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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일리지’? 혹은 도토리의 마술, 조삼모사(朝三暮四)

by 낮달2018 2021. 8.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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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집회 참가자 검거 건수대로 포상금 지급하겠다는 경찰

널리 알려진 고사성어로 ‘조삼모사(朝三暮四)’는 “간사한 꾀로 남을 속여 희롱함을 이르는 말”이다.

 

도토리를 ‘아침에는 세 개 저녁에는 네 개 준다.’ 똑같은 것을 가지고 어리석은 자를 우롱하는 임시변통의 사기술이다. 원숭이의 지능은 거기까지가 한계였던 것이다.

 

물론 이 ‘잔꾀’의 핵심은 원숭이다. 녀석들이 그 잔꾀를 눈치 채지 못함으로써 저공의 속임수는 성공할 수 있었다.

 

촛불집회 등 '불법 집회' 참가자를 검거한 경찰관에게 건수별로 포상금을 지급하겠다던 서울지방경찰청의 계획은 논란이 일자 꼬리를 내렸다. 시위 검거자가 구속될 경우 1명당 5만 원, 불구속 입건·즉심 회부·훈방의 경우 1명당 2만 원씩 지급하기로 했던 이 ‘야심찬 사냥계획’은 여론의 반발에 부닥쳤다.

 

이 같은 계획에 대해 여론이 ‘인간 사냥’이라고 비난하며 ‘국민들이 모여 있으면 아예 투망을 던지라’면서 격렬하게 반발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날이 갈수록 정권에 대한 불퇴전의 충성심을 과시하고 있는 경찰은 다시 '비상'한 아이디어를 냈다.

 

‘말썽 많은 포상금’ 대신 ‘마일리지’ 점수를 주겠다고 방침을 바꾼 것. 즉 일정 기간의 누적 점수가 기준 이상에 도달한 경찰관들에 한해 표창이나 상품권 지급 등의 포상을 하기로 한 것이다. 그간 쏠쏠하게 시위자를 검거했던 경찰들, 김이 새게 생겨 버렸다. 지난 5월부터 계속된 촛불 집회 검거 실적을 소급 적용해 포상금을 주겠다고 했던 계획도 백지화하고 향후 검거 실적만을 포상한다고 밝힌 것이다.

 

이 ‘비상’한 ‘아이디어’와 ‘저공’의 ‘계획’이 갈리는 지점은 여기다. 저공의 원숭이들은 그 존재의 한계를 넘지 못했다. 아침에 3개, 저녁에 4개를 주겠다던 도토리, 아침저녁의 개수를 바꾼다고 해서 본질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는 걸 원숭이들은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남은 것은 노회한 저공의 미소뿐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경찰의 비상한 아이디어는 불행히도 그 지점을 통과하지 못했다. 유감스럽게도 상대는 침팬지가 아니었던 게다. 그들은 경찰의 잔꾀에 속아주지 않았다.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온 이들이 누구인가. 그들은 예전의 ‘무지몽매한 백성’이 아니라, 이 ‘웹 2.0 시대’의 인터넷을 종횡무진 누비면서 띨띨한 정부 관계자의 뒤통수를 치는, 역전의 용사들인 것이다.

 

"해외토픽감이다. 국민 잡아가면 마일리지 올라간다." -'음악요리사'

"조삼모사 시험하냐? 마일리지나 수당이나 본질은 변함없잖아?" -'tea time'

   -<오마이뉴스>에 실린 누리꾼 반응

▲ 손문상 그림세상(2008. 8. 7.) ⓒ 프레시안

수당이든 마일리지든 ‘시위자를 검거하면 보상한다’는 본질은 다르지 않다. 이 야심찬 계획에 ‘백골단의 부활’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경찰관 기동대’의 활동을 독려하는 의미도 없지 않아 보인다. 경찰들의 눈에 시위대가 보호해야 할 선량한 시민이 아니라 자신의 ‘누적 점수’를 관리할 수 있는 ‘기회’로 보이는 건 시간문제다.

 

그런데도 방침을 변경함으로써 여론의 예봉을 피해간다고 믿는, 혹은 그쯤이야 ‘모르쇠’로 버티면 곧 잊힐 거라고 믿는 경찰들은 딱하다고 해야 하나. 대단한 ‘쇠심줄’이라고 해야 하나. 국민들의 생명과 재산 보호보다 정권의 안위를 지키는 데 더 골몰하는, 그러면서도 ‘언감생심’, 경찰권 독립을 꿈꾸고 있는 이 19세기형 대한민국 국립경찰, 어찌해야 할 것인가.

 

나이를 먹는다고 더 지혜로워지는 게 아니라는 건 사람이나 ‘조직’이나 마찬가지다. 1948년 정부 수립 후 정부 조직의 출범과 더불어 시작된 국립경찰의 역사도 회갑을 넘겼다. 그러나 2008년 8월의 경찰이, 4·19 혁명 당시 시민들을 향해 발포했던 경찰, 6월항쟁 당시 직격 최루탄으로 이한열 열사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경찰과 그리 달라 보이지 않는 것이다.

 

아, 있다. 옛날과 다른 점. 우리의 국립경찰은 시대의 트렌드, ‘마일리지’를 알고 있었다. 그것을 유효적절한 당근으로 쓸 만큼 그들은 목하 세련되어 가고 있는 중이다. 도합 일곱 개의 도토리 숫자가 가진 함정을 넘지 못했던 저공의 원숭이나 마일리지를 ‘도토리의 마술’로 착각한 우리 경찰이나 피장파장이긴 하지만.

 

* 덧붙임 :

보도에 따르면 경찰은 지난 5월 1일부터 7월 31일까지 촛불 집회에서 1042명을 연행해 이 중 9명을 구속하고 946명을 불구속 입건했으며 56명을 즉심에 넘기고 31명을 훈방했다. 이 기간 중 검거 실적을 올린 경찰은 모두 766명이라고 한다.

 

여론의 반발로 철회된 포상계획으로 절약된 국가예산은 아래와 같다.

 

구속자 9명 × 5만원 = 45만원

불구속 입건·즉심 회부·훈방 1033명 × 2만원 = 2066만원

계 2111만원

 

부시 미국 대통령 방한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진 지난 5일에도 추가로 167명에 달하는 시민이 무차별 연행됐다. 대체 더 무엇을 말하겠는가.

 

 

2008. 8. 7.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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