배운 동요 ‘꽃밭에서’를 부르면서 만났던 그 꽃을 날마다 지나치면서 처음으로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관련 글 : 나팔꽃과 동요 ‘꽃밭에서’]

 

메꽃, 토종의 야생화

▲ 나팔꽃은 귀화한 외래종이다.

곁들여 메꽃 이야기도 했지만, 주변에서 메꽃을 만나기는 쉽지 않았다. 그리고 4년. 요즘 출근길에서 메꽃을 만난다. 일주일에 두어 번쯤 버스를 타고 출근하는데 버스 정류장 옆의 음식점 화단과 주변 공터에 메꽃이 피어 있기 때문이다. 메꽃은 화단을 가득 메운 아이비의 군락 속에 화려하지 않으나 청초한 모습으로 피어 있다.

 

버스를 기다리면서 요모조모 꽃의 자태를 뜯어보다가 나팔꽃과는 단박에 구별되는 게 잎의 모양이라는 걸 알았다. 나팔꽃의 잎은 둥근 하트 모양이지만, 메꽃의 잎은 로켓이나 길쭉한 창 모양의 다소 비현실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여기저기 실린 메꽃에 대한 정보는 한두 개를 제외하면 너무 전문적인 설명이어서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알아들을 만한 낱말로 조합하면 이렇다. “메꽃은 메꽃과에 딸린 여러해살이풀로 한국·중국·일본 등지에 분포한다. 6~8월에 엷은 홍색의 꽃이 피고 뿌리줄기와 어린잎은 식용한다.”

 

메꽃은 가늘고 긴 덩굴성 줄기가 꼿꼿하게 서 있는 식물이나 물건 등에 왼쪽으로 감아서 올라가는 모습에서 영어로는 ‘덩굴식물(bindweed)’이라 부른다. 새벽에 피어 저녁이면 시들므로 ‘낮 얼굴 꽃[주안화(晝顔花)]’라고 하기도 하고, 잎이 단검 칼날처럼 뾰족해 ‘하늘 칼 풀[천검초(天劍草)]’라고도 한다. ‘미초(美草)’라고 부르는 것은 꽃이 어여뻐서다.

▲ 메꽃은 씨가 아닌 포기나누기로 번식한대서 ‘고자화’로도 불린다.

꽃은 생약의 이름으로 ‘속근근’으로 부르기도 한다. 속근근은 메꽃 뿌리가 근육과 인대, 뼈를 늘리는 효능이 있어서 붙은 이름으로 ‘근육을 이어주는 뿌리[속근근(續筋根)]’라는 뜻이다. 메꽃을 이르는 이름 가운데 흥미로운 것은 ‘고자화(鼓子花)’다.

 

‘고자화’? 혹은 천연 비아그라?

 

‘생식 기관이 불완전한 남자’(표준국어대사전)를 이르는 ‘고자’(‘고자’에 ‘북 고’자를 쓴다니 뜻밖의 발견이다.)란 이름을 붙인 까닭은 싱겁다. 씨가 아닌 포기나누기로 번식한대서 고자화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면 포기나누기로 번식하는 붓꽃이나 양딸기, 잔디, 대나무, 감자, 수련 등도 꼼짝없이 고자화가 될 수밖에 없다. 남자라면 애먼 이름이라고 항변할 만한 대목이다.

 

그러나 메꽃은 남자의 발기부전이나 여성의 불감증에 효과가 있어서 남녀의 성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고자화’라는 이름과 어긋나도 한참 어긋나는 대목이다. 메꽃의 이런 효능을 과장하여 ‘천연 비아그라’라고 표현한 이도 있는데 이 땅의 끈적끈적한 ‘정력 이데올로기’와 만나면 메꽃은 거덜이 날지도 모르겠다.

 

메꽃의 잎은 나물로, 꽃은 맑은장국이나 식초로 무쳐 먹으며 뿌리는 고구마와 비슷한데(고구마도 메꽃과고 고구마꽃도 메꽃이나 나팔꽃과 비슷하다.) 삶거나 굽거나 튀겨서 먹는다고 한다. 글쎄, 그러나 내겐 그걸 먹어본 기억이 없다. 귀화한 외래종인 나팔꽃과는 달리 메꽃은 토종 야생화라지만 정작 우리가 메꽃을 알게 된 것은 자라서였으니 말이다.

▲ 고구마꽃. 같은 메꽃과여서 나팔꽃이나 메꽃과도 닮았다.

‘메’는 ‘제사 때, 신위(神位) 앞에 올리는 밥’을 뜻하거나 ‘산을 예스럽게 이르는 말’인데 ‘메꽃’의 메가 구체적으로 어떤 뜻인지는 알 수 없다. 메꽃 말고도 큰메꽃, 선메꽃, 애기메꽃, 갯메꽃 등이 있는데 시인 곽재구는 「꽃은 피고 새는 울고」에서 들메꽃을 노래했다.

 

연한 붉은 빛을 띤 메꽃은 화사하지도 두드러져 보이지도 않는다. 정류장 옆 공터의 쓰레기더미 위에서 꽃을 피운 메꽃을 보면서 “산과 강과 / 길들이 어우러진 그곳에 / 주름살 착한 사람들 / 마을을 부리고 / 들메꽃처럼 살아간다”는 시인의 시구를 오래 음미해 본다.

 

 

2013. 6. 23.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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