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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풍진 세상에 /길 위에서

영남 성골 유권자의 지방선거 ‘유감’

by 낮달2018 2022. 6.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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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제 6회 지방선거(2014. 6. 4.)

 

지방선거가 막을 내렸다. 정당은 말할 것도 없고, 언론과 시민사회에서, 한 표를 행사한 유권자는 자기 깜냥대로 이 선거의 ‘의미’와 ‘결과’를, 그 대차대조표를 내놓았다. 여야 모두 패배다, 비긴 셈이다, 대통령의 눈물이 여당을 살렸다, 야당의 성과는 세월호 영령 덕이다, 국민은 절묘한 중립을 선택했다…….

 

승패, 그 미묘한 대차대조표

 

단지 표현의 문제만이 아니니 그 각각의 평가는 모두 사실의 핵심이든 변죽이든 울리고 있을 터이다. 나는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촌평을 덤덤하게 받아들였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적 선택을, 선거 결과를 통해 증명받고 싶어 하는 것이야 어느 쪽이든 마찬가지일 것이리라.

 

막대기만 꽂아놔도 된다는 경상도, 그것도 여전히 ‘죽은 박정희’가 ‘산 사람들’을 ‘통치’하는 영남 성골(聖骨) 대구·경북에서 지방선거란 ‘가망 없는’ 도로(徒勞)에 지나지 않는다. 그걸 뻔히 알면서도 투표소로 가서 오로지 ‘배제와 증오’의 논리로 강화되는 신념 아닌 ‘신앙’을 위해 투표하는 이웃들 틈에 섞이는 것도 괴로운 일이다.

 

그러나 어쨌든 투표는 했다. 야권은 올킬, 100% 순혈 여당 일색의 당선 소식을 들으며 직접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투표 행위가 이 지역에서는 진실로 ‘헛일’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한다. 전혀 다른 의미에서 정치적 냉소주의가 똬리를 트는 대목이다.

 

“맨날 똑같은 당에만 표를 던지는 유권자에겐 특별법을 만들어서라도 선거권을 몰수해야 돼!”

“큰일 날 소리!”

“말하자면 그렇다는 얘기야. 여기서 민주주의를 말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나 말이지…….”

 

선거 전에, 부산과 대구에서 이변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보도가 잇달았지만, 이 지역에서 그건 낙타가 바늘구멍을 지나가기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사람들은 공연히 열을 내며 여당에 대한 자신의 분노를 에둘러 표현하지만, 시간은 그의 일탈을 허용하지 않는다.

 

“대구에서 일 나는 거 아니야?”

“택도 없는 소리! 신공항 때문에 열이야 받았는지 몰라도 정작 투표소에 가면 본전 생각이 꿀떡같이 날 텐데, 뭘.”

 

결과는 아는 대로다. 선전했다, ‘아름다운 패배’다, ‘절반의 성공’이다, 김부겸의 도전에 찬사가 이어진다. 그러나 그게 최대치다. 그 정도로 자신들의 불편한 심기를, 수십 년 누적되어 온 관행에 대한 분노를 표시하는 것일 뿐이다. 잠깐의 일탈을 거두고 사람들은 다시 저 ‘견고한 영남 유권자’로 다시 돌아간다.

 

“정몽준이 됐으면 좋을 낀데 박원순이 됐다 카데?”

 

선거 다음 날 들른 재래시장의 좌판을 벌여놓은 아낙네가 이웃 상인에게 건네는 지방선거 촌평이다. 우리 지역이야 끄떡없지만, 서울에라도 ‘애처러븐(애처러운) 사람’에게 힘이 되었으면 좀 좋겠냐는 것이다. 아직도 죽은 박정희가 살아 있듯이 사람들에게는 예순이 넘은 딸도 여전히 ‘애처러븐 여식’인 것이다. 이 도시의 시간은 정치적으로 정지되어 있는지 모른다.

 

정치적으로 시간이 정지된 도시?

 

맨날 그 나물에 그 밥이었지만, 이번 선거에는 지역에서 그나마 눈이 가는 후보가 셋 있었다. 모두 시의원 후보들인데, 둘은 재선에 도전하고 한 사람은 첫 선거였다. 주민을 위한 봉사활동으로 신망이 두터운 이(무소속)와 ‘박정희체육관’의 이름을 원래대로 되돌려야 한다는 주장으로 주목을 받은, 녹색당으로 나온 이는 현직이고 이번에 첫 선거를 치른 이는 지역 시민단체의 대표를 지낸 이였다.

 

글쎄, 고개를 갸웃하긴 했지만, 현직은 그래도 지명도가 있을뿐더러 지난 4년을 제대로 평가받는다면 가능성이 크지 않나 여겼다. 그러나 결과는 모두 꽝이었다. 3인 선거구였는데 모두 4위 아래여서 낙선하고 만 것이었다. 지역의 시민단체 대표와 통화했더니 낙담 끝에 그는 그렇게 덧붙였다.

▲ 교육감 선거 결과 지도 ( 왼쪽, 오마이뉴스 ) 와 무상급식지도 (2011 년 , 한겨레 )
▲ 시도별 무상급식 현황 (2013 년 7 월 교육부 조사 )

“그나마 전교조가 정말 일을 냈데요. 열세 군데서 진보 교육감이 당선되다니 기적이 따로 없습니다.”

 

하긴 나도 놀랐다. 잠깐, 출구조사가 착오가 있는 게 아닌가 했었다. 그러나 17개 시도 가운데 13군데서 진보 교육감이, 개중에 8명은 전교조 간부 출신 교사들이다. 이 ‘진보 교육감 떼 당선’에 여당이 ‘백년대계 걱정’이 늘어지게도 생겼다. “전교조가 ‘교육 권력’ 잡았다”는 조중동의 비명도 엄살만은 아닐 수 있다.

 

교육 변화에 대한 열망

 

그러나 사람들은 ‘손가락’을 쳐다보느라 ‘달’을 보지 못했다. 사람들이 ‘진보’를 선택한 것은 교육의 변화에 대한 열망이었다는 것을. 수십 년 교육의 이른바, 요즘 유행하는 말로 ‘적폐’가 결국은 세월호 아이들의 죽음으로 이어졌다는 것을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깨우친 결과다.

 

곽노현 전 교육감 말대로 “시민들이 전교조 마녀사냥 시대 끝내주셨다.” 이제 이들이 학생, 학부모, 교사 등 교육 주체들과 함께 일구어낼 개혁과 변화를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학부모단체의 주문대로 “1%를 위한 교육이 아니라 99%를 위한 교육, 그리하여 모두가 행복한 교육, 태어난 곳은 달라도 배움은 같은 교육, 교육이 국민의 보편적인 권리로 실현되는 세상을 만들어” 주는 일 말이다.

 

“다행스럽긴 한데, 우리 지역은 역시 그 나물에 그 밥이더군.”

“대책 없는 동네지요. 이번 교육감 선거 결과 지도와 무상급식 지도를 견주면 딱 맞아떨어집니다. 대구, 경북, 울산. 전국에서 무상급식 비율이 가장 낮은 지역들이잖습니까?”

“하긴 경북은 지금까지 전교조는커녕 진보 인사가 교육 위원에 당선된 일도 없어. 전국에서 아마 유일할걸?”

 

그렇다. 그게 경상북도다. 좀 묵은 자료(2011년)지만 무상급식 지도에서 가장 낮은 비율을 유지하고 있는 지역이 대구, 경북과 울산이고, 이 지역은 이번 교육감 선거에서도 구태의연한 보수 인사를 뽑은 것이다. 기초 자치단체에서 시행하려고 해도 광역 의회에서 이 예산을 전액 삭감하는 방식으로 무상급식을 방해했던 지역이 경상북도였다.

 

영남 일부의 시대적 지체를 우려한다

 

거의 80%에 가까운 지지로 당선된 여당 소속 지사와 역시 여당 일색의 의회는 가히 철옹성이다. 타 시도의 학부모와 달리 지역의 학부모들이 적지 않은 급식비를 부담하게 된 것은 그런 정치적 선택의 결과다. 사람들은 정권을 창출한 지역의 주민으로서의 자긍심과 현실의 실리를 바꾼 셈일까.

 

사람들의 정치적 선택에 시비를 걸 일은 없겠다. 그러나 그 선택이 ‘묻지 마’ 형식의 일종의 정치적 도그마로 작용한다면 그건 민주주의는 물론이거니와 지역의 이해와 안녕에도 절대 이롭지 않을 터이다. 진보 인사가 대거 교육감으로 진출하게 된 이번 지방선거 결과가 어떤 형식의 변화로 이어질지도 예단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념적 선택이라기보다 여전히 배제와 증오의 논리 위에 위태롭게 서 있는 막무가내식 선택의 결과가 일종의 시대 지체(遲滯)로 나타나는 건 우려스러운 일이다. 대구와 경북, 울산 등 영남 동해안 벨트에서 계속되고 있는 정치적 선택의 결과를 우울하게 바라보는 것은 그래서이다.

 

 

2014. 6. 8.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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