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지대조세제‘ 설파한 고전,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
내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최근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이재명 후보와 추미애 후보가 각각 도입을 공약함으로써 종부세의 단점을 보완한 이상적인 국세 보유세로 ‘국토보유세’가 떠올랐다.
문재인 정부의 시정 가운데, 부동산 정책의 실패는 자타가 공인하는 실정의 핵심이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정권을 내주는 게 억울할 게 없는 이 뼈아픈 정책 실패는 결국은 정권 재창출을 가로막는 가장 큰 쟁점이 되었다.
이재명· 추미애 후보의 ‘국토보유세’
대선에 출마 예비 후보들이 앞다투어 문제의 해결을 주장하지만, 정작 어느 것도 그리 탐탁하지 않아 보인다. 그나마 지지 여부와 무관하게 이재명 후보의 ‘국토보유세’는 그가 가장 유력한 여당 후보로, 행정가로서 쌓은 만만찮은 평판과 이어지면서 눈길을 끌고 있다(관련 기사 : 집값 잡는 국토보유세, 이재명·추미애가 옳다)
지인에게서 헨리 조지(Henry George 1839~1897)의 역저 <진보와 빈곤>을 읽어보라는 권유를 받고 인터넷 서점에서 검색해 보니 <진보와 빈곤>의 완역본은 김윤상 옮김 비봉출판사 판(2016·608쪽), 이종인 옮김 현대지성 판(2019·640쪽)이 있다.
나는 헨리 조지의 조지주의(Geoism)를 ‘지공주의(地公主義)’라고 이름 붙인 김윤상 전 경북대 교수가 박창수 토지정의시민연대 정책위원과 함께 엮은 <진보와 빈곤-땅은 누구의 것인가>를 선택했다.
일찍이 ‘토지 공개념’과 지대조세제 이론을 도입하여 발전시킨 김윤상 교수의 <진보와 빈곤>은 살림출판사의 ‘e시대의 절대 사상’ 시리즈로 2007년 출간된 초판의 개정판이다(2021년 2월 11쇄). 두께가 완역본의 절반(268쪽)도 되지 않는 이 책은 유시민 작가도 추천한 바 있다.
굳이 완역본을 피한 것은 읽어낼 자신도 없으면서 차일피일 책과 씨름해야 하는 상황을 피하고 싶어서다. 고전의 완독이란 정말 얼마나 힘든 일인가 말이다. 책은 1부에서 시대와 작가, 사상을 소개하고 2부에는 헨리 조지의 본문 중 사상과 직접 이어진 부분을 가려 뽑아 실었다.
헨리 조지, 빈곤의 원인을 ‘토지’에서 찾은 경제학자
저자 헨리 조지는 19세기 후반을 살았던 미국 경제학자·사회개혁가다. 가난으로 14세에 제도 교육을 떠나 평생 독서에 힘쓰면서 인쇄공과 기자를 거쳐 독학으로 최고의 경제학자 반열에 올랐다. 그는 수많은 사상가, 학자, 정치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는데 특히 대문호 톨스토이가 <사회문제의 경제학>을 읽고 그의 열렬 추종자가 되어 이후 25년을 헨리 조지 사상 전파에 바쳤다는 얘기는 유명하다.
그가 활동한 19세기 후반 미국은 급속한 공업화로 물질적 진보를 구가하고 있었지만, 실업과 저임금에 따른 빈곤 문제가 사회문제가 되었던 시대였다. 그는 물질적 진보에도 빈곤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점에 대해 고민하다가 문제의 원천이 ‘토지’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1879년 대표작 <진보와 빈곤>을 썼다.
그의 경제학은 기존 통설을 거부하는 데서 출발했다. 그는 산업혁명 이후 생산력의 비약적 발전에도 불구하고 빈곤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를 탐구했고, 그 고갱이를 <진보와 빈곤>에 담았다.
당시 경제학은 빈곤의 이유를 ‘임금기금설’과 맬서스의 <인구론>으로 설명했다. 임금기금설은 노동자 1인당 임금이 ‘자본의 양/노동자 수’로 정해진다고 본다. 그러나 ‘임금은 자본에서 나온다’는 것에 대해 헨리는 임금은 자본이 아니라 ‘임금이 그 대가로 지불되는 노동의 생산물’로부터 나오므로 그것은 오류라고 갈파했다. 이는 가죽으로 구두를 만들 때 구두는 노동의 결과이면서 그 대가가 되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또 “인구의 자연적 증가는 기하급수적이지만, 생존 물자(식량)는 산술급수적으로밖에 증가하지 않으므로” 과잉인구로 인한 식량부족은 필연적이며, 그로 인해 빈곤도 피할 수 없다는 맬서스의 <인구론>도 진정한 증거가 없는 오류라고 보았다.
프랑스대혁명 이후에 나온 <인구론>은 급진적 변화를 두려워하는 기득권을 위협하거나 강자의 이익을 적대시하지 않으면서 환영받았다. 또 그것은 “현존하는 빈곤과 불평등의 책임이 합리적이지 못한 제도 때문이 아니라 생명을 창조해 인구를 증가시키는 하나님의 법칙에 있다고 함으로써 빈곤과 불평등을 정당화”했지만, 이 이론은 오늘날까지 아무도 입증하지 못했다.
헨리는 현실에서 진보와 빈곤이 함께 나타나는 원인은 “생산에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는 지주가 토지 가치를 차지하는 것을 합법화 하는 토지사유제에 있다”고 했다. 인구증가와 함께 기술의 개선으로 물질적 진보가 이루어지지만, 동시에 지대(토지 사용의 대가)의 절대 총액이 증가하고, 총생산에서 지대의 비중도 커지므로 이 혜택이 노동과 자본에 돌아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대의 개인 소유를 보장하는 토지사유제에서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토지투기 때문에 이는 더욱 심화된다.
토지사유제 폐지 대신 지대를 정부가 환수하는 지대조세제 제안
결국 이 문제는 ‘토지사유제’를 없애야 해결된다. 그러나 그는 이미 이 제도가 관습화된 나라에서 토지를 공유화할 필요는 없고 단지 매년 토지의 연간 임대 가치인 지대를 정부가 환수하고 다른 조세를 면제하는 제도로도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 제도가 바로 ‘지대조세제’다. 이재명·추미애 후보가 주장하는 국토보유세가 바로 지대조세제에 따른 세금이다.
“국토보유세는 과세 대상자가 극소수 부동산 소유자로 한정되는 종부세와 달리 모든 토지 소유자에게 부과되고, 인간 노력의 소산인 건물을 과세 대상에서 제외하며, 세수 증가분을 전액 사회적 배당금으로 모든 국민에게 똑같이 분배해 조세 저항을 차단한다는 점에서 종부세보다 우수한 세금이다.” (전강수 , 집값 잡는 국토보유세, 이재명·추미애가 옳다 가운데)
헨리 조지의 사후 100년이 흘렀는데도, 그 실천적 걸음을 떼지 못했으나 현실 개혁과 사회문제의 해결책으로서 지공주의의 의미는 나날이 새로워지고 있다. 조지 역시 지공주의가 순탄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진보와 빈곤>에서 그의 진리가 궁극적으로는 실현될 수 있으리라고 보았다.
토지공개념을 받아들인 한국, 지대조세제로 나아갈 수 있을까
지공주의를 가로막는 장애는 원칙과 정의보다 이해관계로 얽혀 있는 사회가 가장 큰 걸림돌이다. 기득권을 해체하면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개될 지공주의는 권력자나 부자 등의 총공세를 헤쳐 나가야 닿을 수 있는 ‘진리’인 까닭이다.
옮긴이들의 생각도 다르지 않다. 그러나 국민 대부분이 토지 공개념에 찬성하는 유례없는 국가이자, 토지 공개념을 현실 정책으로 채택한 드문 나라라는 점에서 희망적이다. 헌법재판소에서는 1989년, 토지 공개념을 ‘토지국유화’와 다른, ‘토지의 공공재적 성격’으로 규정한 것이다.
자국 헌법에 토지 공개념을 규정하고 있는 국가로는 독일과 이탈리아가 있다. 미국은 헌법에 규정하는 대신, 건물에는 낮은 세율을, 토지에는 높은 세율을 적용하는 등의 지역마다 별도의 조세정책을 마련해 토지 공개념의 정신을 실현하고 있다.
헨리 조지는 책에서 “인간은 토지에서 태어나 토지에서 물자를 얻어 살다가 토지로 돌아간다. 인간은 들판의 풀이나 꽃과 마찬가지로 흙의 자녀이다”라고 갈파했다. 망국적 부동산 투기로 얼룩진 국토를 ‘어머니 대지’로 되돌리려면, ‘토지의 정의’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2021년에 이 땅에 다시 불려온 지대조세제는 여전히 낯설고 멀어 보이기만 한다.
2021. 8. 12.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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