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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길 위에서

18대 대선 다음 날 아침에

by 낮달2018 2021. 1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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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대 대통령선거 다음날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선거일 저녁에 출구조사 결과를 보고서 나는 우리가 부질없는 희망의 덫에 갇혀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른 예측 결과가 있었지만 나는 8시쯤 자리에 들었다. 부질없음에 다시 부질없음을 더할 일은 없는 것이었다.

 

까무룩 선잠에 빠져 있다가 10시쯤 깨어보니 이미 예측은 사실이 되어 있었다. 딸애는 제 방으로 들어가 버렸고, 아내는 무심한 표정으로 텔레비전 화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스마트폰으로 뉴스 몇 개를 읽다가 아내와 함께 자리에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조간신문의 선거 관련 기사를 나는 건성건성 넘겼다. 승패가 갈리고 나면 이런저런 관전평, 승부를 가른 원인 분석이 넘친다. 하나같이 날카롭고 논리적인 분석 기사다. 마지막 면에 실린 곽병찬 논설위원의 칼럼에 눈이 머물렀다.

 

그는 이 선거를 ‘유신의 퇴장, 그 트라우마의 치유’와 ‘유신의 명예 회복과 특권사회의 강화’라는 틀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선거의 결과가 후자로 귀결되는 데 대한 우려를 드러냈다. 그리고 그것은 “불행하게도 이는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한 오래된 싸움이 계속되어야 할 것임을 뜻한다”라고 하면서.

 

대중의 일천한 정치의식도 거기서 별로 멀지 않을 것이다. 나는 박근혜가 낙선해 공언한 대로 정계를 은퇴한다면 수십 년 동안 이 땅에 떠돌고 있는 박정희의 망령도 사라지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 시대를 그 이전 시기와 다르게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들이 지키고자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도하 신문들은 이 대회전의 결과를 ‘위기 앞에서 보수 세력의 총결집’으로 전한다. ‘선거 종반 여론조사의 흐름이 초박빙 상황으로 공표 금지되면서 보수 성향 표심이 총결집’하면서 ‘5060 세대의 투표율이 예상보다 높았는데, 특히 50대의 투표율은 90%에 육박했’단다. 그 50대들이 지향한 것은 ‘안정’이란다.

 

경이적인 50대 투표율을 바라보면서 나는 50대인 내가 그 주류에 끼이지 못한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한다. 그러면서 머리를 갸웃한다. 그들이 지키고자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진보 진영의 압박 앞에서 이른바 ‘보수 진영’의 편에 기꺼이 선 그들이 지키고자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들이 지키고자 한 것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나 ‘반값 등록금’, ‘무상보육’ 따위로 인해 훼손될 가치일까. ‘사병 복무기간 18개월로 단축’이, ‘일자리 창출’로 말미암아 잃게 되는 가치일까. 아니다, 물론 아니다. ‘공평한 기회’, ‘공정한 과정’, ‘정의로운 결과’가 그것을 위협하는 것도 아닐 터이다.

 

그들이 지키고 싶은 가치, 그들이 지향하는 ‘안정’이 야권이 부르짖은 ‘새 정치’ 때문에 위협받는 것일까. 그것은 한편으로 익숙한 정치인과 익숙한 정책을 통해서만 이룰 수 있는 것일까. 설마, 그들이 지키고자 한 것이 퇴행한 민주주의와 언론의 자유, 방송의 사유화, 권력의 시녀가 되어버린 검찰이기야 하겠는가.

 

그들이 결코 위협받고 싶어 하지 않는 ‘안정’의 정체가 나는 정말 궁금하다. 서둘러 투표장으로 나간 50·60세대들이란 우리 동네 아저씨거나 아주머니들일 터인데, 그들을 똘똘 뭉치게 한 가치와 지향은 우리가 가진 것과 얼마나 같고 얼마나 다를까.

 

풀리지 않는 의문은 숱한 사람들의 탄식과 분노의 언사와 술잔 위로 묻히고, 2012년이 저물어간다. 내년은 올해보단 나쁘지 않아야 할 텐데, 해마다 되풀이하는 기대로 세밑을 기다린다.

 

 

2012. 12. 20. 낮달

 

 

* 덧붙임

선거 결과에 의기소침할 필요는 없다.

혹 그런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는 이에겐 한인섭 교수(서울대)의 트위터 맨션을 전해드린다.

 

선거에 이겼다고 국민을 쫄게 해서도 안 되고,

선거에 졌다고 이유 없이 쫄아서도 안 됩니다.

선거에 이겼다고 당선자가 지배자가 될 것을 허용한 것 아닙니다.

선거에 졌다고 무슨 패전한 포로처럼 취급받을 일도 없습니다.

민주공화국에서 국민은 ‘언제나’ 주인입니다.

언제나 ‘주인 노릇’ 제대로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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