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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풍진 세상에 /미디어 리포트

KBS 파업, 혹은 언론인들의 ‘존재 증명’

by 낮달2018 2021. 7.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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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인들은 어떻게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가

▲ KBS 파업 집회에 참석한 시민과 조합원들 ⓒ이미지 프레시안 이상엽

KBS의 새 노조((전국언론노조 KBS본부)의 파업이 시작된 지 20일째다. 그러나 KBS의 파업은 널리 알려진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KBS가 권력에 장악되는 과정이나, 이에 저항하기 위해 ‘되는 것도, 안 되는 것도 없는’ 기존 노조를 탈퇴하고 새 노조를 만든 과정을 눈여겨 본 국민들에게 KBS 파업은 일종의 가능성과 희망의 메시지로 읽히는 것은 분명하다.(*기존 KBS노동조합은 회사별 노동조합이고, 새로 만든 노조는 신문, 방송, 출판, 인쇄 등의 매체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노조인 언론노동조합의 KBS본부를 말한다.)

 

KBS 아나운서들의 파업 ‘동참’

 

우리 집에선 KBS를 잘 보지 않게 된 지가 오래되었다. 파업 소식을 듣고 얼마 되지 않아서 우연히 8시 뉴스를 틀었더니 새 노조에 가입한 것으로 알고 있었던 정세진 아나운서가 방송을 하고 있었다. 딸애도 이상했는지, 아나운서는 파업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모르기로 치면 아빈들 별 수 있으랴. 글쎄다, 새 노조 조합원이 맞는데……. 하고 나는 말꼬리를 흐리고 말았다. KBS 파업 소식은 주로 ‘미디어 오늘’, ‘미디어스’ 따위의 매체를 통해서 듣고 보았다. 그러다가 며칠 전에야 정세진 아나운서가 방송에 나온 이유를 알았다.

 

KBS 사측이 노조의 파업에 대해 ‘불법’이라며 억지를 부리고 있다는 사실은 익히 아는 바다. 결국 사측은 일부 프로그램에 ‘대체인력을 투입’하는 등의 불법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사실도. 그예 지난 14일에는 아나운서 조합원까지 파업에 참여하기로 했다고 한다.

 

 

새 노조 누리집에서 확인한 아나운서 조합원들의 성명서 “타오르는 파업의 불길에 우리의 힘을 더하리라!”는 웅변으로 저간의 사정을 밝히고 있다. 아나운서들은 이번 파업에도 불구하고 ‘현실을 고려해 일부 조합원은 전담 프로그램을 진행해왔다’며, 그것이 ‘전문방송인으로서의 공인(公人)의식과 노동자로서의 근로자 의식에서 나온 고육지책’이었음을 고백한다.

 

그러나 ‘회사의 협상 태도’에 대한 실망과 분노로 파업에 동참할 것을 선언한 이 성명서에서 아나운서들의 목소리는 매섭다. 이들은 성명에서 자신들이 ‘영혼 없는 방송기능인이 아니’고 ‘언론인’이며 ‘우리말의 수호자’고 ‘방송으로 국민과 함께하는 봉사자’라고 선언한 것이다.

 

다른 매체를 통해서 나는 새 노조의 아나운서 조합원이 17명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이형걸, 이상호, 정세진, 김윤지, 이광용, 박노원, 최승돈, 김태규, 최승돈, 오태훈, 이상협, 홍소연 아나운서 등이 이번 파업에 동참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들의 이름과 면면을 기억하면서 나는 일종의 동류의식으로 이들을 바라보고 있는 자신을 깨달았다.

 

그러고 나서부터는 자연 KBS에 등장하는 아나운서를 눈여겨보지 않을 수 없다. 스포츠 뉴스를 진행하는 늘 미소 띤 여자 아나운서를 바라보면서 나는 습관적으로 생각을 정리하곤 한다. 아, 저이는 조합원이 아니로군, 저이는 기존 노조 소속일까, 아니면 비조합원인가…….

 

민주화 운동의 제도화와 함께 사람들은 동료를 동지인가 아닌가로 바라보기 시작했던 것 같다. 물론 그게 한 인간에 대한 이해의 전부일 수는 결코 없을 터이다. 그러나 한갓진 소속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꿈과 현실’의 공유 여부를 단박에 파악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영혼 없는 방송기능인이 아니라 언론인이다’

 

우리끼리 나누는 이야기지만 우리는 ‘그’가 조합원이냐는 질문으로 그에 대한 이해를 시작하는 것이다. 물론 조합원이라는 사실만으로 그의 세계관을 규정하는 것은 녹록한 일은 아니다. 전교조가 교원의 사회경제적 지위 향상만이 목표가 아니라 ‘교육 민주화’의 이상을 견지하듯 언론노조 역시 ‘민주 언론’과 ‘공정방송’의 이상을 지켜왔다.

 

▲ 손석희 아나운서(1992)

전교조가 교육계와 교단 현장에서 거둔 적지 않은 성과와 마찬가지로 언론노조와 언론 노동자 역시 언론노조의 존재 이유를 유감없이 증명해 왔다. MBC가 그랬고, 관제언론에서 공영방송, ‘국민의 방송’으로 거듭나는 과정에서 KBS 역시 그랬다.

 

지금은 MBC를 떠난 손석희 교수가 오늘날 확보한 방송계 영향력 역시 그 출발점은 MBC 파업이었다. 1988년 파업 전 쟁의 때 주말 9시 뉴스데스크 앵커였던 손석희는 고민하다 양복 안쪽에 있는 와이셔츠에 ‘공정방송 쟁취’라는 리본을 달고 뉴스를 진행했다.

 

“달고 나갈 용기도 없고 달지 않을 용기도 없었던”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 때문에 그는 노조 활동에 적극 참여하게 되고 1992년 파업에는 구속되기도 했다. 그때 한창 떠오르는 별이었던 손석희 아나운서의 수의 입은 모습은 대중들에게 가열한 충격이었던 듯하다. 그리고 그것이 파업에 대한 대중의 지지를 모을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2008년 미디어 관련법 개정안 저지를 위한 파업과 올해 김재철 사장 퇴진을 요구하며 이루어진 MBC 파업에 간판 아나운서들이 발 벗고 나선 것은 대중에 대한 그들의 영향력과 호소력이 다른 구성원들에 비해 훨씬 크기 때문이다.

 

단순 비교할 수는 없지만, 현재의 언론 상황도 그 시절의 그것 못지않게 심각한 상황이다. 그나마 MBC가 버티고 있긴 하지만 KBS는 거의 예전의 ‘관영 방송’ 수준으로 돌아간 느낌이다. 이제 바야흐로 ‘국민의 방송 KBS’는 ‘개비에스’를 거쳐 ‘권력의 방송 김 비서’가 되었다고 조롱받고 있을 정도니 말이다.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이상호 아나운서가 말했듯 아나운서는 ‘얼굴을 드러내는 직업’이다. 그것은 달리 말하면 노조 가입과 파업 참가는 ‘그것 자체를 버린다’는 뜻이다. 스스로를 버린다는 결정을 하는 것은 아나운서에게는 실존적 결단이다. 그런 결단을 가능케 한 것은 ‘언론인의 부끄러움’일 터이다. 이번 파업에 동참한 아나운서들은 결국 언론인으로서 자기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서 대중에게 자신을 아낌없이 드러냈고, 그것으로써 자기 자신을 버린 셈이다.

 

언론인들에게 파업은 실존적 ‘존재 증명’이다

 

전체 구성원 6천여 명 가운데 1천도 못 되는 새 노조의 주력인 기자와 피디들의 파업이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때로 이상을 지키거나 그것을 싸워 얻기 위해서는 이기는 싸움뿐 아니라 이길 수 없는 싸움도 피하지 못한다.

 

▲ 지하철 홍보에 나선 정세진 아나운서

이들 소수 노조가 지키려 하는 것은 억대 연봉도 아니고 봉급 인상도 아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일터가 소수 권력의 그것이 아니라 다수 국민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공정하고 불편부당한 방송으로 되돌리기 위해서 싸운다. 간신히 되찾은 ‘국민의 방송’의 명예와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 그들은 방송을 접은 것이다.

 

지난 18일, KBS TV 시청자들은 MBC나 SBS 시청자와는 달리 4대강 공사를 강행하다가 침수된 경남 함안-합천보 공사 현장에서 준설토가 쓸려나가면서 부산 경남 시민들의 식수원인 낙동강이 시뻘겋게 변한 모습을 전혀 볼 수 없었다. KBS 노조원들은 권력의 구미와 무관하게 사실(팩트)을 보도할 수 있는 일터를 되찾기 위해 싸우고 있다.

 

이 ‘국민의 방송’은 여당 국회의원에게서조차 ‘대중의 사랑을 받는 연예인을 권력으로 다스리려’ 한다고 질타당했다. 그러고도 모자라 ‘블랙 리스트’ 존재 연부를 밝히라는 여자 코미디언을 고소하는 졸렬함을 스스로 연출함으로써 자신의 존재 이유를 온 천하에 고백했다. 마찬가지로 KBS 노동조합의 언론인들은 지금 이 ‘비상식’과 ‘억지’와의 싸움을 통해 자신들의 실존적 존재 이유를 확인하고 증명하고자 한다.

 

다행히 소수지만, 지금 KBS 새 노조의 조합원들은 매우 신명 나게 파업을 끌어가고 있다. 시민들과 함께하는 여러 가지 형식의 집회나 행사를 통해 이들은 자기 선택의 정당성을 확인하고 시민들과의 공감대를 넓혀가고 있는 것이다. 새 노조 누리집에 이어지고 있는 시민들의 지지나 연대의 온기는 다시 ‘도로 관영 방송’으로 퇴행하는 걸 지켜볼 수만은 없다는 시청자들의 단호한 의지라 말해도 무방할 듯하다.

 

이들의 싸움은 쉽지 않겠지만, 싸움의 결과는 분명하다. 그것은 우리 역사가 재현해 왔던 숱한 민주화 투쟁의 귀결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지하철에서 승객들에게 파업을 홍보하고 있는 아나운서 조합원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마음속 연대와 지지의 뜻을 거듭 확인해 본다.

▲‘추적 60분’의 막내 PD가 만든 ‘추적 6분’. 새 노조 누리집에서 길어왔다.

 

2010. 7. 19.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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