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교육청의 관리자 수업 제도화 논란
아침 출근길에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기독교방송(CBS)> 라디오를 켜 놓는다. 8시 전후엔 대개 채널마다 뉴스지만 나는 ‘김현정의 뉴스쇼’ 때부터 채널을 <CBS>로 고정해 놓았다. 며칠 전(18일), 김현정 대신에 박재홍이 진행하는 ‘뉴스쇼’는 경기도 교육청의 ‘교장 수업 논란’을 다루었다.[기사 바로 가기 ☞]
경기도 교육청에서 도입한다는 교장, 교감 등 관리자의 수업 참여 제도에 대해서 나는 흥미도 없을뿐더러 아는 것도 거의 없다. 물론 그런 제도를 도입하겠다는 동기가 무엇인지, 제도가 가져올 학교의 변화가 무엇인지에 대해 전망하지도 못한다.
경기도 교육청, ‘교장 수업’ 논란
뉴스쇼의 초대 손님은 찬성 의견의 현직 초등학교 교장(송병일·고양시 상탄초)부터 나왔다. 5학년 역사 수업과 6학년 사회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는 송 교장은 이 제도의 도입에 긍정적이었다. 주변에 교장이 수업한다는 얘길 들어 본 적이 없으니 그의 사례는 일단 꽤 신선하게 느껴졌다.
그는 주위에 반대하는 사람이 상당히 많다며 수업하는 교장의 비율을 5% 미만으로 보았다. 그리고 관리자들이 수업과 멀어지는 이유를 “관리자가 되면서부터 ‘수업이여, 안녕’이 되는 우리나라 교육풍토” 탓이라며 안타까워했다.
반대쪽 인사로는 경기 교총 회장(장병문)이 나왔다. 그는 이 제도가 도입되면 ‘엄청난 혼란’이 일어날 거라고 주장했다. 수업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할 수가 없다고 했다. “행정상으로 올라오는 결재하는 일조차도 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바쁘”기 때문이란다. 요컨대 ‘행정 공백이 불가피해서 교육 현장이 혼란에 빠질 것’이라는 거였다.
“학교가 돌아가는 제반 생활지도도 교장이 관장해야 하죠.
또 선생님들 수업하는 것도 관장돼야 하죠.
그리고 대외적으로 출장도 가야 하죠. 이게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에 따르면 교감·교장이 수업에 참여하는 것은 학교를 혼란에 빠뜨리는 일이다. 생활지도와 교사들 수업을 관장하여야 하고 출장도 다녀와야 하는 데다 ‘행정상으로 올라오는 결재’도 시간이 부족할 만큼 바쁘기 때문이다.
모두에 밝힌 대로 나는 경기도 교육청이 도입하고자 하는 제도에 대해선 평가할 형편이 아니다. 나는 이 제도에 대한 찬반이 아니라 양측에서 찬반의 근거로 내세우는 주장이 현실과 얼마나 부합하는가를 살필 뿐이다.
나는 방송을 주의 깊게 들으면서 어떤 때는 머리를 끄덕이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머리를 갸웃하기도 했다. 그러나 ‘행정 공백’을 운운하고 ‘결재 시간도 부족하다’라는 주장을 들을 때는 애걔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제도에 대한 찬반과 무관하게 그건 전혀 설득력이 없는 주장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지역적 특성은 있을 것이지만 경기도 교육과 경기도의 학교가 내가 사는 경상북도의 그것과 완전히 다를 리 없다. 경북 교육의 문제는 비슷하게 경기의 그것과 겹치거니 이어지는 것이다. 경북의 현실을 준거로 경기도의 그걸 살피는 건 전혀 문제가 없다는 얘기다.
관리자들이 수업과 멀어지는 이유를 송 교장은 정확히 짚었다. 승진과 관련하여 교직 사회에 거의 전통이 되어 버린 이야기가 있다. “쉰이 넘으면 교실에 들어가는 게 도살장에 들어가는 것과 진배없다”라는 게 그거다. 개인차가 있긴 하지만 실제로 쉰이 넘으면 수업이 예전 같지 않아지는 건 사실이다.
일찌감치 승진 준비에 목을 매기 시작하는 동기에는 나이 들어서도 면하지 못하는 ‘수업 부담’도 한몫을 한다. 교감이나 전문직(연구사, 장학사)이 되면 일단 이 수업으로부터 완벽하게 해방되기 때문이다. 수업에 들어가면서 안락의자에 앉아 여유를 부리고 있는 교감을 볼 때 가끔 그의 ‘자유’가 부러워지는 까닭이 거기 있다.
수업이 없는 대신 교감, 교장 등 관리자들은 학교를 ‘관리’한다. ‘통할(統轄:교장)’, ‘장리(掌理:교감)’가 그들의 일인데, 이 요상한 법령 용어를 풀이하면 그냥 ‘관리’다. 그들은 당해 학교 교육에 대한 책임을 지며 학교 교육의 전반을 관리·감독하는 것이다. 교직원들이 기안한 각종 서류에 결재하는 일도 이들 업무의 일부다.
위의 교총 회장이 말하는 ‘행정’이란 이 서류 결재 같은 일이랄 수 있겠다. 그런데 이게 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바쁘다는 것인데, 과장도 이쯤 되면 메달감이다. 행정 업무가 많다고 해도 학교는 교육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설사 행정 업무가 넘친다고 하더라도 그건 특별히 그런 수요가 몰리는 시기의 일시적 현상이지, 일상적인 상황은 아니다.
학생 피해? 교육의 질 저하? 억지도 메달감
경기 교총회장의 말처럼 ‘국정감사’ 때나 시도 의회의 회기 중에 화급을 다투며 떨어지는 각종 자료 요청이 적지 않긴 하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부산을 떨어야 하는 이는 교사나 행정직원들이지 느긋하게 쉬다가 올라온 서류에 서명만 하면 되는 교감이나 교장은 아니다.
‘하달되는 공문들’이 쌓인다 해도 그건 교장실의 책상은 아니라 담당 교사의 책상 위다. 그 ‘택도 없는 공문’들 덕분에 수업을 제시간에 못 들어가는 책임을 관리자가 대신 지는 것도 물론 아니다. 그런데 이들 관리자가 수업하게 되면 ‘행정 공백이 생기고 학교가 혼란에 빠진다’고?
아무리 접어주려고 해도 이건 억지다. 게다가 관리자들이 수업하게 되면 ‘학생들에게 피해가 가고’ ‘교육의 질 저하의 원인’이 된다고? 관리자들을 ‘관리에 전념’케 하지 않고 수업을 하게 하면 학생들에게 가는 피해는 어떤 걸까. 또 그게 어떻게 교육의 질 저하의 원인이 되는 걸까.
교장이 ‘교장실에서 나와 학생들과 스킨십도 늘리고 교실 현장의 분위기를 직접 느낄 수 있’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대한 답에 이들의 속내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비록 학부모 민원을 내세우며 자신의 역할을 강변하긴 하지만.
“하지만 (교장이 수업을 하면 학교 행정 업무를) 절대적으로 통제를 못합니다.”
관리자들은 대체로 자신의 역할과 권한을 드러나게 행사하고 싶어 한다. 수십 년 평교사 생활을 견디며, 승진을 위해 한눈팔지 않고 달려와 얻은 지위다. 당연히 자신의 권한 아래 학교와 교사를 통제하고 싶은 것이다. 학사 일정과 업무분장, 예산과 결산의 운용 등을 손안에 두고자 하는 이들의 욕망이 교사들과 부딪치기도 하는 까닭도 다르지 않다.
권위적이고 비민주적인 성향의 교장은 학교라는 작은 공화국의 전제군주처럼 군림하기도 한다. 모두가 ‘노’라고 해도 그가 ‘예스’하지 않는 이상 교사들의 의지는 관철되지 않는다. 대통령도 형식적으론 탄핵이라는 견제를 당할 수 있지만, 어떤 제도적 견제도 교장의 독선을 넘지 못한다. 학교운영위원회가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학교에선 이미 견제의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다.
교감을 포함한 이들 관리자가 교사와 구별되는 점은 ‘수업 부담’의 유무다. 이들은 수업을 지도·감독할 뿐, 실제 수업과는 일찌감치 ‘굿바이’를 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다시 수업하라는 것은 자신이 올라온 사다리 아래로 내려가라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까닭이 거기 있는 것이다.
‘무두일(無頭日)’에 학교는 더 잘 돌아간다
관리자들에게 수업 부담이 없다는 것은 이들이 가진 지위의 증거이면서 이들이 누리는 교원으로서의 보상쯤으로 인식된다. 이들은 관리자로 승진하여도 교감 ‘선생님’, 교장 ‘선생님’으로 불리는 교원이지만 수업은 하지 않는 것이다.
이들은 ‘출장’도 가야 한다. 출장도 이들이 누리는 보상의 일부다. 출장을 가면 이들은 교사들보다 더 높은 수준의 출장비를 받는다. 연간 100일이 넘게 출장을 가고, 출장비만 600만 원을 쓰는 학교장의 일탈이 벌어지는 것은 바로 이 대목이다.
이처럼 관리자들이 ‘수업’에 대해 기겁을 하고 학교를 ‘통제’할 시간을 빼앗긴다고 부르짖지만 정작 통제되어야 하는 학교와 교사는 이들 관리자의 존재를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다. 어쩌다 교장, 교감이 모두 학교를 비우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날을 교사들은 ‘무두일(無頭日)’이라고 한다.
이들 관리자의 부재로 통제가 미치지 않는 학교는 어떨까. 교사들은 입을 모아 이야기한다.
“교장, 교감이 없으면? 학교는 더 매끄럽게 잘 돌아가지!”
학교 교육은 특별한 무엇이 아니다. 그것은 정해진 교육과정에 따라 각자 교사들이 자기 소임을 다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다. 교장, 교감이라는 감독자가 없다고 해서 학교 교육이 정해진 궤도를 이탈할 일은 없는 것이다. 오히려 간섭과 통제가 없다고 느끼는 순간, 학교는 훨씬 더 자율적으로 운영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교장, 교감이 수업을 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경기도 교육청의 계획이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들의 호들갑처럼 ‘행정 공백’으로 ‘교육 현장이 혼란에 빠질’ 일이 없다는 건 분명하다. 관리자들이 수업을 맡는다고 해서 학생들에게 피해를 줄 일도, 교육의 질을 떨어뜨릴 일도 없다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다.
2014. 12. 23. 낮달
'이 풍진 세상에 > 교단(1984~2016)에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이들은 왜 점점 작아져 갈까 (0) | 2022.01.17 |
---|---|
“그러면 어때? 교육만 살리면 되지” (0) | 2022.01.09 |
조합비 ‘원천징수’ 금지? 그런다고 전교조가 죽을까? (0) | 2021.12.22 |
‘봉사활동’을 생각한다 (0) | 2021.12.18 |
공부 못 하면 굶어라? (0) | 2021.12.1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