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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 교사들의 ‘교정 본능’

by 낮달2018 2022. 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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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길 수 없는 ‘교정 본능’!

▲문화방송 시트콤 < 하이킥 >에선 국어 교사인 박하선이 연애편지를 교정한다 .

아이들은 국어 교사에게 편지 쓰기를 두려워한다. 제 글에서 흠이 잡힐까 저어해서다. 편지 끝에 이런저런 변명을 붙이는 게 그래서다. 그러나 편지를 주고받는 이들은 사연을 나누지 거기 쓰인 글의 흠을 찾고 지적하지 않는다. 국어 교사라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국어 교사의 눈은 아무래도 꽤 깐깐하다. 흔히들 말하는 ‘직업의식’ 탓일까. 출판물에서도 오탈자가 먼저 눈에 들어오고 어떤 글이든 맞춤법에 어긋나거나 문법에 맞지 않는 문장은 도드라져 보인다. 그런 허술한 글을 읽을 때는 뜻을 새기면서 한편으로는 잘못을 하나하나 가려내곤 한다.

 

아는 편집자가 그랬다. 인터넷에서 댓글을 달면서도 교정을 하는 자신을 발견한다고. 숨길 수 없는 ‘교정 본능’이다. 가끔 아이들이 받아주는 이른바 ‘미드(미국 드라마)’를 본다. 알다시피 인터넷에 떠도는 이런 외화 자막은 조악하기 이를 데 없다. 참다못해 자막 파일을 열어 한 차례 교정을 거치는 수고도 마다찮을 정도니 내 ‘교정 본능’도 만만치 않은 셈이다.

 

보충수업 시간에 아이들과 ‘블로그에 나타난 우리말 사용 실태’라는 지문을 공부했다. 1인 미디어로 불리는 블로그가 ‘교열’이라는 거름 과정을 거치는 언론 기사와 달리 우리말 파괴의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담긴 글이다. 운영자의 우리말 사용 능력에 따를 수밖에 없는 블로그의 한계다.

 

그러나 요즘은 인터넷에 오르는 언론사의 기사에서도 비슷한 오류가 발견되는 것 같다. 최근 며칠간 나는 인터넷과 공중파 텔레비전에서 몇 가지 오류를 찾았다. 일상에서 무심히 발견한 게 이 정도면 작정하고 찾으면 훨씬 정도가 더 심할 수도 있겠다.

 

대체로 종이 신문의 기사에서는 오류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내부의 ‘교열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한다는 뜻이겠다. 방송사의 경우 교열부서가 어떤 방식으로 방송 화면에서 오류를 거르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띄어쓰기는 아예 접어준다고 하더라도 맞춤법에 어긋난 표현은 수월찮게 발견된다.

▲한국방송 (KBS2) 의 주말 프로그램 '남자의 자격'의 장면들.(2012.1.8.) ⓒ KBS 화면 갈무리

자막 등에서 교열이 허술할 듯한 케이블 방송 쪽은 뜻밖에 흠이 적은 것 같다. 주로 영화채널을 자주 보는데 띄어쓰기도 일정한 원칙을 지키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특히 사이시옷이 들어가는 합성어도 정확히 표기하고 있었다.

 

공교롭게 마침맞게 눈에 띈 탓인가. 정작 흠은 지상파 쪽에 있었다. 지난 일요일(8일) 방영된 한국방송(KBS)의 ‘남자의 자격’에서다. 프로그램 중간쯤부터 보기 시작했는데 나는 어렵사리 두 군데서 틀린 표현을 찾았었다.

 

부사 ‘깊숙이’를 ‘깊숙히’로 잘못 쓴 것과 사자성어인 ‘혈혈단신(孑孑單身)’을 ‘홀홀단신’으로 표기한 것이다. 한글맞춤법 제51항에 따른 ‘부사의 끝음절 표기’는 사실 발음하는 이의 습관에 따라 다르게 인식될 수 있으므로 실수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사자성어 ‘혈혈단신’을 ‘홀홀단신’으로 잘못 쓰는 현상은 꽤 일반적이다. 이는 ‘풍비박산(風飛雹散)’을 ‘풍지박산’으로, ‘야반도주(夜半逃走)’을 ‘야밤도주’로, ‘절체절명(絶體絶命)’을 ‘절대절명’으로 쓰는 것과 같은 경우다.

 

그러나 두 개 모두 한 번이라도 사전에서 확인했으면 줄일 수 있는 실수다. 한국방송과 문화방송에선 아나운서들이 중심이 되어 ‘바른 말 고운 말’과 같은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도 한편에선 이 같은 결정적인 오류가 나타나기도 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갑자기 눈이 밝아졌던 걸까. <경향>의 화보에선 <연합뉴스>에서 제공한 사진 설명에 ‘눈 덮인’을 ‘눈덮힌’으로 잘못 쓴 것을 찾아냈다. ‘덮이다’는 ‘이어적기’하면 [더피다]로 발음되다 보니 접미사 ‘-히’를 쓴 것으로 착각되었던 모양이다.

 

<뷰스앤뉴스>에선 ‘용렬하다’를 ‘용열하다’로 잘못 썼다. ‘사람이 변변하지 못하고 졸렬하다.’는 뜻의 ‘용렬(庸劣)하다’를 ‘용열하다’로 쓴 것은 어이없다. 신속성에 매인 인터넷 언론들은 ‘교열’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 < 연합뉴스 > 에서 제공한 사진 . < 경향신문 > 의 화보에 실린 이미지다 .
▲ < 뷰스앤뉴스 >의 기사. 한나라 시의원 '놈현은 자살한 찌질이' 기사에서

이상이 불과 며칠 사이에 내가 인터넷과 방송에서 확인한 것들이다. 제대로 모니터를 하면 훨씬 더 많은 오류가 발견될 가능성이 크다. 가장 우리말을 정확하게 써야 할 언론에서 이러한 현상이 잦아지는 것은 문제다. 언론에서 ‘교열’이 갖는 비중을 새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2012. 1. 11.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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