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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THAAD), ‘폭탄 돌리기’는 그만!

by 낮달2018 2021. 8.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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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이 시작된 경북 지방의 사드 폭탄 돌리기

▲ 투쟁 과정에서 사람들은 사드 배치에 관한 생각도 일정하게 갈피를 잡은 듯하다. 7월 29일, 성주(이하 같음)

나라 안팎이 사드(THAAD,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문제로 시끄럽다. 발표 이전에 칠곡에서 달아오른 반대 열기는 이웃 성주가 배치지역으로 확정 발표되면서 제대로 뜨거워졌다. 블로그에 기사 ‘내 고향 칠곡과 사드(THAAD), 그리고 이웃 성주’를 쓴 게 지난달 26일이다.

 

기사에서 썼듯 나는 ‘오래 길들어 온 우리 지역의 보수성이 이 신종 무기 체제 앞에서 무력하지 않을까’하고 저어했다. 그러나 3천여 군민이 운집한 집회는 예의 ‘보수성’ 따위는 지역민들의 공통된 이해 앞에서 별 맥을 추지 못한다는 사실을 입증해 주었다. 지역의 보수적 이해를 대변하는 여당 당적의 군수와 군 의회 의장이 머리를 깎으면서 ‘미군 철수’를 운운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풍문에 발끈했던 칠곡에 비기면 성주의 대응이 훨씬 강력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성주가 배치 터로 발표되었기 때문이었다. 인구가 칠곡(12만)의 1/3에 그치는 4만5천의 성주는 그러나, 5천여 군민이 모여서 ‘생존권을 위협하는’ 사드 배치를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저지’하겠다고 결의했다.

 

이후 ‘성주 사드 배치 철회 투쟁위원회’는 주민 2천여 명이 참여한 상경 투쟁을 벌였고, ‘외부세력’ 운운하는 정부와 보수언론에 파란색의 머리띠와 나비 모양 리본 따위로 정부의 ‘갈라치기’에 대처했다. 이후 군민들은 날마다 성주군청 마당에서 촛불집회를 벌이고 있다.

 

성주의 깨달음, 7월 29일

 

투쟁 과정에서 성주 사람들의 사드 배치 반대에 관한 생각도 일정하게 갈피를 잡은 듯하다. 첫 대응에서는 ‘성주 지역 절대 불가’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 ‘다른 지역에 간다면 용인할 수 있다’는 여지가 있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대응은 결국 이른바 풍선 효과(balloon effect)를 부를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닫기 시작한 것일까. 성주 사람들은 그예 ‘대한민국 어디에도 사드 배치 결사반대’, ‘한반도 평화 위협하는 사드 배치 결정 당장 철회하라’ 등의 구호를 내걸기 시작한 것이다.

▲ 성주는 생명의 고을이다. ‘사드’를 ‘死드’로 표기하고 있는 현수막.
▲ 성주의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들이 나와 주민들의 뜻을 지지하고 각 단체의 회장이 항의의 뜻으로 삭발했다.

성주를 찾은 것은 7월 29일이었다. 나는 오후 6시쯤 성주에 들어가 두어 시간쯤 거기 머물렀다. 읍내는 ‘사드 반대’ 현수막으로 도배가 되어 있었고, 군청 앞마당에는 집회 준비가 한창이었다. 날씨는 숨이 막힐 정도였지만 어둠살이 내리면서 사람들이 하나둘 들어와 자리를 채우기 시작했다.

 

그날은 성주 군내에서 개업하고 있는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들이 나와 사드 반대의 뜻을 밝히고 각 단체의 회장이 항의의 뜻으로 머리를 깎았다. 개중에는 성주 사람이 있을 수도 있지만, 이들은 외지 사람들이다. 전문직 종사자가 자기 직종의 이해가 아니라, 전체 지역의 이해를 같이하면서 머리를 깎는 것은 흔한 일은 아니다.

 

군 의회 로비 앞 계단에서 이 삭발 풍경을 지켜보면서 나는 성주의 싸움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근조 새누리당’이나 ‘고맙도다 새누리당, 이제 우리 다 알았네’, ‘차기에는 안 속는다’, ‘내년 대선 어림없다’ 따위의 명백히 집권당을 겨냥한 분노의 목소리도 그랬지만, 의사 집단이 삭발이라는 방식으로 여기 동참하는 것은 이미 대세가 기울었다는 뜻으로 읽혔기 때문이다.

 

정부와 보수언론이 지피고자 했던 ‘외부세력’론은 김제동이 특유의 연설로 군민들을 들었다 놨다 하면서 약발이 다했다. 성주의 반사드 투쟁은 지난 광복절, 902명의 집단 삭발로 절정을 이루었다. 갓 쓰고 도포를 입은 유림도 대거 참여했다는 사실도 이채로웠다. 반사드 투쟁 앞에 ‘신체발부 수지부모’의 윤리도 숨을 죽인 것이다.

 

성주군수의 돌발행동, 불똥은 김천으로

 

성주 사람들의 반사드 투쟁은 지난 22일 주민들의 다수 의견과 무관하게 김항곤 군수가 ‘제3의 장소’를 사드 배치지로 결정해 달라고 공식 요청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그것도 주민을 군청에서 끌어낸 후 문을 걸어 잠근 채로 기습 작전하듯 제3지역 사드 배치 찬성 기자회견을 연 것이다. 일찌감치 삭발하고 주민들과 뜻을 같이해 온 군수의 돌발행동에 투쟁위가 강력히 반발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 초전면에 사드가 들어서면 김천 남면과 농소면 등 혁신도시가 직접 영향권에 들어간다. ⓒ 다음 지도

성주군 초전면의 롯데 스카이힐 골프장 인근 임야가 사드 배치 ‘제3 부지’의 유력 대안으로 거론되는 것은 이곳이 해발 680m 고지대인데다 주변에 민가가 드물다는 이유에서다. 광복절의 집단 삭발로 싸움의 분위기가 잔뜩 고조된 가운데 그간 모락모락 피어오르던 ‘제3 부지’론이 구체화한 것이다.

 

이 초전면 제3 부지가 거론되면서 불똥은 정작 초전면과 바투 붙은 김천시로 옮겨붙었다. 이 부지는 성주에 있지만, 지역구가 김천인 이철우 의원 말처럼 “말이 성주지 김천 담장”이고, “김천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100% 김천이다. 성주 민가는 하나도 해당이 안 된다”고 할 수 있는 곳이다. 김천시 남면과 농소면 등 김천 혁신도시가 그 직접 영향권 안에 들어가는 것이다.

 

성주 사람들이 반사드 투쟁 과정에서 깨달은 것처럼 사드에 대한 전면적 반대가 아닌 지역적인 반대에 그쳐서는 풍선 효과를 피해갈 수 없는 일이다. 어느 한 지역이 숨을 돌리면 다른 지역에 콩이 튀는 것이다. 김천에서 시민단체와 지역 주민들이 결합하여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촛불집회를 연 것은 지난 20일이다.

▲ 부곡동 강변공원 야외공연장에서 ‘사드 배치 반대를 위한 촛불문화제’가 열렸다. 8월 20일, 김천(이하 같음)

 

나는 퇴직 동료의 전갈을 듣고 그날 밤 김천시 부곡동 강변공원 야외공연장에서 열린 ‘사드 배치 반대를 위한 촛불문화제’에 참석했다. 김천시의 11개 시민·사회단체가 만든 김천민주시민단체협의회와 농소면·율곡동 사드반대대책위원회가 연 이 문화제에는 김천시장(박보생)과 성주 사드철회 투쟁위원회 임원, 시민 등 700여 명이 참석했다.

 

8월 20일, 김천-답은 연대다

 

집회 참가자들은 사드 대체 후보지 검토를 요청한 성주군수와 이를 지지한 지역구(고령·성주·칠곡) 국회의원(이완영·새누리당)의 사과를 요구했다. 또 사드 배치를 반대하지 않고 제3 부지를 공론화한 경북도지사(김관용)와 사드 대체 후보지를 추진하고 있는 국방부를 비판했다.

 

보수성으로 말하면 성주나 칠곡에 뒤지지 않는 김천에서 발 빠르게 열린 집회에 모인 시민들의 열기는 뜻밖에 뜨거웠다. 확정된 것은 아니었지만 시민들의 열기에 비해 김천시장의 반응은 미지근해 보였다. 아직 절박함이 부족한 것일까. 김천시 외곽의 일부 지역에 국한된 일이라고 보는지 시의원도 한 사람밖에 참석하지 않았다.

 

자유발언 시간에 한 시민이 “성주 성산포대에 사드가 그대로 배치되어야 한다.”고 주장해 시민들의 야유를 받았지만, 대부분 발언자들은 “성주와 김천은 하나다.”, “성주가 대한민국이듯 김천도 대한민국”이라면서 사드 반대가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는 인식을 드러냈다.

 

성주투쟁위 언론 담당자(배윤호)는 “김천 사드는 김천시민들이 막아 달라. 성주 사드는 성주가 막겠다. 두 지역이 (사드 철회를 위해) 연대하자”고 제의했고, 김천민주시민단체협의회는 촛불집회를 이어가면서 성주 사드 배치 철회 투쟁위원회와 연대를 모색할 계획이라 했다. 그렇다, 이런 상황에선 연대가 답일 수밖에 없다.

 

다음날, 집회에 나왔던 동료들과 카톡으로 간단히 의견을 나누었다. 나는 성주 상황이 점점 꼬여가고 있고, 김천이 성주처럼 일사불란하게 싸워나가는 게 쉽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성주군수가 주민들을 쫓아내고 문제의 회견을 한 것은 그 이틀 후였다.

 

지난 8월 4일 촛불집회에서 ‘제3후보지에 대한 검토가 가능하다’는 국방부에 대해 “대한민국에서 사드 배치의 가장 최적지가 성산포대라고 계속 주장해 온 국방부가 자기모순에 빠졌다”고 강하게 비판했던 성주군수는 ‘고뇌에 찬 결단’으로 지난 40여 일의 투쟁을 부정해 버린 것이다.

 

불똥이 김천으로 튀면서 국회 정보위원장이자 국가정보원 출신의 김천 지역 국회의원(이철우)도 멘붕에 빠진 듯하다. 사드 배치를 찬성해 온 그는 ‘원점 재검토’를 주장하고 제3지역에 새로 결정할 때는 ‘지역과 시기’를 절대 보안에 붙여서 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한 마디로 사드 배치는 ‘국민 모르게’ 하라는 것이다. 국민 모르게 감쪽같이 해치웠으면 조용했을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사드 배치에 대한 국민적 저항이 결국은 공론화의 과정을 일체 생략하고 밀실에서 결정해 공표하면서부터 시작된 것이라는 걸 그는 벌써 잊고 있는 것일까.

▲ <한겨레 그림판>(8. 24.) 권범철 만평은 행정가나 정치인에 대한 믿음에 회의를 드러내고 있다.
▲ 군수의 제3부지 요청 회견 다음 날 성주에 나붙은 현수막들. 조직적 여론몰이로 의심할 만하다.

우선은 주민 편에 서는 것처럼 보이지만 행정가든 정치인이든 별로 믿을 바가 못 되는지 모른다. 오늘자 <한겨레> 만평은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던 밀양시장이 어느 순간 등을 돌리는 과정을 사드 배치와 견주어 놓았다.

 

성주군수가 제3 부지를 요청한 지 하루 만에 성주 지역에는 ‘성주 사드 제3지역 추진위원회’ 명의의 현수막이 여러 군데 붙었다. 사드 배치 반대 대구경북대책위에서 만든 단체 카톡방에도 이 현수막 사진이 여러 장 올라왔다.

 

“우리들은 원한다! 국방부의 제3지역 이전 검토를!”

“대안 없는 반대 투쟁! 성주 경제 고사한다.”

 

이런 일련의 상황 전개에 대해서 ‘조직적인 여론몰이’로 의심하는 건 상식이다. 그러나 국민들의 생존권이 걸린 문제를 밀실에서 결정하고 이를 물리적 힘으로 집행하려고 하다가 국민의 상식과 부딪히고도 여전히 ‘꼼수’로 문제를 풀려고 한다면 더 큰 저항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 구미에서 만난 어느 정당의 현수막.  사드에 대한 인식이 직접적으로 드러나 있다.

위 단톡방을 통해서 구미에서도 오는 금요일에 촛불문화제가, 성주촛불 50일 맞이 전국 50곳 동시다발 행동으로 대구·경북 지방에는 모두 8군데서 동시다발로 촛불이 밝혀진다고 한다. 보수와 진보에 구애되지 않고 우리 자신의 삶터와 평화를 위한 촛불이 밝혀지는 것이다.

 

사드 문제를 마치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바라볼 수 있는, ‘전투를 상공으로부터 내려다보는 영원한 운명이란 없다.’(로망 롤랑)

 

2016. 8. 24. 낮달

 

 

*예상과는 달리 김천은 빠르게 대응하고 있는 것 같다. 오늘 밤에는 8천 명의 시민이 모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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