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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길 위에서

‘애완’과 ‘반려’, 혹은 버리는 사람과 거두는 사람

by 낮달2018 2022. 6.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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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완’과 ‘반려’ 사이

▲ 길거리에서 만난 개 찾는 광고

오늘 아침, 모처럼 걸어서 출근하는 길이었다. 네거리에 서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오른편 전봇대에 붙은 광고지가 눈에 띄었다. 신호가 들어왔다면 나는 무심히 길을 건넜을까. 나는 ‘강아지를 찾습니다’라는 제목의 광고를 읽었고, 휴대전화로 두 장의 사진을 찍었다.

 

잃어버린 강아지를 찾는다는 여느 광고였다면 나는 무심히 스쳐 지나가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데 예의 광고 속 강아지는 ‘8개월 전에 유기견보호센터에서 입양해 온 유기견’이라고 했다. ‘또다시 유기견이 되지 않도록’ 연락을 달라는 광고는 “저희에겐 소중한 ‘가족’입니다.”라는 문장으로 끝을 맺으면서 20만 원의 사례금도 제시하고 있었다.

 

반려동물(사실은 이런 낱말도 내겐 익숙하지 않다.)과는 나는 인연이 아주 멀다. 개나 강아지를 보면서 귀엽다고 느끼기는 하지만, 한 번도 그걸 만져보고 싶다고 느낀 적이 없을 정도다. 나는 멀찌감치서 그것들을 바라보기만 하는 편이다.

 

어릴 적, 우리 집에서도 고양이와 개를 길렀다. 고양이를 기른 건 방앗간에 출몰하는 쥐 때문이었다. 나는 그 귀기 서린 눈동자와 날카로운 발톱을 두려워했던 것 같다. 필요에 따라 고양이를 기르긴 했지만, 부모님께서도 고양이에 대해 그 이상의 애정을 표시하지는 않은 것 같다. 어머니는 말씀하시곤 했다.

 

“고양이는 영물(靈物)이야. 아무리 잘해 주어도 주인을 할퀸다고 하지.”

 

언제부터 우리 집에서 고양이를 더 이상 기르지 않게 되었는지는 기억에 없다. 그 이후, 나는 주변에서 고양이를 본 적이 없다. 형제자매는 물론이고 내가 알고 지내는 지인 중에서도 개나 고양이를 기르는 이는 드물었던 까닭이다.

 

우리 집에서 기른 개는 마당에 풀어 기르는 잡종이었다. 주인이 오면 반색을 하며 달려오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지, 역시 개를 가까이 붙이지 않았다. 어느 해인가 기르던 강아지가 뭔가를 잘못 먹고 헐떡거리다가 결국 숨이 끊어진 적이 있었다.

 

비눗물을 먹여서 토하게 해 보라는 아버지 말씀을 따라 비눗물을 강아지에게 먹여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헐떡이며 숨을 가누고 있는 강아지를 바라보다가 마음이 아파서 자리를 떠 버렸다. 녀석은 얼마 후 숨을 거두었다. 강아지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나는 뜬금없이 ‘전쟁이 죄악’이라는 생각을 했던 걸로 기억한다.

 

애완과 반려, 혹은 버리는 사람과 거두는 사람

▲ '애완'과 '반려' 사이의 간극은 '희롱'과 '짝' 사이만큼이나 멀다.

개나 고양이를 기르는 일과는 무관하게 살아오다 보니 반려동물 문제에 대해서도 상당히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애완’이 ‘반려’로 바뀐 사실은 이성적으로는 이해가 되지만 그걸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건 쉽지 않다. 그나마 동물병원을 운영하면서 반려동물 이야기를 꾸준히 써 오고 있는 이웃 ‘해를그리며’ 님 덕분에 눈을 좀 뜨긴 했다.

 

유기견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도 처음 알았고, 유기견 보호소나 동물보호시민단체 KARA의 존재 등도 그를 통해서 알았다. 유기견이 결국은 집에서 기르다 버린 개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입맛이 썼다. 결국 버리는 이들이 기른 짐승은 ‘애완(愛玩)’이었지 반려(伴侶)는 아니었던 게다. 세상에 반려를 버리는 사람은 없을 터이니 말이다.

 

안동시 안기동에 산다는 ‘땡이’의 주인은 좀 다른 사람 같다. 이 양반은 유기견보호센터에서 땡이를 입양했다. 강아지를 잃어버리고 다시 유기견이 될까를 염려하는 이 착한 주인은 사례금도 적잖이 걸었다. 그의 말대로 ‘가족’을 찾는 일이니 액수가 문제겠는가.

 

한쪽에는 데리고 살던 짐승을 버리고 또 다른 쪽에서는 버린 개를 다시 입양하고 이를 가족처럼 여기고 보살핀다. 반려동물을 기를 사람에게는 따로 심사하여 자격을 주어야 한다고 힘주어 주장하는 이들의 분노가 다 까닭이 있는 것이다.

 

사진을 다시 물끄러미 들여다본다. 사진으로는 일곱 살 땡이의 생김새는 잘 가늠이 되지 않는다. 녀석은 지금 어디서 도시의 뒷골목을 헤매고 있는 걸까. 누군가의 도움으로 땡이 녀석이 하루빨리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2011. 6. 17.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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