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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팅, 탑재, 펌

by 낮달2018 2022.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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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거들이 즐겨 쓰는 ‘포스팅’에 대하여

양력이긴 하지만 정초(正初)다. 그런데 마땅히 어떤 감회도 없다. 묵은해를 보냈다는 느낌도, 새로 한 해가 시작된다는 느낌도 없으니 왠지 민망하다. 신문과 TV에서 드문드문 전하는 해돋이 소식이며 그림도 무심하게 지켜보기만 했다.

 

연하장을 주고받는 시대도 아니다. 지인들과 벗, 그리고 아이들이 보낸 문자 새해 인사를 받고 그 답을 보낸다고 조금 끙끙댔을 뿐이다. 그리고 오늘부터 다시 보충수업. 그나마 한 보름 남짓으로 끝나니 다행이라 해야 하나. 오랜만의 수업이어서인지 목이 칼칼해졌다.

 

며칠간 묵혀 두었던 컴퓨터를 켜서 <오마이뉴스> 기사를 읽다가 어떤 덧붙임 글에 눈길이 머문다. 좋은 기사인데, 기사 끝에 붙은 ‘포스팅’이란 낱말이 왠지 생뚱맞아 보였다. 아무 데서나 직업의식이 드러나는 게 주책이라는 걸 안다. 그러나 그 얘기를 한번 해 보기로 한다.

 

1. <포스팅>과 <(글) 올리기>

▲ <오마이뉴스> 기사의 '덧붙이는 글'에서
▲ 다음 (daum) 사전에서

‘포스팅’은 엔간한 영어도 표제어로 실어주는 국어사전에도 실리지 않은 말이다. 포털에서 검색해 보았더니 ‘투고(投稿) 메시지’라고 한다. 단 ‘전자우편과는 달리 불특정 다수에게 보내어지는 것’이라 하니 블로그에 올리는 글을 그렇게 표현해도 무방할 듯하다.

 

이는 전적으로 쓰는 이의 선택에 달린 것이니 ‘맞고 틀리는’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이 낱말이 전문적이거나 기술적인 용어가 아니니 적당한 우리말로 대체(보통 이를 ‘순화(醇化)’라고 쓴다)해 쓰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대체로 외래어·외국어를 우리말로 옮겨서 쓰는 게 마땅하지 않은 이유는 그게 1:1로 대응해 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다. 이메일을 ‘전자우편’으로 멀티미디어를 ‘다중매체’로 바꾸어 쓰는 것처럼 쌈빡하면 좋을 텐데, ‘포스팅’은 그게 여의하지 않다. 즉 딱 떨어지는 명사 따위로 대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상황에 맞게 이를 풀어쓰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앞서 말했듯 이건 전적으로 쓰는 이의 선택의 문제다.

 

· 이 기사는 제 블로그에도 포스팅합니다. → 이 기사는 제 블로그에도 올립니다.

· 오랜만에 포스팅하셨군요. → 오랜만에 글을 올리셨군요.

· 지금 음주 포스팅 중입니다. → 지금 술을 마시고 글을 쓰고 있습니다.

 

2. ‘탑재(搭載)’와 ‘올림(게시)’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이하 모두 같음)

누리집(홈페이지)에다 새로운 자료를 ‘등록하고 게시하였다’라는 뜻으로 학교 사회에서는 ‘탑재’라는 말을 빈번히 쓴다. ‘탑재’는 원래 ‘배, 비행기, 차 따위에 물건을 싣음.’의 뜻이다. 그게 상황을 설명하는 말로 어울려서 쓰는지는 모르지만 들을 때마다 거북하기 짝이 없다. 다분히 군사용어에 가까운 낱말로 여겨지는 까닭이다.

 

시디(CD)나 디브이디(DVD, V를 ‘비’로 읽는 게 자연스러워졌지만, 아직도 국어사전은 이를 ‘브이’로 쓰고 읽는다.)를 복사·복제하는 것은 여전히 ‘굽다’는 우리말로 쓰는 걸 고집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경우다. 이 역시 ‘올리다’나 ‘등록’, ‘게시(揭示)’로 쓰는 게 훨씬 나을 듯하다.

 

3. ‘펌’과 ‘냉무’

 

영어 리플(전자메일 프로그램에서 수신메일에 대해 회답을 보내는 기능인 reply에서 온 말) 대신 ‘댓글(對-글)을 표준국어대사전에 올린 것은 전적으로 누리꾼들의 공이다. <한겨레>에서 쓰고 있는 ’덧글‘이 훨씬 우리말다운 모습이지만, 덧글은 언중(言衆)의 선택을 받지 못했으니 아쉬운 일이다.

 

도 인터넷에서 누리꾼들의 사랑을 받는 낱말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 낱말은 아직 사전에 오르지 못했다. 국립국어원의 2003년 10월 신어 자료집에 올라와 있을 뿐이다. ‘다른 데서 글이나 자료를 그대로 가져옴’을 뜻하는 이 말은 ‘퍼 옴’을 줄인 말이다.

▲ 다음 불문산악회 카페에서

‘퍼 온다’라는 낱말이 다소 거친 듯한 느낌이 있어서 나는 ‘긷다’에서 온 ‘길어 온 글’이라는 형식으로 쓰고 있다. 내가 동료 선배들과 함께하는 카페에서는 아예 ‘길어 온 글’이라는 ‘말머리’를 선택하게끔 해 놓았다. 운영자가 수학 교사이면서도 세벌식 자판을 쓰는, 한글에 대한 이해가 남다른 이였던 덕분이다.

 

‘펌’은 언중들이 지향하는 ‘언어 경제’를 제대로 활용한 말이다. ‘내용이 없다’는 뜻으로 쓰는 ‘냉무’도 비슷하다. 그러나 사전에 오를 가능성으로 보면 ‘펌’이 ‘냉무’보단 훨씬 높아 보인다. ‘냉무’는 그 줄임이 과도하여 ‘내용 무’를 유추하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어쨌든 인터넷이 우리의 언어생활에 미친 영향은 적지 않다. 과도한 생략이나 왜곡을 특징으로 하는 청소년들이 채팅 등에서 쓰는 말은 한 시기 10대의 문화의 일단을 보여주는 것이긴 하다. 하지만, 그걸 주류 언어로 받아들이는 것은 쉬운 일도 바람직한 일도 아니다.

 

그러나 ‘댓글’이 표제어의 지위를 얻은 것처럼 ‘펌’이 사전에 오르는 것은 가능해 보인다. 언제나 언중들이 쓰는 현실 언어가 언어 규범보다 더 중요한 까닭이다. 과도하지 않은 범주 안에서라면 인터넷에서 누리꾼들이 쓰는 말은 우리말의 다양성과 표현 범주를 확대해 준다는 점에서 우리말의 새로운 자원이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2009. 1. 2.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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