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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따온’ 예산이 반갑지만은 않은 까닭

by 낮달2018 2021. 1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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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친소관계에 따라 운용되는 공적 예산 이야기

▲ 지난 8일 국회에선 한나라당 단독으로 새해 예산안이 처리되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예산이란 ‘공적 살림’의 기반이다. 당연히 이 예산의 합리적 운용은 그 단위 조직의 살림살이를 좌우하게 된다. 그러나 주변을 둘러보면 곳곳에서 공적 예산이 마치 사적 친소관계에 따라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 한다는 걸 빈번히 목격하곤 한다.

 

학교는 학교대로 유능한(?) 교장이 도 교육청에 가서 예산을 ‘당겨온다.’ 지역의 시도의원이나 국회의원은 시도 예산이나 나라 예산에서 역시 거액을 ‘따와’ 자신의 마당발을 증명하려 한다. 이런 현상은 물론, 애당초 쓸 수 있는 돈은 한정되어 있고, 써야 할 돈은 넘치니 일어나는 일이긴 하다.

 

공공예산은 ‘부잣집 마나님의 전대’가 아니다

 

그러나 자신의 유능을 증명하기 위해서 동원하는 공치사 가운데, 이른바 ‘실세’의 이름이 나오고, 그 친소관계가 예산배정의 열쇠였다는 식의 이야기가 어지럽다. 그런 이야길 들을 때마다 나는 머리를 갸웃하지 않을 수 없다.

 

무슨 공공의 예산이 부잣집 마나님이 맘에 드는 자식에게 전대에서 지전 꺼내주듯 하는가 말이다. 어려운 상황에서 필요한 예산을 배정받은 당사자의 이바지를 폄하해서가 아니다. 최소한도 이는 공적 예산이다. 시장의 장사꾼이 전대에서 이리저리 꺼내 맞추는 돈이 아니라는 뜻이다.

 

▲ 김광림 의원(안동) ⓒ 김광림 누리집

당연히 예산이란 친소관계가 아니라 사업이나 정책의 우선순위에 따라 배정되어야 하는 것이다. 한정된 예산에서 그런 방식으로 예산이 배정되면 결국 이는 상대적 약자의 불이익으로 끝나게 된다. 한쪽이 받으면 다른 쪽은 빈손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처럼 사적 이해관계에 따라 예산배정이 이루어질 때 누가 그것을 쉬 받아들이겠는가.

 

허두가 길었다. 여당이 지난 8일 내년도 예산안을 강행처리하고 난 뒤 그 후폭풍이 거세다. 마땅히 책정되어야 할 예산이 죄다 빠진 게 여론의 지탄을 받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이른바 실세들이 자신들의 지역구 예산은 빼먹지 않고 잘 챙겼다는 뉴스를 들으며 든 생각이다.

 

보도에 따르면 한나라당은 예산안 처리 직전에 이른바 ‘형님 예산’ 등 4600억 원의 예산을 밀어 넣었단다. 이는 <경향>이 한나라당 증액 요구사항 자료를 입수해 이를 이번에 통과된 내년 예산과 비교해 본 결과다. 기사의 원문을 그대로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 관련 기사]

 

예산 강행처리, 그 ‘대차대조부’를 보니

 

증액된 사업 가운데 경남 700억 원(38건), 부산 293억 원(12건), 울산 29억 원(4건) 등 ‘PK 예산’은 1012억 원, 대구 277억 원(11건), 경북 1795억 원(13건) 등 ‘TK 예산’은 2072억 원에 달했다. 영남지역 예산이 전체 증액 예산의 66.8%를 차지했다.

 

특히 경북 안동이 지역구인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계수조정소위 위원인 김광림 의원이 ‘총대’를 메고 이상득 의원의 지역구인 포항 관련 사업을 증액시켰다. 김 의원은 포항~삼척 철도와 포항~울산 복선전철과 관련, 신규로 2천억 원씩 요청해 각각 700억 원과 520억 원을 따내는 등 4건에서 1340억 원을 증액시켰다.

 

[중략]

 

자료에 따르면 한나라당 계수조정소위는 김광림 의원이 경북, 서상기 의원이 대구, 권성동 의원이 강원, 여상규 의원과 이주영 예결위원장이 경남을 맡는 식으로 철저하게 지역을 배분해 증액을 요청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때문에 호남의 증액 사업은 2건 55억 원, 충청은 1건 5억 원에 불과했다. 서울은 9건 141억 원이 증액됐다.

 

계수조정소위 위원들의 ‘지역구 챙기기’도 뚜렷했다. 김광림 의원은 ‘형님 예산’ 4건을 제외하곤 6건 285억 원이 그의 지역구인 안동 예산인 것으로 나타났다. 권성동 의원도 지역구인 강릉 예산 11건 170억 원을 챙겼다.

 

이 기사가 유독 눈에 더 띄는 것은 거기 낯익은 지역구 이름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지난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된 뒤, 곧 한나라당에 입당한 김광림 의원의 지역구가 여기다. 기획재정부 출신의 김 의원은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계수조정소위 위원이었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한나라당은 큰일(!)을 해냈다. 날치기로 처리한 새해 예산안에는 영·유아 필수예방접종 사업 확대를 위한 예산을 비롯하여 결식아동 급식 지원 예산이 모두 ‘0’ 배정, 즉 전액 삭감되었다. 대신 한나라당 예결위의 계수조정위원들은 자당 동료의원들의 이해는 충실히 반영하였다.

 

거기에서 김광림 의원의 활약을 읽는 마음은 씁쓸하다. 그는 ‘총대’를 메었단다. 전체 국민이 아니라 자당 실세들의 이해를 위해서. 그뿐이 아니다. 그는 그 과정에서 자신의 지역도 ‘챙겼다’. 285억 원이면 전체 증액 예산 가운데 무려 6%에 해당하는 액수다. 충청지역의 증액 예산 5억에 비기면 무려 57배다.

 

지역구 의원의 활약상(?)이 반갑잖은 까닭

 

이쯤에서 그의 능력과 마당발을 기려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가 계수조정소위 위원으로 ‘따낸’ 예산은 지역에 쓰일 것이니 그게 나쁜 일이라고는 할 수 없다. 개중에는 지역주민들의 숙원사업도 들어 있을 터이니 지역주민에게도 좋은 일이다. 그러나 여전히 입맛이 쓴 까닭은 무엇일까.

 

김광림 의원이 따온 예산의 내용이 궁금하여 그의 누리집에 가 보았다. 그러나 사안의 성격 탓인지 누리집에 증액 예산과 관련된 정보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로서도 본말이 뒤바뀐 예산 처리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던 걸까.

 

김 의원이 따낸 예산에 ‘A형 간염 백신 지원 예산’과 ‘결식아동 급식 지원 예산’이 포함되어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할 필요는 없겠다. 서민 예산의 삭감을 확인하지 않은 과실을 그에게만 묻는 것도 그리 공정해 보이지 않는다. ‘형님 예산’을 배려한 그의 충정도 정당의 관습과 한계에 책임을 떠넘길 수 있을 터이다.

 

그러나 여전히 남는 것은 무릇 ‘선량’들이란 단순히 지역 이해의 대변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국회의원은 지역구에서 선출되지만, 지역구민에 대해서가 아니라 헌법기관으로서 전체 국민에게 책임을 진다. 지역구 국회의원이 지방의원들과 달리 주민소환의 대상이 아닌 것도 같은 이유라고 한다.

 

민주주의의 요람이어야 할 국회에서 해마다 연출되는 날치기의 악순환에 대한 책임은 마땅히 국회의원 모두의 책임이다. 물론 우리 유권자 역시 그 책임에서는 자유롭지 않다. 그런 수준의 선량들을 뽑은 것은 전적으로 우리 유권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르긴 몰라도 이 예산 정국이 끝나고 다시 선거의 계절이 오면 많은 선량들은 유권자를 향해 ‘예산을 따오는’ 자신의 솜씨를 한껏 뽐낼 것이다. 그때 2010년 연말 국회에서, 무너지는 민주주의를 우울하게 지켜보았던 유권자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관습처럼 지난 일은 잊어버리고 ‘그가 예산을 따 와서 한 일이 많다’고 그의 능력을 기리게 될까, 어떨까.

 

 

2010. 12. 12.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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