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겨 찻집] ‘활음조 현상’ 따라 바뀌는 표기들
지난 세밑에 한 뉴스 통신사의 기사에서 ‘천인공노(天人共怒)’를 ‘천인공로’로 쓴 걸 보았다. ‘천인공노’는 “하늘과 사람이 함께 노한다”는 뜻으로 쓰이는 사자성어다. 한자음 가운데서 원음이 ‘ㄹ’인데 두음법칙에 따라 ‘노’로 쓰는 늙을 ‘로(老)’와 달리 여기 쓰인 성낼 ‘노(怒)’ 자는 원음이 ‘노’다.
한글맞춤법의 ‘속음’ 표기
그러나 ‘대노(大怒)’나 ‘희노애락(喜怒哀樂)’은 같은 ‘노’자지만, ‘대로’, ‘희로애락’으로 쓴다. 다음은 이에 대한 국립국어원의 설명이다.
“그는 좀처럼 {희노애락/희로애락}을 낯빛에 나타내지 않았다.”
‘기쁨과 노여움과 슬픔과 즐거움을 아울러 이르는 말’은 ‘희로애락(喜怒哀樂)’입니다. <한글맞춤법> 제52항에 따라 한자어에서 본음으로도 나고 속음으로도 나는 것은 각각 그 소리에 따라 적는데, 이 경우 ‘성낼 노(怒)’ 자가 속음인 ‘로’로 소리 나므로 ‘희로애락’으로 적습니다. 같은 이치로 ‘허락(許諾)’, ‘지리산(智異山)’, ‘곤란(困難)’ 등도 각각 속음인 ‘락’, ‘리’, ‘란’으로 발음하고 씁니다.
- 국립국어원 온라인 소식지 <쉼표, 마침표>(2015.12.30.) 중에서
위에서 말하는 ‘속음(俗音)’이란 “한자의 음을 읽을 때, 본음과는 달리 일반 사회에서 쓰는 음”이다. 한글맞춤법 제52항은 “한자어에서 본음으로도 나고 속음으로도 나는 것은 각각 그 소리에 따라 적는다”는 규정이다. (아래 그림 참조)
국문법에선 ‘활음조 현상’
한글맞춤법 제52항에서 규정한 표기를, 국문법에선 ‘활음조(滑音調) 현상’으로 설명한다. “미끄러질 활(滑), 소리 음(音), 고를 조(調)”로 쓰는 활음조 현상은 발음하기가 어렵고 듣기 거슬리는 소리에 어떤 소리를 더하거나 바꾸어 발음하기가 쉽고 듣기 부드러운 소리로 되게 하는 음운 현상이다.
활음조 현상은 음조를 부드럽게 하려고 ‘ㄴ’음을 ‘ㄹ’로 바꾸거나, 발음을 쉽게 하려고 ‘ㄹ’음을 ‘ㄴ’ 따위로 바꾼다. 유음인 ‘ㄹ’은 울림소리여서 발음하기가 ‘ㄴ’보다 수월하다. 그러나 ‘ㄹ’보다 ‘ㄴ’이 발음하기 쉬울 때는 반대로 바뀌기도 한다. 또 모음에 ‘ㄹ’이 덧나는 예도 있다.
① 본음 ‘ㄴ’을 ‘ㄹ’로 바꾸는 것([ ]속은 발음)
困難(곤난)-곤란[놀란] / 論難(논난)-논란[놀란] / 大怒(대노)-대로 / 무녕왕(武寧王)-무령왕
漢拏山(한나산)-한라산[할라산] / 寒暖(한난)-한란[할란] / 許諾(허낙)-허락 / 喜怒(희노)-희로
② 본음 ‘ㄹ’을 ‘ㄴ’으로 바꾸는 것
議論(의론)-의논 / 過濫(과람)-과남
③ 모음에 ‘ㄹ’을 덧붙이는 것
智異山(지이산)-지리산 / 권연(捲煙) → 궐련 / 폐염(肺炎) → 폐렴
④ 자음 ‘ㄱ’과 ‘ㅂ’을 떨어뜨리는 것
십왕(十王)-시왕 / 육월(六月)-유월 / 십월(十月)-시월
이쯤 되면 ‘정말 한글 어렵다’라는 푸념이 나오기 마련이다. 그러나 문법이란 일상생활에서 언중(言衆)이 사용해서 굳어진 것을 표준으로 잡아서 규정한 것이므로 어떤 문자든 예외가 없을 수 없다. 여기서 언중의 선택은 ‘언어 경제’, 즉 발음하는 데 들이는 노력을 줄이고자 하는 목적으로 이루어진다.
쉽게 발음하고자 하여 일어나는, ‘예외’의 현상
‘곤난’을 그대로 발음하면 힘드니 ‘곤란’으로, ‘지이산’보다 ‘지리산’이 편하므로 그리 쓰는 것이다. ‘보녕(保寧)’이나 ‘의녕(宜寧)’ 같은 지명도 ‘이어녕(李御寧)’ 같은 인명도 ‘보령’, ‘의령’, ‘이어령’ 등으로 쓰는 이유도 같다. ‘육월(六月)’을 ‘유월’로 ‘십월(十月)’을 ‘시월’로 쓰기 시작한 것은 언중이고, 국어학에선 이를 활음조 현상으로 설명하고 한글맞춤법에서는 이를 ‘속음’ 쓰기로 규정해 놓은 것이다.
모두 다 쓸 수 있는 것으로 규정해 두면 편하겠지만, 어문규범이 발음이나 맞춤법을 모두 포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공동의 언어 규범을 위한 표준화는 궁극적으로 같은 언어 사용자들이 통일된 규칙을 사용함으로써 의사소통의 편리성을 극대화하고자 하는 목적이기 때문이다.
뉴스가 신문 지면만이 아니라 온라인 매체에도 실시간으로 실리게 되면서 규범에 어긋난 표기는 흔치 않게 발견된다. 문제는 독자들이 그걸 읽으면서 언어의 표준이 헷갈릴 수 있다는 점이다. 신문은 교열이 엄격하게 이루어지는 편이지만,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온라인 매체, 1인 미디어 등에서는 교열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 문제는 더 심각하다.
첫머리의 ‘천인공로’도 그런 상황을 반영한 예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잘못된 표기는 사후 교열이 이루어지기도 하는데, 오늘 검색해 보니 엿새가 지난 1월 5일 지금도 수정되지 않고 있다.
2022. 1. 6.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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