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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맘(mom)’들이 밝힌 사드(THAAD) 반대 촛불

by 낮달2018 2021. 8.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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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의 엄마들, 사드 반대 촛불을 밝히다

▲ 언제나 그렇듯 집회는 참가자들의 묵상으로 시작된다 . 26일 사드 반대 구미 촛불문화제엔 백여 명이 참여했다.
▲ 서명대를 지키는 구미 참여연대 회원들. 참가자들 일부도 자발적으로 서명 권유 등으로 집회에 봉사했다.

지난 26일 밤, 구미에서 한반도 사드 배치 반대 구미시민 촛불문화제가 열린다는 소식을 나는 ‘사드 배치 반대 대구경북대책위원회’에서 만든 단체 카톡방을 통해 들었다. 구미는 ‘성주촛불 50일 맞이 전국 50곳 동시다발 행동’으로 촛불을 밝히는 대구·경북의 여덟 군데 가운데 하나다.

 

26일 밤, 구미시민 촛불문화제

 

당연히 거기 참여하겠다고 마음먹고 있었지만 나는 구미에서 밝혀진 몇 번의 촛불 집회, 그 쓸쓸한 풍경[관련기사 : 잔인한 봄―노란 리본의 공감과 분노(2014/04/26),아이들아, 너희가 바로 새잎이었다(2014/05/01)]을 떠올리며 고개를 갸웃했다.

 

굳이 실망스러웠다고 얘기하기는 그렇다. 16만 인구의 시골 안동에 비겨 세 배인 42만 인구의 공업도시, 2·30대의 비율이 60%가 넘는다는 젊은 도시 구미를 나는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어쩌다 시내 중심가에서 열리는 안동의 집회와 뭐 그리 다르겠냐고 했던 짐작이 빗나가지 않아 집회는 4, 50여 명이 단출했는데 그것은 보수의 본고장이라는 대구 경북에선 일상적인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좋다, 세월호는 ‘나와 무관한 일’이라고 하자. 사드는? 주민들의 격렬한 저항에 부딪힌 성주는 물론이고 김천도 지척이다. 사드 배치 지역으로 성주가 결정되었을 때 안도했던 칠곡처럼 구미는 운이 좋았다. 성주 초전이 제3 부지로 떠오르면서 김천으로 불똥이 튀었지만, 그 영향권에서도 벗어났다. 구미 사람들은 가슴을 쓸어내렸을까.

 

구미역 앞 광장에 닿았을 때 막 집회가 시작되고 있었다. 집회에 참여한 이들의 숫자는 2014년에 비기면 두 배는 될 듯했다. 건성으로 숫자를 헤아려 보아도 얼추 백 명은 넘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만하면 됐다, 나는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집회의 모습을 렌즈에 담기 시작했다.

▲ 성주에서 온 연사가 상주 싸움의 경과를 강하고 확신에 찬 어조로 알리면서 집회는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묵상으로 시작된 집회는 ‘사드 배치 반대 대구경북대책위원회’에서 온 연사의 이야기로 이어졌고 성주투쟁위원회에서 온 이가 성주 싸움의 경과를 강하고 확신에 찬 어조로 알리면서 천천히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는 성주에서 민관이 함께 시작한 싸움을 어그러뜨린 관을 민이 어떻게 극복하고 있는가를 감동적으로 이야기했다.

 

성주를 찾은 김재동이 명쾌한 논리로 국민의 권리를 말하고 사드 배치를 비판하는 영상을 시청하면서 비로소 사람들은 이 문화제를 즐기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영상을 지켜보느라 역 앞을 지나던 행인들도 발걸음을 멈추었다. 나는 그들의 짐짓 관심 없어 하는 표정 속에 숨은 진심은 무엇일까 하고 생각했다.

 

주부 커뮤니티 회원(구미맘)들의 참여

 

나는 서명대를 지키고 초와 종이컵을 나누어주는 참여연대의 회원들을 바라보면서 그 주변에서 서명지를 들고 다니며 행인들에게 서명을 권하는 30대 주부도 역시 회원일 거로 생각했다. 권유를 외면하고 지나는 행인들 때문에 머쓱해 하는 그에게 말을 붙이다가 나는 그녀의 신분에 대한 내 생각이 틀렸다는 걸 알았다.

 

“아니요. 집회에 참석했는데 무어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요.”

▲ 집회 대열의 맨 앞줄에는 초로의 참가자들과 젊은이들이 아이들과 함께하는 모습이 보기에 좋았다 .
▲적잖은 젊은 부모들이 아이를 데리고 집회에 참여했다 . 아이들도 나름대로 부모를 따라 제몫 (?) 을 하고 있다 .

나는 그제야 문득 광장에 나란히 앉은 집회 참가자들을 유심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보통 지역의 집회에 참석하는 이들은 대체로 시민단체나 노동단체 소속이기 쉽다. 그런데 나는 맨 앞줄에 앉은 초로의 참가자들 외에는 대부분 30대 남녀들이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그러고 보니 집회에서 만나게 되는, 한눈에 척 소속 단체가 어딘가 짐작되는 이들이 아니었다. 옷차림도 표정도 그들과는 다른 이들 남녀는 자못 진지한 표정으로 집회에 열중하고 있었다. 개중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있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처음엔 열차 시간이 남은 여행자들이라고 생각했던, 대열 뒤쪽의 택시 정류장 앞에 서 있던 사람들도 집회에 참여한 사람들이었다. 아이를 업거나 안고, 유모차를 끌고 있던 젊은 부모들도 앞에다 촛불을 켜놓고 있었던 것이다.

 

잠시 후, 자유발언 시간에 마이크를 잡은 한 여성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이들이 한 유명 포털의 구미 지역 주부 커뮤니티의 회원들이라는 걸 알았다. 대열 뒤쪽의 젊은 엄마는 카페에서 의기투합한 적지 않은 회원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나왔다고 말해주었다.

▲ 한 유명 포털 주부 커뮤니티 회원들이 대거 집회에 참여했다 . 이들은 아이들에게 평화를 물려주고 싶어 했다 .

나는 머리를 끄덕였다. 이른바 아이를 데리고 집회에 참여한 이들 여성을 ‘유모차 부대’라고 부른 건 2007년 광우병 시위 때였다. 그때 젊은 엄마들을 집회로 나가게 한 것은 “우리 아이들에게 광우병 쇠고기를 먹일 수 없다”는 절박한 어머니의 마음이었다고 했던가.

 

2016년 구미역 앞 사드 반대 집회에 나온 어머니들의 마음도 다르지 않았다. 차분하게 발언하는 동료를 향해 주부들은 환호성을 지르고 손뼉을 치며 동질감을 표시했다. 우리 아이들에겐 평화를 물려주어야 하지 않겠냐고 반문하는 젊은 어머니의 목소리에 물기가 어렸고, 사람들은 큰 박수로 화답했다.

 

사람들은 성주에서 김천을 오가며 공방을 벌이고 있는 사드를 바라보며 우리 지역에 오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안심이라고 생각한다. 내게, 그리고 내 가족에게 불이익을 주지 않는 한 이건 나의 문제가 아니라고 그들은 생각한다.

 

“이건 우리 모두의 문제예요!”

 

그러나 이 젊은 어머니들은 사드가 어디로 가든, 이 땅에 배치되는 한 그건 나의 문제이고, 내 아이들이 장차 감당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 것이다. 2007년에 유모차를 끌고 광장에 나갔던 어머니들의 문제의식은 그로부터 9년 후에 사드라는 무기체계로 말미암아 되살아난 셈이었다.

 

집회는 자유발언에 나선 장년 남성의 소박하지만, 정곡을 찌른 발언으로 청량감을 더했다. 처가에 들렀다가 집회에 참석했다는 그는 대열 뒤의 택시 정류장에서 대기하던 택시 기사들이 집회 참가자들을 비난하는 이야기를 들었던 모양이었다.

 

“택시를 타는 사람은 대통령도 아니고 국회의원도 아닙니다. 택시를 타는 사람은 여기 모인 사람들과 같은 서민입니다. 맨날 종편만 보지 말고 여기 있는 서민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그걸 아는 게 더 중요하지요. 왜냐하면 이 사람들이 바로 기사님들 택시를 탈 사람들이니까요.

 

사드가 있어야 북한의 미사일 공격을 막을 수 있다며 사드를 지지하는 분들이 있는데요. 사실은 공격도 막지 못하면서 인근에 사드가 배치되면 여러분들 집값만 떨어질 거라는 걸 아셔야지요.”

 

사람들로부터 ‘사이다’ 소리가 연이어 나올 정도로 그는 큰 박수를 받았다. 보수적 사고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을 겨냥한 그의 논리는 아주 단순 명쾌했다. 이른바 먹물들의 현학적인 논리보다 그의 단순 소박한 발언이 훨씬 더 원초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 9월 10일을 기약한 집회의 마무리 . 두 시간 넘게 이어진 집회를 마친 참가자들의 표정이 밝다 .

집회는 다음 전국 동시다발 집회로 잡힌 9월 10일을 기약하면서 막을 내렸다. 사회자는 구미역 앞에서 사드 반대 집회가 잡히자, 집회가 인파로 넘칠 거라고 예상한 경찰이 잔뜩 긴장했다는 뒷이야기를 전했다. 그러면서 다음 집회에서는 이들을 실망시키지 않도록 하자고 하면서 집회를 마무리했다.

 

같은 날 대구 시내 집회에서는 백여 명이 모여 인간 띠잇기를 했다고 한다. 비록 인간 띠잇기는 아니었지만 구미 지역의 촛불문화제에는 무엇보다도 젊은 어머니들의 간절한 소망과 참여가 있었다. 어쩌면 이번 반사드 싸움은 여느 투쟁과 달리 전개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2016. 8. 27.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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