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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선산(구미) 이야기

성주읍 들머리에서 만나는 ‘날씬-아담’ 칠층석탑

by 낮달2018 2022. 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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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의 불탑] ① 동방사지 칠층석탑(성주읍 예산리)

*PC에서 가로 사진은 이미지를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 이미지로 볼 수 있음.

▲ 동방사지 칠층석탑(성주읍 예산리). 성주읍 시가지로 들어가는 길목, 길가에 있다. 10m 높이인데도 아담하고 날씬하다.

성주군에는 모두 네 기의 불탑이 전한다. 절집이야 물론 그보다 훨씬 많지만, 모든 절집이 불탑을 품고 있는 것 아닌 까닭이다. 그런데 이 탑들은 자신을 품은 절집을 온전히 지키지 못했다(물론 이들에게 절집을 지켜야 하는 의무가 주어진 건 아니다). 탑들이 폐사지(廢寺址), 또는 절터에 저 혼자 서 있는 이유다.

 

탑 셋은 수륜면에 있고 나머지는 성주읍 예산리에 있다. 셋은 삼층석탑이고, 성주읍의 탑은 칠층이다. 이 가운데 내가 가장 먼저 만난 것이 칠층탑, 성주읍 예산리의 동방사지 칠층석탑이다. 1990년대 해직 시기에 노조 사무실이 예산리에 있었는데, 사무실에서 멀지 않은 밭 한가운데에 그 탑이 서 있었다.

 

시간도 넉넉하고,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가 널리 읽히던 시기라 가까이 가서 제대로 살펴보았을 법도 한데 그러진 않았던 거 같다. 칠층이지만, 썩 높지도 않았고, 어쩐지 장난감 같은 느낌을 주어서였을까. 안내판도 읽었지만,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디지털카메라가 나오기 한참 전의 일이다. 디카가 있었다면 그 사진이라도 몇 장 찍었을까.

▲ 칠층석탑은 기단이 작아서 전체적으로 불안정해 보이는 대신 날렵한 인상이다.

사진을 처음 찍은 게 3년 전, 성밖숲에 있는 백년설 노래비를 찍으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서였다. 차를 길가에 대놓고 들어가 사진 십여 장을 찍으면서 처음으로 탑을 제대로 살펴보았다. 칠층탑인데도 마치 장난감처럼 느꼈던 이유는 부실해 보일 만큼 작은 기단 때문이었다.

 

칠층석탑은 비보풍수에 따른 지기탑(地氣塔)

 

동방사(東方寺)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40대 애장왕(哀莊王, 788~809) 때 창건된 사찰이다. 창건 당시 절의 영역이 수십 리에 이르렀고 기거하는 승려도 수백 명이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에 전소된 후 복원되지 못하였고 현재는 논밭이 된 절터만 남았다.

 

성주의 지형은 와우형, 소가 누워서 별을 바라보는 형상이고 이천(伊川)이 성주를 돌아 동쪽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칠층석탑은 냇물이 빠지는 길목에 세워서 성주의 지기(地氣)가 냇물과 함께 빠져나가는 것을 막은 지기탑(地氣塔)이다. 이는 일종의 비보풍수다.

 

탑은 성주읍을 돌아 동쪽으로 빠지는 이천(伊川)에서 500m 떨어진 데에 있었으나, 1920년 경신 대홍수 때 하천의 흐름이 바뀌어 탑과 하천과의 거리는 1㎞로 멀어졌다고 한다. 멀어진 게 어찌 탑과 내 사이에 그치겠는가. 사람들은 지기는 물론, 비보 따위도 깡그리 잊고 편하게 사는 것을.

높이 10.4m의 이 석탑은 지대석이 3단으로 구성된 점과 1층과 2층 탑신부에 탱주가 새겨진 점 등에서 독특한 양식을 보인다. 칠층으로 올린 규모와 기단부의 수법, 지붕의 양식 등을 볼 때 고려시대 초반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한다.

 

탑은 여러 장의 장대석(長臺石)으로 구성된 3단의 지대석(地臺石) 위에 단층 기단, 그 위에 칠층 탑신이 올려졌다. 지대석을 3층으로 구성한 것은 칠층석탑의 하중을 고려한 구조다. 단층 기단도 그걸 의식한 높이로 보인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7층의 하중을 소화하기에는 기단의 크기는 역부족이다.

 

비례에 어긋난 기단, 안정감 떨어뜨리고 탑이 날씬해 보이게 해

 

탑의 안정감이 떨어져 보이는 이유다. 결정적으로 탑이 마치 장난감처럼 느껴지는 것은 전체적으로 탑이 늘씬해 보이기 때문이다. 10m는 작지 않은 높이인데도 기단조차 작아서 실제보다 낮아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탑이 무던하고 친근하게 여겨지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위압적으로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탑이 아니라는 얘기다.

 

기단의 사면에는 양 우주(隅柱 : 모서리 기둥)와 1개의 탱주(撑柱:받침 기둥)가 정연히 새겨졌다. 초층 탑신(몸돌)의 한 면에는 문비형(門扉形:문의 형상을 표현한 장식)과 함께 감실(龕室:불상을 모시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 칠층석탑은 성주의 지기가 냇물과 함께 빠져나가는 것을 막은 지기탑이다.

옥개석(지붕돌)의 아래에는 층마다 3단씩 옥개 받침이 있고, 처마는 수평을 이루다 끝이 살짝 들려 있다. 이 역시 이 탑이 풍기는 날렵한 인상을 거든다. 정상에는 찰주(擦柱: 중심 기둥)가 남아 있다. 이 탑이 원래 구층탑이었다는 얘기는 설에 지나지 않을 것 같다.

 

▲ 제대로 된 색감의 탑(두산백과)

이 탑은 경상북도 지정 유형문화재다. 표에서 보듯이 지정문화재 가운데 국가 지정의 유형문화재는 국보와 보물이다. 동방사지 칠층석탑은 이에 미치지 못하지만, 시도에서 조례를 제정하여 지정하는 문화재에 해당한다. 성주군의 불탑 가운데 동방사지 칠층석탑과 보월동 삼층석탑이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다. 심원사 삼층석탑은 이보다 격이 조금 떨어져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다.

문화재의 격은 ‘역사적·학술적·기술적 가치가 큰 것’을 기준으로 국보-보물-유형문화재-문화재자료의 순서로 정한다. 비전문가의 눈에 아무리 좋게 보여도 문화재의 격은 전문가의 기준에 따라 판정된다. 성주의 불탑 가운데, 보존 상태가 가장 나쁜 보월동 삼층석탑이 최근에 복원된 심원사 삼층석탑보다 격이 높은 것은 이 때문이다. 

 

어디 없이 탑 주변에 사는 이들의 마음은 비슷하다. 탑이 거기 있었던가 하는 따위의 염려는 잊어버린, ‘무심의 무심’이 이들의 태도를 압축하는 낱말이다. 어느 날 새로 생긴 구조물이 아니라, 내가 태어나기 전, 아니 아버지가, 할아버지가 태어나기 수백 년 전부터 거기 있었던 존재가 탑이다. 사람들이 있는 듯 없는 듯 탑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2022. 7. 8. 낮달

 

[성주의 불탑] ② 법수사지 삼층석탑(수륜면 백운리)

[성주의 불탑] ③ 보월동 삼층석탑(수륜면 보월리)와 심원사 삼층석탑(수륜면 백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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