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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교단(1984~2016)에서

아이들은 왜 점점 작아져 갈까

by 낮달2018 2022. 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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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점점 어려지는 것 같다

▲ 야간자습을 하는 여학생들 .( 이하 같음 ) 고등학생들은 입시교육의 포로가 되었다 .

아이들을 가르친 세월이 제법 되었다. 20년쯤을 넘기니까 젊을 때는 젊어서, 바쁠 때는 바빠서 눈에 뵈지 않던 것들이 수월찮게 눈에 들어온다. 초임 시절에는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유독 눈에 더 띄곤 했는데 어느 날부터 그런 경계가 흐려지더니 그것과 무관하게 아이들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게 말하자면 ‘연륜’인지 모르겠다.

 

새삼 눈에 밟히는 것 중 하나가 해마다 아이들은 점점 어려진다는 점이다. 특히 고등학생과는 달리 중학생은 그 변화가 두드러진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갓 입학한 아이들은 여전히 초등학생이다. 고등학교 근무를 하다 중학교 1학년을 맡았던 후배 교사의 얘기다.

 

점심시간인데 아이들이 식당에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해서 갔더니 아이들은 교실을 지키고 있다. 인석들아, 밥 먹으러 안 가고 뭐 해? 아이들은 저희끼리 쳐다보면서 입을 삐죽인다. 아이들은 교사의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후배는 얘들이 귀엽기도 하고 어처구니도 없고 해서 고함을 질렀다.

 

빨리 가! 이 멍청한 녀석들아! 아이들은 이번에는 아주 심각하게 되물었다. 손잡고 가요? 후배는 손을 들고 말았다. 아이들은 일상조차 교사의 지도에 따라 소화한다. 다소 답답한 얘기긴 하지만, 이 일화는 교사의 영향력이 살아 있는 때. 벌써 10여 년 전의 얘기다.

 

중학생쯤 되면 의젓해지는 구석이 보여야 하는데, 아이들은 여전히 '무개념' 상태다. 5분 이상의 집중이 거의 불가능한 듯 쉴 새 없이 꼼지락거리는 게 그들의 특징이기도 했다. 요즘 중학교에 근무하고 있는 교사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기가 질린다. 아이들은 제멋대로 행동하고, 교사의 지도 따위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다. 여학교는 어떤지 몰라도 남학교는 통제 불능이 된 지 오래라고 한다. 그나마 고등학교가 역할을 하는 것은 입시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 장면 1

 

시내에 이른바 ‘1번지 학교’로 불리는 남자 중학교가 있다. 시내에서 가장 크고 역사도 오랜 학교다. 여자중학교에서 근무하다 그리로 옮긴 여교사 한 분을 며칠 전에 만났다. 정원조정이 있어 자원해 전출하기로 했다고 한다. 여기만 아니면 어디라도 좋아. 하고 그녀는 말하면서 좀 씁쓸해했다.

 

교육운동을 같이 했고, 같은 학교에서도 근무한 선배여서 그이를 잘 안다. 오직 수업과 아이들을 위해서 쉬는 시간을 쓰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이가 주저하다가 반은 농담처럼 뱉은 말이 그랬다. 어쩌면, 아이들이 악마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니까, 글쎄…….

 

아이들을 매로 다스리는 데 이골이 난 중년의 남교사들도 손을 들었다고 한다. 내 수업이 이 정도면 다른 선생님들은 수업을 어떻게 하노. 아이들은 악머구리처럼 떠들어대고, 저희 멋대로 교실을 이리저리 돌아다니기까지 한다. 결국 아이들을 말리는 데 실패한 교사는 교탁 주변에 그래도 귀를 기울이고 있는 몇 명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수업을 진행한다는 것이다.

 

맞는 데 길이 든 아이들에겐 체벌도 아무 소용이 없는 것 같아요……. 서너 해 전, 중3을 가르치면서 1학년 수업을 지원했던 경험을 떠올리면 충분히 그릴 수 있는 그림이다. 고등학교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굳히게 한 것은 그 대책 없는 1학년짜리였다.

 

이미 체벌은 몇몇 남자 교사들에 의해서만 이루어지고, 대부분의 학교에서 여교사의 비율이 더 높아진 형편이다. 당연히 아이들을 완력으로 다스리는 이도 거의 없을뿐더러 거칠어진 아이들에게 여교사의 영은 거의 서지 않는다. 아이들은 완강한 남교사에겐 순종하는 척이라도 하지만, 나이와 상관없이 여교사를 성적 대상으로 바라보며 여자라고 깔보는 게 기본이라고 한다.

 

# 장면 2

 

전임 교에 근무하고 계신 선배 선생님의 전언이다.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원로교사신데, 학교 축제에 연극반을 맡으셨단다. 아이들 스무 명을 데리고 연극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속을 많이 끓이셨다. 수업을 마치면 아이들을 데리고 연습을 해야 하는데, 이 녀석들 언제나 연습보다 제 개인 용무가 바쁘다. 그러니 연습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가 없다.

 

네가 빠지면 연습이 안 되지 않느냐, 네가 좀 양보하는 게 어떠냐고 설득해도 아이들은 요지부동이다. 안 돼요, 가야 해요! 간신히 맞추어서 연극을 무대에 올리긴 했는데, 선생님은 참 씁쓸해하셨다. 그러면서도 이놈들, 요구는 빠지지 않는다. 피자 사주세요! 어쩔 수 없지 않나, 그것도 값싼 거 샀다고 할까 봐 제일 비싼 걸로 사주었지…….

 

40여 년 가까이 아이들을 가르친 선생님께서 맞닥뜨린 요즘 아이들은 당혹 그 자체였을지 모른다. 이 녀석들, 생각해 보라고. 집에서 방을 한번 쓸어 봤겠나, 걸레질을 해 봤겠나. 부모는 오직 니들은 공부만 하라고 다그쳤을 게고, 라면 하나 끓이는 것도 제대로 못 하는 아이들이야……. 이미 만만찮은 이기주의자가 되어 있으니…….

# 장면 3

 

고등학교는 좀 나을까. 하는 말로 꾀가 말짱한 아이들이니 좀 낫긴 하다. 그러나 본질적으로는 그리 다르지 않다. 자기 이해에 민감하고, 손해 앞에서는 참지 못하는 점에서는 이미 기성세대에 근접해 있다. 고3을 맡는 후배 교사의 이야기다.

 

수능 시험을 끝내고 학교 수업은 두서가 없어지고, 상담이다 뭐다 해서 바쁘게 돌아가면서 교실 정리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 한번은 이 친구 몸소 비를 들고 아이들 주위를 쓸기 시작했다. 웬만하면 재바르게 일어나 선생님 빗자루를 빼앗아도 뭣할 판인데, 아이들 교사의 비질을 돕기 위해 발을 들어 주더란다. 그것뿐이 아니다. 선생님, 여기요. 여기! 비질할 데까지 친절하게 안내해 주었단다.

 

물론 개중에는 바르게 자라 제대로 예의를 갖춘 아이들도 많다. 또 이게 모든 아이의 문제로 쉬 일반화할 문제가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가끔 지면을 장식하는, 교사 폭행 등 아이들의 일탈과 비행이 특수한 사례일 뿐이라고 넘길 일이 아니라는 것도 사실이다.

 

대구에서 중학교 2학년을 맡고 있는 친구의 얘기다. 반에 사내아이 하나가 학생징계위원회에 넘겨졌다. 아이는 정기 시험 시간 중에 감독 여교사로부터 다리를 책상 밑으로 집어넣으라는 지시를 받았다. 아이는 태연자약하게 내뱉었단다. “××년, 꺼져!”

신문이나 방송에서나 들을 수 있는 얘기라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그것들은 내 주변의 일상이 되어 있다. 이웃 나라에서 건너온 ‘교실 붕괴’니 하는 얘기들은 이제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닌 듯하다. 인구 20만이 되지 않는 지방 소도시의 교실이 이러니 대도시의 교실이 어떨지는 불문가지다.

 

아이들은 중학교 때부터 생각보다 훨씬 깊이 사교육에 익숙해져 있다.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만큼 아이들은 학원에서 생활하고 학원 강사들에 기대어 지낸다. 스승의 날에 아이들은 학교의 교사가 아니라 학원 강사에게 줄 선물을 준비해 학원에서 ‘파티’를 벌인다고 한다.

 

자정까지 야간자습을 시키는 학원에서 성적이 떨어지면 강사로부터 매도 맞는데 아이들은 그건 ‘사랑의 매’라 여긴다. 그 대신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교사들의 체벌은 동영상으로 찍어서 인터넷에 올리고, 더러는 112에 신고하기도 한다.

 

‘공교육’의 위기는 이제 이론이 아니라 현실이 된 걸까. 현 정부의 무한경쟁을 용인하는 교육 정책은 거기 기름을 부은 셈이다. 물론 이런 상황이 전적으로 아이들만의 문제라고 보기는 어렵다. 변화해 버린 교육 환경 속에서 교사들의 역할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함도 두말할 필요가 없다.

 

아이들은 일찌감치 승자독식의 이 정글 같은 현실에 적응하기 위해서, 더 이상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 자신을 단련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공부만 잘하면 모든 게 면책되는 세상이니 존경과 배려, 우정과 공동체 의식 따위에 귀 기울일 일도 없는 것이다.

 

이런 무너져가는 교실 앞에서, 마땅히 그 해결점을 찾기 어려운 이 어려운 숙제 앞에 교사들의 개탄이 있다. 그것은 자신의 교육적 열정과는 무관하게 흘러가는 상황 속에서 아프게 확인하는 무력감과 자책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2009. 1. 17.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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